(~~ 5강에서 계속)
석가모니 부처님이 과거생에 수행한 얘기를 기록해 놓은 경전인 본생담(本生譚, jātaka)을 보면,
저 한량없는 과거세에 연등부처님이 계실 때, 선혜동자가 한 브라만의 집에 태어났는데,
부모가 많은 재산이 남기고 죽었지만 그것이 자기 것이 아님을 깨닫고 모두 가난한 사람에게 보시하고 출가를 했다,
그렇게 시작하여 다생겁래로 정진해서 도솔천 내원궁(內院宮)에 호명보살(護明菩薩)이 되셨다가,
이 땅에 오셔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되셨는데,
관세음보살님은 어떤 인연으로 보살의 지위로 나아가게 되었을까요?
저 과거에 인도의 남쪽 해안가 어떤 마을에 사는 장자(사업가)가,
부인과 두 아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았는데 갑자기 부인이 병으로 죽게 되자,
일곱 살, 여덟 살짜리 아이들을 위해 새 부인을 맞아들였습니다.
이 장자는 새 부인이 아내의 역할보다도 어머니로서 얼마나 잘하느냐에 관심이 있었고,
이것을 아는 새 부인도 정성을 다하고 사랑으로 아이들을 키웠습니다.
1년이 지나 새 부인은 자기 아이를 낳았지만, 전처 아이들에 대한 사랑은 변함이 없었고,
장자는 삼년동안 아내를 지켜보다가 그제서야 믿고서 멀리 장사의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부인은 남편이 떠난 후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금은 남편도 잘해주고 생활도 편하지만, 이것이 언제까지 지속이 되겠느냐,
내가 두 아이에게 잘해주니 남편도 나한테 잘해주는 것이지 조금이라도 잘못한다면 가차없을 것이다,
또 두 아이가 다 자라서 내가 필요 없으면 남편은 나를 버릴 지도 모른다,
나중에 재산도 두 아이에게만 물려주고, 나와 내 아이에게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불안하고 걱정이 되어 고민하다가, 결국은 두 아이를 없애려고 마음을 먹고,
어느 날 아이들을 데리고 무인도 섬으로 소풍을 갔다가 아이들을 그곳에 버리고 돌아옵니다.
아이들은 어머니를 찾아 헤매다가 지쳐 쓰러지게 되고, 자신들을 버리고 간 새어머니를 원망합니다.
그러다가 새어머니를 얻은 아버지를 원망하게 되고, 마지막에는 자신들을 두고 먼저 간 생모까지 원망합니다.
그러던 중, 작은 아이는 지쳐서 형의 무릎을 베고 어머니를 부르면서 죽었고,
큰아이도 이내 죽게 되는데 새어머니, 아버지, 친어머니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극에 달해서,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면 이 원수를 꼭 갚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숨이 끊어지는 순간에 생각이 바뀝니다.
내가 여기서 굶어 죽어가면서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쳐도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데,
이런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사람은 이 세상에 나 말고도 수도 없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다시 태어난다면 고통으로 아우성치는 사람들의 소리를 듣고 가서 그 고통을 구제해 주리라,
이렇게 자기의 고통이 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하며 숨이 끊어졌습니다.
그는 대비심, 보살심을 낸 것입니다.
타인의 아픔에 대해서 아파하는 마음, 이게 대비심인데 여기로부터 보살이 시작됩니다.
똑같은 일을 당했을 지라도 그것이 세세생생 원한으로 갈 씨앗이 될 수도 있지만,
자기만을 보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눈을 돌려 이제까지 남의 고통을 외면한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앞으로는 자기와 같은 사람이 없도록 하려는 보살의 씨앗이 심어진 것입니다.
이게 싹이 터서 자라고 열매 맺고 또 떨어져서 싹이 트고 자라고 열매 맺고,
이렇게 수만 생을 거듭하면서 점점 커져 지금에 이르러서 관세음보살이 된 것입니다.
관세음보살의 서원은 중생의 고통이 있는 곳이라면 그것이 아무리 작은 고통이라도,
그 고통의 신음소리를 하나도 남김없이 다 보겠다, ‘듣는다’가 아니라 ‘본다’고 말했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은 '그 고통을 하나도 남김없이 받아서 그들을 구제하리라' 이렇게 원을 세웠기에,
이 세상에 올 때 업에 끌려오는 것이 아니고, 몸을 나투셔서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려 오시는 것입니다.
관세음보살은 괴로운 사람을 다 보고 다 구제해주는 것을 자기 인생의 목적으로 삼고 있으니,
괴로운 사람이 그분께 가서 소원을 빌면 누구든지 다 구제를 해주시는 분이지,
부탁하면 도와주고 안 그러면 안도와주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자기 원을 그렇게 하겠다고 정한 사람이니, 내가 괴로워하면 나보다도 더 먼저 알고,
내가 괴로워하면 나보다 더 답답해하고,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주려고 나보다도 더 애를 씁니다.
그러니 관세음보살을 정말 믿는다면, '기도하면 들어줄까 안 들어줄까' 이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믿지 않으니까, 기도를 하고 수행을 해도 성취가 안 됩니다.
큰 소리로 하면 들어줄까, 절을 많이 하면 들어줄까, 남해 보리암에 가서 기도하면 들어줄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믿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정말 그런 원력을 알고 믿는다면 '들어줄까, 안 들어줄까' 이런 생각을 하지를 않습니다.
당연히 들어주실 거니까, 기도를 할 때는 ‘고맙습니다’ 이렇게만 하면 됩니다.
‘~~해 주세요’ 이 말은 벌써 불신의 표현이 들어있고, 안 믿는다는 뜻입니다.
내게 괴로움이 있다해도 그것은 다 관세음보살 몫이니, 나는 그걸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은 이런 원력을 갖고 계시는 분이니, 관음기도를 하려면 이런 믿는 마음을 갖고 해야 됩니다.
(제7강에 계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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