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법문/4. 반야심경

[법륜스님의 '반야심경'] 제2강 마하

상원통사 2015. 5. 12. 22:21

(~~제1강에서 계속)

 

먼저 제목부터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반야심경의 원제목은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입니다.

여기서 마하(摩訶, Mahā)’는 산스크리트어(범어)무한히 크다라는 뜻입니다.

크다는 것을 나타낼 때 상대적으로 크다고 할 때에는 큰 자를 쓰는데,

'무한히 크다'는 것은 큰 자로 정확히 의미를 전달할 수 없어 그냥 마하라고 썼습니다.

마하는 무한히 큰 것(무한대), 무한히 많은 것(무한다)을 의미하는 관념(추상)적인 용어로,

우리들이 생각하는 수와는 비교가 안될 만큼 크고 많은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런 세계는 이 우주에 무한히 많고 거기에도 다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이런 세계가 천 개 모여 있는 그룹을 소천세계라 하고,

그런 소천세계가 또 천 개 모여 있는 그룹을 중천세계라고 하고,

그런 중천세계가 또 천 개 모여 있는 큰 그룹을 대천세계(삼천대천세계)라고 합니다.

그런 삼천대천세계가 갠지스 강의 모래알 수만큼 많이 있는데,

그런 갠지스 강이 또 갠지스 강의 모래알 수만큼 많은 세계, 이렇게 무한히 큰 것을 마하(Mahā)’라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또 한량없이 많은 수를 말할 때 팔만사천이라는 말을 쓰는데,

팔만사천이란 말은 84,000을 말하는 게 아니고 무한히 많다는 상징적 언어입니다

팔만사천 번뇌망상이란 한량이 없는 번뇌라는 뜻이고,

부처님의 팔만사천 법문이란 한량이 없는 법문이라는 뜻이지 84,000개의 법문이란 뜻이 아닙니다.

 

또 다른 표현으로 미진수(微塵數)’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티끌의 수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는 세계를 가루를 만들어서 그 가루로 모든 세계에 점을 찍는 데,

점을 모든 세계에 다 찍는 게 아니라 팔만사천 세계마다 점을 하나씩 찍어서,

그 티끌이 다 떨어질 때까지 점을 찍을 정도로 큰 것을 마하(Mahā)’라고 합니다.

 

과학적으로 보면, 우리는 지구에 살고 있고 지구는 태양계에 속해 있는데,

우리 은하계에는 이런 태양계가 약 1,000억 개가 모여 있고,

그런 은하계 우주가 다시 일천억 개 이상이 모여 구성된 게 우리가 말하는 대우주입니다.

지구가 크다 하지만, 빛의 속도로 가면 1초에 7바퀴 반이나 돌 수 있습니다.

지구에서 태양까지는 빛의 속도로 8분정도, 북극성까지는 1,100년 걸립니다.

그런데 은하계 우주의 크기는 지름이 10만 광년이고, 그 안에 태양계가 1천억 개가 들어있습니다.

이 은하계에서 제일 가까운 안드로메다 성운까지만 해도 300만년 광년이 걸리고,

요즘은 망원경으로 15천만 광년 떨어진 별까지 관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세계만해도 이만큼이니, 불교에서 말하는 세계의 크기가 결코 허풍만은 아닙니다.

 

이렇게 한량없이 많고 한량없이 큰 것을 마하라고 하는데,

이 세계가 한량없이 많고 한량없이 크다는 것만 알아도 인생문제가 다 해결됩니다.

시간이 한량없이 길고, 이 세계가 한량없이 크고 한량없이 많다는 관점에서 보면,

지구라는 것의 수명은 찰나에 불과하고, 지구의 크기는 티끌보다 더 작다고 볼 수 있는데,

이렇게 보잘 것 없는 지구 표면에 붙어서 살고 있는 우리는 더 이상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그것들이 모여가지고 어쩌고저쩌고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볼 줄 알면 인생문제가 다 해결이 됩니다.

 

옛날 시골 변소간에 가서 보면, 구더기들이 바글바글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 구더기들도 자기들끼리 비교하면 서로 다르다고 할 수 있겠지만, 사람이 내려다보면 그게 그겁니다.

똥 한 입 더 먹으면 뭐하고 덜 먹으면 뭐하겠으며, 좀 더 기어오르면 뭐하고 덜 기어오르면 뭐하겠느냐,

구더기들의 눈으로 보는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겠지만, 사람이 보면 그렇습니다.

 

어릴 때 개미들끼리 싸우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개미들은 상대편 허리를 잘라 죽여 버립니다.

그 잘린 몸통이 우리 눈에 보일 정도로 쌓여있으니 서로 엄청나게 많이 죽였습니다.

왜 그랬을까 하고 그 행렬을 쭉 따라가 보면, 지렁이 한 마리를 놓고 싸움이 붙었던 것입니다.

그럼 집에 가서 양동이에 물을 퍼가지고 와서 확 부어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이기고 지는 게 없습니다.

그 세계에서는 그게 엄청난 일이지만 바깥 세계에서 볼 때는 우스운 일입니다.

 

여러분들이 여기 조그만 집 놔두고 일층은 내 것, 이층은 네 것 한다든지,

조그만한 땅을 갈라서 너는 삼백 평, 나는 오백 평 한다든지 하며 거기 목매달고 사는데,

비행기타고 저 위에서 내려다보면 다 개미집 같습니다.

 

제가 80년대 후반쯤 한참 휴거설 얘기가 나올 때에 세종문화회관 옆 다방에 앉아있는데,

비가 장대같이 몇 시간째 내리는 것을 보고 있던 여대생이 둘이 앉아서 하는 말이,

, 종말이 가까워졌다, 노아의 홍수가 곧 올 것 같다고 합니다.

사실은 어떨까요? 비행기타고 올라가서 보면 한강 유역에만 비가 뿌리고 있는 것입니다.

손바닥만한 구름이 한강유역에 걸쳐 똑똑 떨어지고 있는데, 그걸 갖고 종말이라면 좀 웃기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의 몸에 땀구멍이 수도 없이 많이 있고, 그 땀구멍마다 작은 털이 하나 나있습니다.

거기를 확대해서 보면 몸으로부터 진이 나오고, 구멍 옆에는 세균 수십만 마리가 바글바글합니다.

우리는 겉으로 보기는 혼자 사는 것 같지만 사실은 몇 조 개의 생명과 같이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장 속에도 박테리아가 바글바글하고, 입 속이나 피부 속에도 엄청난 대군이 있습니다.

지구 표면에 온갖 생물들이 붙어서 살듯이, 우리 몸에도 세균들이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며칠 목욕을 안 하면 그 동안 땀구멍의 세균은 수십만에서 수백만 마리로 늘어납니다.

그러다가 샤워를 하면, 그 세균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노아의 홍수이고 세상의 종말입니다.

세균의 입장에서 보면 종말이 오고 창세기부터 시작되어 발전했다가 종말이 오는 것이겠지만,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종말도 아니고 창조도 아니고 개벽도 아니고 그냥 하나의 변화일 뿐입니다.

그런 것처럼 지구상에서 뭐 한다고 난리법석이지만, 45억년 역사의 지구 전체로 볼 땐 아무것도 아닙니다.

화산의 폭발은 겨울에 손발 트는 것과 비슷하고, 노아의 홍수는 손 씻는 수준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들의 경험 속에 갇혀서, 그걸 가지고 세상은 이렇다 우주는 저렇다고 합니다.

우리 몸에 세균 부부가 있는데, 암놈이 저쪽 수놈하고 하룻밤 잤다고 내가 목욕하러 가고 안 가고를 결정합니까?

여기 부부가 있는데 남편 놔놓고 딴 남자 만났다 해서 천벌이 떨어질까요?

그런 버러지 같은 인간들 열 명 스무 명이 붙어산다고 해도 천둥 번개 치는 것하고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것하고 연관시켜서 천벌이 내린다 어쩐다 하는데, 이것은 우리들의 관념일 뿐입니다.

이런 가치를 갖고는 세계를 제대로 볼 수가 없습니다.

 

2,600년 전에 이런 게 다 망상이라고, 깨달으신 분이 세상을 보는 눈을 열어주었는데,

그때 못 알아듣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지금 같은 세계에서는 좀 알아들어야 되는데,

요새 이상한 게 들어와 가지고 난리를 피우는데 거기 현혹되는 것을 보면 이해가 안갑니다.

어떤 종교를 비판하려는 게 아니라 인간이 상식을 조금이라도 갖고 있다면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좋아서 희생하고 봉사하고, 그리고 진리를 따라가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만들고 어쩌고저쩌고 하는 얘기들은, 그냥 서너 살짜리 애들에게 재미있는 얘기 해주는 것하고 같습니다.

엄마, 나 어디로 났어?’ 하면 배꼽으로 낳았어하듯이 그런 얘깃거리로 들으면 됩니다.

그보다는 단군신화가 훨씬 더 의미가 많은데, 이것은 단지 신화로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겁니다.

이런 정신 갖고는 한 인간이 바르게 살기도 어렵고, 한 나라가 바로 되기도 어렵습니다.

 

이 우주는 무한히 크고 넓고, 무한히 긴 시간 속에서 성주괴공(成住壞空)합니다.

티끌같은 것들이 모여서 이루어지고 유지되다가 흩어져서 사라지는, 변화의 소용돌이가 이 우주이며 이 세계입니다.

지구도, 태양도, 우주도 이루어지고 무너지는데, 그 안에 사는 육신이 안 죽겠다는 것은 웃기는 얘기 아닙니까?

그게 망념이고, 그런 망념을 갖고 있으니 괴롭습니다.

그런 세균 같은 생각을 갖고 있으니까 안 괴로울 수가 없습니다.

태어난 것이 있으면 죽어야 되고, 생긴 게 있으면 사라져야합니다.

난 것은 있는데 죽지는 않는다, 생긴 것은 있는데 사라지지 않겠다, 그건 망상입니다.

그런 잘못된 생각을 하니 인생이 괴로워지는 것입니다.

 

구더기를 똥통에서 꺼내어 아무리 좋은데 놔두어도 다시 똥통으로 기어들어 가듯이,

··치 삼독에 물들면 죽기 아니면 살기로 다시 그걸 찾아가는 데, 이게 중생의 업입니다.

그 구더기도 죄가 많아 그런 것이 아니고 이게 다 업입니다.

몇 년밖에 안 피운 담배도 중독이 되면 몸에 나쁜 줄 알면서도 못 끊는데,

다생겁래로 우리 몸에 배어있는 탐··치 삼독은 더욱더 끊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면 그 업을 끊을 수 있습니다.

담배 끊을 때도 탁 끊어야 되듯이, ··치 삼독도 탁 놔버리면 간단하게 해결됩니다.

여러분들이 내내 공부한다해도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것은,

실제로 직시해서 놔야 되는데, 자기 업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말로는 담배가 나쁘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걸 무지무지하게 사랑하니 못 끊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중독이 된 담배라도 놔버리면 그걸로 끝나는 것처럼,

··치 삼독도 이게 정말 괴로움의 씨앗이구나이렇게 생각해서 탁 던져버리면 됩니다.

담배 피우는 습관이 본래는 없었는데 나중에 생긴 것처럼, 업도 본래는 없었는데 생긴 것입니다.

없애는 것도 그와 같습니다.

업에 물들면 영원히 끊지 못하고 거기에 끌려가지만, 나쁜 줄 알고 놔버리면 없어집니다.

한 생각을 돌이켜 버리면 끝납니다.

그러나 그 한 생각 돌리지 못하면 또 수 억겁의 세월을 흘러갈 수도 있습니다.

 

아무도 계란을 세울 수 없다고 했는데, 콜롬부스는 계란을 세웠습니다.

계란 한 쪽을 깨서 세우고 나니까, 사람들은 그렇게 하면 누가 못해라고 합니다.

그것 누구나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렇게 할 생각을 안 했습니다.

그런 것처럼 누구나 다 해탈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탁 해버리면 되는데 아무도 그렇게 할 생각을 안 합니다.

? 계란 깨질까 겁이 나서 안합니다.

무슨 아이큐가 높으니, 머리가 좋니, 인물이 잘 생겼니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제3강에 계속합니다~~)

 

이 강의는 '정토회 > 정토TV > 법문 보기 > 반야심경강좌'에서 동영상으로 볼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