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의 원제목,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은
‘큰 지혜로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가장 요긴한 부처님이 말씀’이란 뜻입니다.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데는 남을 도와주면 된다, 정진을 해야 된다, 하느님을 믿어야 된다 등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는데,
여기서는 깨달음으로 해서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난다는 뜻입니다.
즉 방에 불이 없어서 깜깜할 때, 신에게 기원하거나 굿을 하여 어둠에서 벗어나는게 아니라,
불을 켜서 어둠을 몰아낸다는 것이 이 경에서 하고자 하는 방법입니다.
불을 탁 켜는 것, 그래서 환해져 모든 것이 한눈에 확 들어오는 것을 ‘반야’라고 합니다.
반야로서, 깨달음을 통해서, 지혜로서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난다 이런 뜻입니다.
이 경의 구성은 서분과 유통분이 빠지고 전체가 다 정종분으로 되어있습니다.
내용상으로 보면 다섯 가지로 나눌 수가 있는데, 제일 중요한 것이 첫 문장입니다.
觀自在菩薩(관자재보살) : 관자재보살이
行深般若波羅密多時(행심반야바라밀다시) : 반야바라밀다 수행을 해서
照見五蘊皆空(조견오온개공) : 모든 것이 다 공하다는 것을 깨달아
度一切苦厄(도일체고액) : 모든 괴로움이 다 없어 버렸다
이것이 이 경의 핵심이고, 관자재보살은 이 경에서의 주인공이고 수행의 주체입니다.
여기서 오온이 모두 공하다는 것, 일체 법이 모두 공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는데,
그 오온이 모두 공하다는 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설명한 게 그 다음 문장입니다.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色卽是空 空卽是色(색즉시공 공즉시색)
受想行識 亦復如是(수상행식 역부여시)
오온이라는 것은 색·수·상·행·식인데, 먼저 ‘색’을 가지고 색이 공하다 하는 것을 증명하고,
‘수’와 ‘상’과 ‘행’과 ‘식’도 이와 같다고 말하며 생략했습니다.
舍利子 是諸法空相(사리자 시제법공상) : 사리자여, 모든 법이 공하다는 것을 알면
不生不滅(불생불멸) : (그런 공한 세계에서는) 생도 아니고 멸도 아니고,
不垢不淨(불구부정) : 깨끗한 것도 아니고 더러운 것도 아니고,
不增不減(부증불감) :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이 깨달음의 세계에서는 나는 것도 멸하는 것도 아니고,
깨끗한 것도 더러운 것도 아니고, 늘어나는 것도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고, 옳은 것도 아니고 그른 것도 아니고, 가는 것도 아니고 오는 것도 아니다,
제법이 공한 세계에서 보면, 소승불교의 교리인 오온·십이처·십팔계·십이연기·사성제 등
소승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이라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是故 空中無色(시고 공중무색) : 그래서 제법이 공하다 하는 그런 세계에서 보면 그것은 색도 아니며
無受想行識(무수상행식) : 수도 아니고 상도 아니고 행도 아니고 식도 아니다,
無眼耳鼻舌身意(무안이비설신의) : 안이비설신의라 할 것도 없고
無色聲香味觸法(무색성향미촉법) : 색성향미촉법이라 할 것도 없다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 안계라 할 것도 없고 (중간 16계는 생략) 의식계라 할 것도 없다,
無無明(무무명) : (십이연기 처음이 무명이고 끝이 노사인데) 무명이라 하지만 무명이라 할 것도 없고
亦無無明盡(역무무명진) : 무명을 없앤다 할 것도 없다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 내지 노사가 없고 노사를 없앤다 할 것도 없다,
無苦集滅道(무고집멸도) : 괴로움도 없으니 괴로움의 원인도 없고 괴로움의 소멸도 없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방법도 없다,
無智(무지) : 깨달음도 없고,
亦無得(역무득) : 깨달음을 얻었다 할 것도 없다,
여기까지가 두 번째 단락인데 대승의 핵심사상인 그 공의 세계(깨달음의 세계)에서 보면,
소승의 교리는 하나의 법집에 불과한 거고 그것은 다 실체가 없는 것이라 비판합니다.
먼저 진리의 세계는 이렇다 하고 설명을 하고, 그 관점에서 보면 소승은 아직 깨달음의 세계에 이르지 못한 것이라 비판한 것입니다.
以無所得故(이무소득고) : 이 얻을 바 없는 까닭으로,
아무 것도 얻을 바 없으니 얻겠다는 게 우리가 욕망이고 욕구고 바라는 마음입니다.
菩提薩埵(보리살타) : 보살은
依般若波羅密多故(의반야바라밀다고) :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므로,
이 말은 깨달음을 얻어서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수행을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첫 줄하고 똑같은데, 관자재보살 대신 보리살타가, 행심반야바라밀다시 대신 의반야바라밀다가 나왔습니다.
心無罣碍(심무가애) : (모든 보살은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해서) 마음에 장애가 없고
無罣碍故 無有恐怖(무가애고 무유공포) : 마음에 장애가 없으므로 마음에 두려움이 없고,
遠離 顚倒夢想(원리 전도몽상) : 그래서 뒤집어진 잘못된 생각을(전도몽상) 떠나버린다(원리),
이 말은 바로 조견 오온개공, 제법이 다 공하다, 허상이다 하는 것을 깨달았다는 말입니다.
究竟涅槃(구경열반) : (그것을 멀리 떠나) 마침내 열반에 이른다
열반이란 괴로움이 없는 이런 뜻으로, 도일체고액과 같은 말입니다.
관자재보살님이 수행을 하여 제법이 공하다는 것을 깨닫고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셨는데,
관자재보살만이 아니라 모든 보살들은 다 깨달음을 통해서 뒤집어진 잘못된 망념에서 벗어나서 열반에 이를 수 있습니다.
三世諸佛(삼세제불) : (그런데 보살만이 아니라) 과거세 현재세 미래세의 모든 부처님이
依般若波羅密多故(의반야바라밀다고) :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해서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 무상정등각을 얻는다
이게 세 번째 단락입니다.
그러니 반야바라밀다라는 것은 위대한 것입니다.
이것은 관세음보살님께서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난 수행법이었고, 모든 보살과 모든 부처님이 행하신 수행법입니다.
故知(고지) : 그러므로 알아라
般若波羅密多(반야바라밀다) : 이 반야바라밀다는
是大神呪 是大明呪(시대신주 시대명주) : 가장 신비한 주문이고 가장 밝은 주문이고
是無上呪 是無等等呪(시무상주 시무등등주) : 가장 높은 주문이고 비교할 바 없는 주문이다
能除一切苦(능제일체고) : 능히 모든 괴로움을 없애는 그런 힘을 가지고 있고
眞實不虛(진실불허) : 진실하여 헛됨이 없다
故說(고설) : 이런 까닭으로 말씀하시되
般若波羅密多呪 卽說呪曰(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 반야바라밀다의 주문을 일러 가로되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이 경은 달랑 이렇게 260자로 되어 있습니다
먼저 관세음보살님께서 도달한 세계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그 깨달음의 세계에서 볼 때 소승의 가르침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하고,
모든 보살과 부처님, 대승의 불·보살은 다 이 깨달음을 통해서 열반에 이르렀음을 말하고,
그러니 ‘반야바라밀다’는 가장 위대하고, 모든 수행 중에 최고의 수행이며 모든 증득 중에 최고의 얻음이다,
이 반야바라밀다의 진수를 말한다면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제 사바하’이다,
이러고 끝이 났습니다.
오늘은 그 첫째 줄 '관자재보살'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대승수행의 주체가 보살인데, 보살 가운데에서도 관세음보살이 경의 주인공입니다
‘관세음보살’ 또는 ‘관자재보살’이라 부르고, 범어로는 ‘아바로기테스바라(Avalokiteśvara) 보디사트바(Bodhisattva)’입니다.
아바로기테는 ‘지켜본다’, 스바라는 ‘자재하다’이니 ‘자유자재로 지켜본다’는 뜻입니다.
일체를 다 알고 일체를 다 행할 수 있는 분이다, 한마디로 전지전능하다는 의미입니다.
일체를 다 지켜 본다, 일체를 다 꿰뚫어 안다는 뜻의 아바로기테 스바라를
구역(舊譯, 3~6세기)에서는 관세음(觀世音)이라 번역했는데,
‘관(觀)’은 자유자재로 지켜본다, ‘세음(世音)’은 세상의 음성, 중생의 고통에 찬 신음소리라는 뜻으로,
구역에서는 지켜보는 내용을 생각하여 번역한 것입니다.
즉, 중생의 갖가지 번뇌, 고통, 고뇌를 하나도 빠지지 않고 다 지켜보시는 분이라 해서 관세음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그런데 당나라 현장법사는 이것을 ‘관자재(觀自在)’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아바로기테 스바라’를 글자 그대로 직역하면 ‘자유자재로 지켜본다’이니 ‘관자재’에 더 가깝습니다.
‘자유자재로 지켜본다’,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제법이 공하다는 것을 본다’, ‘법의 실상을 본다’는 뜻입니다.
‘관세음’이라고 쓸 때는 ‘중생의 고통을 하나도 남김없이 지켜 본다’ 는 의미가 담겨있고,
‘법이 실상이 공하다는 것을 꿰뚫어 보신 분이다’ 는 의미일 때는 ‘관자재’가 더 정확합니다.
반야심경에서는 관자재라고 씌여있는데, 관세음과 같은 분입니다.
(제6강에 계속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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