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인 사성제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부처님께서 교진여(aññā-koṇḍañña) 등 다섯 비구에게 최초로 설법을 한 것이 사성제입니다
고성제(苦聖諦) : 괴로움을 여실히 아는 것
집성제(集聖諦) : 괴로움의 원인을 밝힌 것
멸성제(滅聖諦) : 괴로움이 사라짐
도성제(道聖諦) : 괴로움을 소멸시키는 방법
사성제의 첫 번째는 고성제, ‘이것이 괴로움이다' 하는 것을 여실히 아는 것’입니다.
괴로움이 괴로움인지도 모르면 거기서 벗어나려는 바램(의지)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몸에 병이 있는데도 모르고 본래 그러려니 또는 건강하려느니 하는 동안 병은 점점 커지니,
우선 우리 몸에 병이 있으면 병이 있는 줄 알아야 되는데, 이것이 고성제입니다.
그 다음에 이게 무슨 병이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밝히는 것이 집성제이고,
그 원인만 제거하면 병이 낫는다는 것이 분명해야 하는데 이것이 멸성제이고,
구체적으로 처방과 투약을 하여 병이 낫게 하는 것을 도성제라 합니다.
우리 아이가 학교에 다니는데 수업도 빼먹고 애들하고 싸우고 말썽만 피우고 있는데,
집에서는 말썽이 있는 줄 모르거나 문제가 없다고 잘못 알고 있다면 해결의 길이 없습니다.
우선 아이가 문제가 많다는 사실을 사실대로 알아야 됩니다.(고성제)
그 다음, 문제가 있는 줄 알았어도 그 원인을 찾지 않고 놀라서 울기만 하면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왜 잘 다니던 학교를 자꾸 빼먹고 애들하고 다투는지 그 원인을 잘 분석해야 됩니다.
처음에는 친구를 잘못 사귀거나 선생님이 문제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문제는 집에 있었습니다.
엄마 아빠가 맨날 다투니 아이가 정신적으로 혼란이 생겼고, 희망도 없고 자포자기 되니까,
학교도 가기 싫고 공부도 하기 싫어 맨날 말썽만 피우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그렇게 된 원인이 바로 부모에게 있다고 원인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 집성제입니다.
이 아이를 고치려면 우선 부부가 화합해야 아이의 마음이 안정될 것이고,
마음이 안정되면 학교도 잘 가고 공부도 잘 할 것이라는 것에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멸성제)
'그러면 부부가 어떻게 화합을 이룰 것인가' 하는 방법론이 도성제입니다.
다툰다는 것은 서로가 잘났다, 서로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본래 옳고 그름이 없는데 고집을 하니 부부간에 갈등이 있고 아이까지 버리게 되는구나,
이렇게 자각을 하고 남편에게 참회하고 정진해 나가면,
남편도 마음이 풀어지고, 아이도 마음에 안정이 되어 말썽도 피우지 않게 될 것이다,
이렇게 방법을 찾아 하나하나 괴로움을 풀어가는 것을 사성제(四聖諦)라고 합니다.
이것은 개인의 수행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문제 등 모든 것에 해당됩니다.
고성제(苦聖諦) :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
불교는 늘 현실로부터 출발합니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의 사실을 사실대로 아는 것,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고성제입니다.
괴로움을 괴로움이라고 알고, 번뇌를 번뇌라고 알고, 내가 화를 잘 내면 잘 내는 줄 아는 것이 고성제입니다.
세상 사람이 다 ‘너 왜 그리 화를 잘 내냐’고 하는데, 정장 본인은 ‘내가 언제 화냈어? 화는 나만 내냐, 너도 내지!’,
이것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고 그러면 문제 해결이 될 수가 없습니다.
자기 상태, 자기 가정의 상태,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 상태를 정확하게 있는 그대로 아는 것이 고의 성제입니다.
'그거 누가 모르나?’ 해도 있는 그대로 정확히 안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집성제(集聖諦) : 고(苦)의 근본적 원인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했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신이여 해결해 주소서’ 이래서는 안되고, 그냥 해결이 되겠거니 하고 기다리거나, 나 모르겠다고 팽개쳐도 안 됩니다.
술 한 잔 먹고 자도 다음날 보면 그대로 남아있고, 멀리 여행을 갔다 와도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이것은 연기법으로 봐야 됩니다.
이게 괴로움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이것은 어떤 원인이 있어서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니까 무엇으로 말미암아 이런 괴로움이 나타났는가 하는 원인을 찾아야 된다,
그 원인을 찾았더라도 그 원인의 원인이 없는가하고 또 찾아야 된다,
십이연기 같으면 열두 번의 고리를 찾아 올라가 그 근본원인을 찾아야 됩니다.
이렇게 그 근본원인을 찾는 것을 집성제라 합니다.
원인을 끝까지 추궁하지 않고 중간에 멈춰버리는 것이 문제다
보통은 원인을 끝까지 찾지 않고 나타난 현상만 적당하게 치료하려하니 치료가 안됩니다.
병의 근본원인을 찾아야 되는데 눈에 보이는 것만 적당히 하면 치료가 안 되는 것과 같습니다.
얼굴에 기미가 끼었을 때, 연고를 사다가 바르면 없어지는 것 같지만 조금 지나면 또 생깁니다.
또 생기면 또 바르고 또 생기면 또 바르고, 이렇게 몇 번 하면 나중에는 발라도 안 낫습니다.
서양의학은 주로 대증요법이니 얼굴에 바르는 것으로 끝내거나 아니면 수술해버립니다.
그런데 그 근본은 장에 열이 있어 그것이 얼굴에 그런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니,
얼굴의 기미는 그냥 놔두고 장약을 먹어 장이 치료되면 얼굴은 자동적으로 낫습니다.
장약을 먹어서 얼굴이 나았는데도 시간이 흐르니까 장이 또 나빠집니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보니 신경을 너무 많이 써서 장이 나빠졌다 합니다.
근본원인이 신경을 많이 쓰는 데 있으니 이것은 약 먹을 게 아니라 수행을 해야 됩니다.
이렇게 하여 신경을 많이 쓰는 원인을 찾아내고, 수행을 통하여 그것이 딱 끊어져 버리면,
결국은 장이 낫고 장이 나으면 얼굴의 기미가 사라지게 됩니다.
수행을 하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니까 다른 병도 덩달아 나아버린 경우가 있는데,
원리를 따진다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근본 원인을 찾아 치료하면 괴로움은 사라진다
이렇게 근본원인을 찾는 것이 집의 성제입니다.
여기서 ‘집’이란 무언가의 쌓임(모임)이고, 그 원인을 찾아보면 탐진치 삼독에 의해서,
더 근원적으로 무명 또는 집착으로 인하여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멸성제(滅聖諦) : 원인이 사라지면 괴로움이 사라진다
이것이 괴로움이고, 이것이 그 괴로움의 원인이다, 이것이 육체의 아픔이고, 이것이 그 아픔의 원인이다,
현재 병의 상태가 어떤지 알고서 그 원인을 하나하나 정확하게 찾아가야 합니다.
아프다는 진단을 빨리 하고, 그 원인도 정확하게 찾을 줄 아는 이가 용한 의사입니다.
의사가 그 원인을 정확하게 못 찾으면 엉뚱한 곳을 수술하게 되듯이,
여러분들 정신적인 갈등의 원인을 정확하게 찾지도 않고 문제를 해결하려다 보면,
손을 잘못 대어서 도리어 더 큰 화근을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육신은 본래 병이 없는데서 출발했고, 정신도 본래는 공한데서 출발했기에,
그 원인만 정확하게 찾으면 그 어떤 것이라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치료라는 것은 더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본래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본래 있었던 일이니까 본래 상태로 돌아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근본원인이 사라지면 몸은 건강한 상태로 돌아가고, 마음은 편안한 상태로 돌아가게 됩니다.
사람의 육신이 본래는 건강하도록 되어있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도 본래는 편안하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음을 잘못 써서 괴로움이 생긴 것입니다.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것이라고 착각을 해서 욕심을 내고,
내 의견은 그냥 여러 의견 중의 하나일 뿐인데 그것이 옳다고 고집을 하고,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는데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있다고 환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렇게 탐진치 삼독에 중독되어있어 마음이 무겁고 마음이 어둡고 마음이 탁합니다.
그 근본원인을 제거하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마음이 밝아지고, 마음이 맑아져 본래 상태를 회복합니다.
이 원인이 사라지면 괴로움이 사라지고, 원인이 치료되면 건강해지는 것이 멸성제입니다.
도성제(道聖諦) : 어떻게 하면 괴로움의 원인을 제거할 것인가
그럼 어떻게 하면 이 원인을 제거할 수 있는가? 이것이 실천론이며 방법론인 도성제입니다.
우리가 공부할 때 나눠서 하지는 않지만 공부는 자연스럽게 이 네 단계를 거치게 됩니다.
'고집멸도'를 우리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집고도멸'이라고 말해야 됩니다
이런 원인이 있어서 이런 결과가 나왔고, 이렇게 원인을 소멸하면 열반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이렇게 해야 될 건데, 이러면 관념론이 됩니다
불교는 늘 현실로부터 출발하는 실천적인 가르침이지 사유하는 가르침이 아닙니다.
현실의 괴로움을 먼저 파악하고, 그 괴로움의 원인을 정확하게 규명하고,
이 원인이 제거되면 병이 낫는다는 것을 알고, 그러면 어떻게 그 원인을 제거할 건가,
이렇게 해서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제14강에 계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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