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법문/3. 근본교리

[법륜스님의 '근본교리'] 제10강 인연법 - 첫 번째

상원통사 2015. 2. 23. 21:36

지금까지의 공부를 간단하게 정리해보겠습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시고 밝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이 세상의 모습은 각자 독립된 하나하나들이 모여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서로 다 연관 맺어있어, 뚝 떨어져 있는 홀로의 존재(단독자)는 없더라,
또 그러한 관계는 항상 똑같은 것이 아니라 변화하기에, 영원한 것도 없더라,
즉,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연관되어져 있고 변화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연관되어져 있다’를 ‘제법무아’, ‘변화한다(=항상함이 없다)’를 ‘제행무상’이라 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연기’이고, 두 마디로 말하면 ‘무아’와 ‘무상’입니다.
연기란 ‘연관되어 변한다’는 것이고,
무아와 무상은 ‘공간적으로는 연관되어 있고 시간적으로는 변한다’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이 존재의 참모습입니다.


아견(我見) : 내(我)가 있다
상견(常見) : 영원 불멸한 종자가 있다
사견(邪見) : 잘못된 견해에 빠짐. 근본무지, 무명, 전도몽상
그런데 범부중생은 이 존재의 참모습을 알지 못하고, 자기가 경험한 좁은 세계, 찰나의 세계에 사로잡혀서,
마치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고 말하는 것과 같이 그렇게 이 세계의 모습을 단정하고서,
연관고리를 보지 못해 각각의 존재가 독립된 개체로 알고, 변화를 보지 못하고 그것이 영원불멸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아견(나라고 하는 것이 있다)과 상견(그것은 항상하는 것이다)이라고 하는, 사견(잘못된 견해)에 빠져있습니다.
이것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어떤 환상을 본 것과 같은데,
이것을 우리는 무지(근본무지, 무명)라 하고, 반야심경으로 표현하면 전도몽상이라 합니다.


이렇게 존재하는 것들이 상호간에 특별한 관계가 없는 개별적 존재로 알고 있기에,
잡아먹기도 하고 억누르기도 하고, 이기는 것이 행복이고 힘 있는 자가 승리하는 것이고,
남보다 위에 올라가고 많이 가지는 게 잘사는 것이라는 인생관과 가치관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아견(我見) : 상놈은 상놈이고 양반은 양반이라는 종자(我)가 본래 있음

상견(常見) : 상놈은 상놈이라는 종자가 영원불멸하게 있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상놈은 상놈의 씨가 본래부터 따로 있다고 생각했고,(我見)
한번 상놈은 옛날에도 지금도 미래에도 변하지 않고 영원히 상놈이라 생각했습니다.(常見)
본래부터 씨가 있어 변하지 않는다 생각했으니, 아견과 상견은 떨어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상놈이란 게 양반과 연관되어져 있는 것이라면, 양반이 없어지면 상놈 또한 없어집니다.
무엇인가에 의지해서 형성되었으니 그 관계가 떨어지면 사라져 버립니다.
양반이 없어지면 상놈도 없어지니, 상놈의 입장에서 볼 때는 해방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것은 굉장한 얘기입니다
 

옛날에 여자는 부정탈만한 그런 천한 요소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으니,
정초에 첫 손님으로 다른 집에 가도 안 되고, 배에 타도 안 되고, 인삼밭에도 못 들어가게 했습니다.
그런데 여자란 여자라는 단독자가 아니라 남자와 관계 맺어서 존재하는 것이고,
천하다는 것은 귀하다는 것과 관계 맺어서 천함이 있는 것입니다.
본래는 귀함도 천함도 없고, 본래는 남자도 여자도 아니고 그냥 한 존재일 뿐인데, 
그것을 우리는 선이니 악이니, 옳으니 그르니, 천하니 귀하니 이렇게 마음으로 지은 것입니다.
본래는 없었는데(무아) 서로 연관 맺어져 생겨났고, 그 연관은 영원한 게 아니고 변하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천하다 해도 근본 속성이 천한게 아니라, 현재 연관 맺어져서 천한 것이다,
이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그 관계가 변하면 사라져 버린다, 이것이 연기법입니다.


연기법을 알지 못할 때는 상놈이고 여자이고 천하기에 고통에서 헤어날 길이 없었고,
헤어나기 위해서 노력을 해도 고통만 더욱더 키우는 쪽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는데,
연기법을 깨닫게 되면, 즉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있는 그대로의 법을 깨치게 되면,
바로 내가 현재 짊어지고 있는 좌절과 절망, 고통이 사라지는 이유가 그런데 있습니다.


이것은 내 마음속의 괴로움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과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연 속에 있는 나무나 동물이나 자원들은 인간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는 것이고,
그건 다 우리가 살기 위해 베고 잡아먹고 쓰라고 있는 것이라 생각해왔기 때문에,
많이 베고 많이 잡고 많이 캐는 것이 경제 성장이고 잘사는 길인 줄 알고 추구해 왔는데,
지금은 그것이 화근이 되어 지구가 멸망하느니 어쩌느니 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눈을 뜨고 자세히 보면 그것들이 다 나를 있게 하는 내 삶의 토대입니다.
내 손과 같고 내 발과 같은 그런 나의 일부분인 것입니다.
그것들이 있음으로 내가 있는데, 그것들을 잘라내고 죽이니 내가 살아갈 토대가 파괴됩니다.
자기가 자기 손목을 자르고 자기가 자기 발등을 찍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연기법을 알게 되면, 이것은 나를 해치는 것이고, 내 몸에 내가 상처를 주는 것이고,
다만 입맛에 집착해 발가락 손가락을 잘라서 먹은 것과 같구나, 이렇게 자각되어 집니다.
살기 위해 죽이고, 이기기 위해 폐단을 만들고, 내가 편하기 위해 상대를 불편하게 한 것들은,
공간적으로 보면 자기의 일부를 그렇게 한 것이고, 시간적으로 보면 그 고통이 곧 나에게로 되돌아오게 됩니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결과는 자신이 고통을 받기 위해서 노력한 것과 같게 되는 것입니다.


다르다고 나쁜 것이 아니라 각자의 다양한 개성이 모여 상호 존중해야 함
모든 것이 다 똑같아야 되는 것은 아니고, 서로 다르다고 나쁜 것도 아닙니다.
여러 가지 색깔과 모양과 크기의 꽃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화단을 만드는 것처럼,
각자의 다양한 개성들이 서로 모여 사회를 이루되 상호 존중해야 합니다.
부부관계에서도, 부모자식 관계에서도,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승은 제자를 무조건 돌봐주고 제자는 스승에게 무조건 은혜를 입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법문 시간도 저에게는 노동이고 여러분에게는 공짜로 혜택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 좋은 법이 있으니 좀 들어 주세요’ 라고 길가는 사람 붙들고 말해봐야 들어줄 사람 별로 없습니다.
돈 준다고 해도 마다할텐데, 공짜로 그것도 존경하는 눈초리로 들어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이렇게 들어주니 고마워서 저는 가능하면 강의를 많이 하려고 하고,
여러분들은 돈 주고도 듣기 힘든데, 공짜로 좋은 법문을 많이 듣고 있으니,
서로에게 좋고 서로가 고맙게 생각하니 서로가 웃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서로에게 이익을 주는 것이고, 각자가 다른 사람에게 쓰이는 것입니다.
저는 가르치는데 쓰이고, 여러분들은 배우는데 쓰이고 있습니다.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 잘 쓰이는 것이 가르치는 사람에게는 생명입니다.
빗자루의 생명은 먼지를 잘 쓰는데 있습니다.
안 쓸어지는 빗자루는 쓸모가 없고, 쓸모가 없으면 버리게 되고, 버린다는 것은 생명이 다했다는 것입니다.
잘 쓰이는 것이 쓸모가 있는 것이고 잘 사는 것이고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아내로서 잘 사는 길은 남편에게 잘 쓰이는 거고, 남편으로서 잘 사는 길은 아내에게 잘 쓰이는 거고, 
선생으로서 잘 사는 길은 학생에게 잘 쓰이는 것이고, 훌륭한 대통령은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곳에 잘 쓰이는 것입니다.


존재 자체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고, 잘 쓰이면 좋고 잘못 쓰이면 나쁜 것이라고 함
칼이든 빗자루든 걸레든 사람이든, 존재 그 자체는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닙니다.
그것이 잘 쓰이면 좋은 것이라 하고 잘못 쓰이면 나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잘 쓰이는 것을 기꺼워하고 즐거워해야 되는데 우리는 그것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잘 쓰이는 것을 거부한다는 것은 자신을 쓸모없는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고,
쓸모없는 인간이 된다는 것은 자신을 죽음으로 인도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일체개고(一切皆苦) : 제행무상, 제법무아를 모르면 괴로움이다
열반적정(涅槃寂靜) : 깨닫게 되면 즐거움이다

연기법을 다른 말로 하면 재행무상, 제법무아입니다.
제행무상과 제법무아를 모르게 되면 하는 일마다 다 괴로움이고(일체개고)
이걸 깨닫게 되면 하는 일마다 다 즐거움이 되고 괴로움은 없어집니다.(열반적정)


삼법인(三法印) :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
사법인(四法印) :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 일체개고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을 삼법인이라고 말하고, 일체개고를 포함하여 사법인이라 합니다.
법인이란 법(진리)의 도장이란 뜻으로, 불교의 사상적인 중심은 삼법인입니다
여러분이 불법을 공부할 때 그 가르침이 삼법인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면 그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고,
삼법인에서 벗어나거나 관계없는 것은 잘못된 견해이거나 다른 의도가 있어서 그럴 것입니다.

 

(제11강에 계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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