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법문/3. 근본교리

[법륜스님의 '근본교리'] 제9강 삼법인 - 세 번째

상원통사 2015. 2. 5. 22:02

(~~ 제8강에서 계속)


물질도, 생명도, 정신도 윤회하며,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변화한다
우리가 윤회라고 할 때 몸뚱이만 기준으로 잡으면 안됩니다.
물질이 분해되어 대지로 갔다가, 조립되어 올라왔다가, 또 분해되어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듯이,

생명도 윤회하고 정신도 윤회하는 것입니다.
한 생각 나왔다가 그 지은 관념에 의해서 새로운 생각을 일으키고,

또 그 생각이 업이 되어 새로운 생각을 일으킵니다.
근데 우리는 늘 몸뚱이만 기준으로 하니, 교리나 가르침, 해탈의 길이 헷갈리게 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변화합니다,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짧은 시간동안 관찰하면 변하지 않는 것 같지만, 길게 관찰하면 모두가 다 변합니다.
시간이란 우리가 인위적으로 정한 것입니다.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것을 일 년, 지구가 스스로 한 바퀴 도는 것을 하루,
하루를 24개로 쪼개서 한 시간, 그것을 60개로 쪼개서 1분, 또 쪼개서 1초 이렇게 정했습니다.
지구가 태양을 도는 것이 변화이고, 지구가 자전을 하는 것도 변화이니, 변화가 본질이고 시간은 본래 없는 것입니다.
즉, 변화로 인하여 시간이라는 관념이 생긴 것이니,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이란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불로장생을 원하는데, 얼마나 살아야 오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만년을 산다면 백 년 사는 것에 비해 영원히 사는 것 같지만, 우주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게 그것입니다.
하루살이를 보면, 2시에 죽는 것도 있고 8시에 죽는 것도 있고, 어쩌다 몇 마리는 10시까지 사는 것도 있지만,
우리가 볼 때는 길어야 하루, 짧으면 반나절이니 그게 그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20살에 죽고, 60살에 죽고, 100살까지 살다가 죽는 것과 같습니다.
오래 산다는 것도 다 우리의 관념일 뿐입니다.
옛날에는 환갑까지 살면 장수했다고 하지만, 요새는 70에 죽어도 단명하다고 합니다.
비교해서 생겨난 우리의 관념일 뿐이지, 존재에는 빠르고 더딘 게 없습니다.


벌집을 보면, 봄에도 바글바글하고 여름에도 가을에도 똑같이 바글바글하지만, 그 벌들은 같은 벌이 아닙니다.
벌은 빠르면 1주일, 오래 살아도 보름(또는 50일)밖에 살지 못합니다.
벌은 분명히 바뀌었지만, 우리 입장에서 볼 때엔 그 벌이 그 벌입니다.
저 위에서 보면 10만 년 전에 살던 인간이나 오늘날의 인간이나 그놈이 그놈으로 생각할 것이지만,
우리가 볼 때는 우리 조상들과 우리들은 완전히 다릅니다.


아침에 나서 저녁에 죽는 하루살이는 내일이 있는 것을 알 수 없습니다.
보름 만에 죽는 벌은 계절의 변화를 알 수 없습니다.
봄에 나서 가을에 죽는 것들은 내년에 또 봄이 오는 줄 알 수 없듯이,
우리도 이 사이클 안에서만 살면서 보니, 다음 생이 있는 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느 여신도 한 분이 저에게 해준 얘기입니다.
자기 친구 한 사람이 고생고생하다가 40이 넘어서 아파트도 장만하고 차도 사고 살만 했답니다.
근데 그때부터 남편이 바람을 피워 마음고생하고 있는 데, 몸이 아파 병원에 갔더니 암 말기라고 합니다.
길어야 3~4개월 남았다고 하니, 친구들이 모여 병문안을 가서 위로하고 감싸안아 주었습니다.
근데 병문안을 마치고 집에 가던 친구 한 사람이 교통사고가 나서 죽어버렸습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하루밖에 못 사는 사람이 4개월이나 살 사람을 위로하고 위문했습니다.
하루밖에 못사는 사람은 위로할 여유가 있었지만, 4개월이나 살 사람은 왜 슬퍼만 하고 있었을까요?
4개월 밖에 못살기 때문에 여유도 없고 괴롭고 불행한 게 아니고,
4개월밖에 못산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있기 때문에 괴롭고 여유가 없고 슬픈 것입니다.
몇 시간 밖에 못사는 주제에 남을 위로한 것은,

자기가 몇 시간 밖에 못산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있지 않았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모든 괴로움은 거기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겁니다.
하루밖에 못사는 인간도 남을 위로 하고 사랑을 베풀 수 있는데,
4개월이나 남은 사람은 그 사람보다 100배는 더 남을 위로해줄 수 있는 시간이 있습니다.
깨닫고 나면 4개월도 엄청나게 긴 시간입니다.
공자님께서는 아침에 깨닫고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법의 실상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지, 오래살고 일찍 죽고가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제법실상(諸法實相) : 이 세계의 실제의 모습
제행무상, 제법무아 : 모든 것은 연관되어 있고 변화한다

그러면 삼법인을 한 번 정리해보겠습니다.
제법실상, 이 세계의 실제의 모습,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연기라 합니다.
연기를 시간과 공간으로 나누어서 정리를 하면, 제행무상 제법무아, 모든 것은 변화하고 연관되어있다,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바로 알아차리면 괴로울 일이 없는데,
그것을 착각을 해서 거꾸로 알아, 영원한 것이 있고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있다고 안다면,
쥐가 쥐약을 먹은 것처럼 생각하는 것마다 그리고 하는 일마다 다 괴로움이 됩니다.
즐거움이 일어나는 것 같은데 그것마저도 사실은 잘 보면 괴로움입니다.


열반적정(涅槃寂靜) : 있는 그대로 보면 모든 괴로움은 사라진다
그 착각을 깨트리고 미망을 깨트리고, 있는 그대로 보면 모든 괴로움은 사라져 버린다,
이것을 열반적정이라고 말합니다.
법의 실상을 깨닫지 못하면 하는 것마다 다 괴로움이고, 법의 실상을 알아차리면 있던 괴로움도 다 사라져 버립니다.


자기 수행이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는 아주 간단하게 점검할 수 있습니다.
불법을 접한 후에 갈수록 번뇌가 적어지고 괴로움도 눈치 보는 것도 슬픔도 적어지면 공부가 되고 있는 중이고,
그걸 못 깨달아서 괴롭든지, 보시를 못해 괴롭든지, 절에 못나가 괴롭든지,
아무튼 하루하루 속박이 늘어나고 눈치와 괴로움이 늘어나면 지금 뭔가 공부를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토법당에 다녀보니까 기분이 좋고 생기가 돌고 부부싸움도 없어지면 제대로 듣고 공부하는 것이고,
여기와서는 받아 적고 베끼고 녹음도 하며 열심히 공부하지만,

집에 가서는 남편보고 이거 안 듣는다고 성질내면 공부가 거꾸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법륜스님의 법문을 듣고 자기 안목이 열린다, 그러면 공부를 제대로 한 것이고,
법륜스님만 좋아 내내 쳐다보고 다닌다 이러면 공부가 잘못되었다 이렇게 이해하면 됩니다.


시어머니가 절에 다니지만 맨날 굿이나 하고 점이나 보러 다녀도 내가 아는 게 없어 항의도 못했는데,
정법을 듣고 나니 시어머니가 틀린 줄 알아, ‘어머니, 그건 잘못되었어요’ 라고 한다면 이건 법이 아닙니다.
시어머니 하는 게 전에는 이해가 안 되었는데, 어머니가 저리 살아오셨고 이래서 그렇구나,
전에는 ‘안되요’ 했는데, ‘어머니 좋으시다면 점 한 번 보고 오세요’, 이런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면 공부를 제대로 한 것입니다.


또 지금 공부를 잘하는 것 같지만 내일 헷가닥하면, 오늘은 안 사로잡혔는데 내일은 사로잡힌 것입니다.
공부가 후퇴한 게 아니고 뭔가에 사로잡혀있고 뭔가에 어리석은 게 발동을 한 것입니다.


내가 잘했다는 생각을 내려놓으면 어두웠던 마음이 밝아지고 무거웠던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그러니 참회를 해야 됩니다.
‘내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하는데 죽을 죄를 지었다는데 너무 사로잡혀가지고,
‘나 같은 놈은 죽어야 돼’ 이러면 공부가 잘못된 것입니다.
‘제가 잘못했어요, 남편이 잘못한 줄 알았는데 제가 잘못했네요, 제가 죽을 죄를 지었네요’,
이렇게 생각을 돌이키니 마음이 가벼워지고 남편에 대한 미움이 사라졌다면 그건 참회가 된 것입니다.


남편이 잘했는지 못했는지 따지던 사람이, 잘했다 잘못했다는 생각을 놔버렸다면 공부가 제대로 되고 있는 겁니다.
시비분별이 끊어지는 쪽으로 가야되고, 또 끊겨야 됩니다.
문자에 집착해도 안되고 그렇다고 문자가 필요없다고 말해도 안됩니다.
제법은 무아라 허물이 없습니다. 허물은 다 내 마음에서 생긴겁니다.
마음이 미혹해서 허물이 있는 것이지 법에 허물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또 마음에 허물이 있는 게 아니라, 한 생각 사로잡히면 이름하여 허물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여기 앉아있는 분 모두 다 아무 이상이 없고 모두가 다 부처님입니다.
여러분들이 ‘난 부처가 아니라 중생이다’ 이러면 중생이 되는 겁니다.
성질 내가다가도 누가 화내지 마라하면, ‘그렇지, 내가 부처니까 화내면 안되지’, 이러면 부처가 되는 겁니다.
우리 이렇게 부처님처럼 한 번 살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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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은 생각 ***

 

삼법인 :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