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0-2강에서 계속)
중국의 불교
중국은 인구도 많고 대국이고 과거 역사적 전통도 엄청나게 많이 갖고 있습니다.
인도보다도 더한 불교적 전통을 갖고 있고 수많은 문화재 등 많은 것을 갖고 있지만,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그 철학 아래 완전히 복속되어있기에, 세계화의 어떤 비전을 제시하기는 어렵습니다.
지금은 승려들이 그저 사찰을 관리하는 수준 정도이지만, 최근에는 빠른 속도로 복구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승려를 키워내고 사회주의의 영향을 제거해내는 등 자기복구를 하는 데에만도 4~50년은 걸리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세계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대안을 제시하는 이런 준비는 전혀 안 되어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만의 불교
대만은 자본주의 사회에 노출되어있고 서양문화도 다 받아들이고 경제력도 있는 굉장한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국가 자체가 국제사회에서 독립국으로 인정을 못 받고 있으니까
불교마저도 세계적인 활동을 하려고 할 때는 늘 제약이 따르는 것이 단점입니다.
대만 사람들은 불심이 굉장히 뛰어납니다.
기독교가 많이 들어오긴 했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불교적인 분위기를 갖고 있습니다.
특히 1967년 성운(星雲)스님이 개창한 불광사(佛光寺)는 5천 명이 동시에 법회를 볼 수 있는 대도량도 있습니다.
또한 미국 LA에도 서래사라는 불국사만큼 큰 절을 한번에 지어버렸습니다.
LA에 사는 우리 교민들이 50만 명이라 하면, 45만 명은 교회 다니고,
스무 개 정도 되는 한국 절에 다니는 사람 다 합해도 3~5천명 정도이지만, 서래사에 등록한 한국 사람만 오천 명이 된다합니다.
이것을 보면 불교가 문제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불교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불교에 호의적인 교민들은 많지만, 한국 사찰에서는 그런 요구를 수용해내지 못하기에, 이쪽으로 사람들이 가게 되는 것입니다.
대만불교는 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치거나,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는 이런 수준은 아닙니다.
즉, 사회운동하거나 다른 데를 지원하거나 다른 단체와 연대를 맺는 것 같은 활동은 거의 안하고,
자기 사찰 키우기, 자기들 영향력 키우기, 자체의 큰 행사들도 벌려나가고 확산시켜 나가는 그런 스타일로 보시면 됩니다.
베트남의 불교
베트남은 북부는 대승이고 남부는 소승적 영향을 갖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국가주의 체제하에 종교활동을 제대로 못하고 있으니 자기복구에만도 상당한 시간을 뺏길 것이고,
또 카톨릭 교도들과의 대립을 풀어나가야 할 그런 상황 하에 있습니다.
베트남 출신 중 유명한 분은 틱낫한(Thich Nhat Hanh, 釋一行, 석일행) 스님인데,
반전운동을 했으니 미국 정부로부터 환영을 못 받았고, 통일이 된 뒤에는 베트남 정부로부터도 환영을 못받아,
지금은 프랑스에 가서 매화마을이라는 공동체를 만들어 지내고 있는데
미국에 와서 법문을 하면 순식간에 많은 사람이 모일만큼 영향력이 있고,
또 미국에 유학을 했기 때문에 영어도 잘 하시고, 제자들도 버클리 출신들이 많습니다.
승려·명상가·평화운동가이자 시인이며, 불교사상의 사회적 실천을 강조해 '참여불교의 주창자', '인류의 영적스승' 등으로 불리며,
우리나라에도 두 번 왔다 가셨고, 책도 많이 번역되어 나와있습니다.
틱낫한 스님은 다른 것은 몰라도 고기 먹는 사람들과는 식사를 같이 안하는 분입니다.
티벳의 불교
그다음 세 번째 그룹이 밀교인데, 밀교는 중심이 티벳이고 신심이 아주 돈독합니다.
티벳은 지금 중국의 지배를 받고 있는 독립이 안된 상태로, 무장독립운동에 대한 요구가 계속되었지만,
달라이 라마가 인도에 망명해 있으면서 비폭력으로 해결하려고 했기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인도에 망명 온 티벳사람들은 비록 유랑생활을 할 지라도 인도사람들보다 더 깨끗하게 잘 살고 있고,
미국이나 유럽으로 이민을 가도 자기 문화를 그대로 지키고 신앙도 그대로 지킵니다.
한국 사람들이 미국에 가면 미국 물들지, 미국사람이 한국 물드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티벳 사람들은 다른 나라에 가도 그 나라 사람들이 오히려 티벳에 물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티벳사람들은 나라를 잃고 전 세계에 흩어진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지만,
그게 밀교를 전 세계에 전파하는 씨를 뿌리는 것과 같은 그런 장점이 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달라이 라마의 인기가 굉장합니다.
달라이 라마라면 삽시간에 수천 명이 모여들고, 연설하면 미국사람들이 기립박수를 보낼 정도이고,
뉴욕같은 데 가보면 상품 선전하는데도 달라이 라마가 나옵니다.
티벳 인구가 이백만 정도 밖에 안되지만, 전 세계 불교를 대표하는 사람을 말한다면 티벳의 달라이 라마를 꼽습니다.
숫자로는 우리나라의 작은 종파 수준밖에 안되지만,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그렇게 큽니다.
그러나 앞으로도 계속 이런 영향력이 있을까에 대해서는 조금 더 지켜봐야 됩니다
티벳도 아직 자본주의 사회에 전면으로 노출이 안 되어 있습니다.
노출이 되었을 때도 물들지 않고 오히려 그 병폐를 치유하는 것이 된다면, 이것은 엄청나게 새로운 것이 되지만,
폐쇄된 상태에서의 순수성이라는 것은 온실에서 자라는 화초와 같기 때문에 이게 풀리면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또한 현재 서양 사회에서의 달라이 라마와 티벳 밀교의 영향력이라는 것이,
정말 밀교 사상 자체의 힘인가 하는 건 우리가 조금 더 생각해봐야 됩니다.
왜냐하면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 부분을 이용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미국사람들이 중국에 대한 견제 욕구를 발동하는 이런 것도 충분히 염두에 둬야지,
정말 서양에 순수하게 영향력이 있는지는 조금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봐야 됩니다.
네팔과 부탄의 불교
네팔과 부탄의 불교는 밀교입니다.
네팔은 힌두교 왕국인데 10%가 불교이고, 부탄은 75%가 불교도인 불교국가입니다
부탄은 제가 못 가봤지만, 불교적 가치가 아주 잘 이루어졌고 생활도 깨끗하고 환경도 잘 보존이 되어있다 합니다.
그러나 몇 십 만 정도의 인구를 갖고 세계적으로 영향을 주기는 어렵습니다.
몽골의 불교
몽골은 징기스칸이 대제국을 건설했던 그런 저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몽골도 사회주의의 오랜 지배 하에서 불교나 전통사상이 탄압받았다가, 지금 복구하고 있는 중입니다.
여기는 지금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하나 있는 데 그것은 바로 한국의 기독교입니다.
몽골 인구는 200만 명이 채 안되고, 그중에서도 80만 명이 울란바토르에 살고 있는데,
그곳에 한국 선교사가 400명이 와있다고 합니다.
이들이 엄청나게 물량공세를 하니까 종교를 넘어서서 전통문화 보존 등의 문제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인도, 몽골, 중국 등에서는 선교의 자유가 없으니, 유학생이나 관광 비자로 들어와 활동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불교
다음은 서양의 불교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미국은 100여년 전에 불교가 전래가 되었는데, 현재 미대륙에는 캐나다, 멕시코 일부에도 전래되었습니다.
비록 세력은 작지만 미국에서 신장세가 가장 빠른 종교를 말하라면 불교를 꼽습니다.
미국의 불교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아시아권에서 이민자가 들어오면서 불교신자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고,
또 하나는 지적 상류계층, 즉 대학교수, 의사, 변호사, 신부 등에 의해서, 불교가 빠른 속도로 전파되고 있습니다.
이민자들의 불교는 그 나라의 전통문화를 전승하는 수준이지 미국의 주류사회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고,
소수민족 문화로서의 보존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습니다.
유럽의 불교
유럽은 200여년 전에 영국을 중심으로 해서 네델란드, 프랑스 이런 쪽에 전파되었습니다.
영국은 스리랑카와 버마에서, 프랑스는 베트남에서 불교가 들어와서 영향을 끼쳤고,
독일은 영국이나 프랑스보다 나중에 불교가 들어오지만, 명상을 하는 것은 독일의 불교세가 셉니다.
유럽에서는 불교를 종교라기보다 생활철학으로 보기에, 불교인들은 일반인들도 있지만 카톨릭 신자들이 많습니다.
방콕에 있는 INEB라고 참여불교 세계 모임이 있는 데, 그 총무가 독일 사람인데 카톨릭 수사입니다.
지난번에 미국에서 불교·기독교 회의할 때 불교의 사상을 가지고 비폭력운동, 환경운동 등 여러 토론을 하는데,
그 회의에 참여한 사람의 70%가 카톨릭 신자였고, 일주일동안 회의한 장소도 카톨릭 대학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서양에서의 불교는 종교라기보다는 새로운 사상, 새로운 학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조선시대에 카톨릭을 받아들일 때 서학이라해서 학문으로 받아들였던 것과 같습니다.
또 네델란드, 스웨덴, 이탈리아, 그리고 호주에도 불교가 요즈음 많이 전파되고 있습니다.
달라이 라마의 영향으로 밀교, 대승불교의 유식학, 공사상, 젠 부디즘, 비파사나 선 등이 서양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서양에는 물질주의가 팽배함에 따라 천당간다는 것도 잘 안믿으며, 생의 마감에 대한 엄청난 허무감이 있는데,
불교의 사상, 명상 수련 등이 이들의 정신적인 공허감을 많이 메꿔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자들 중에는 운동선수, 예술인, 영화배우 이런 사람들이 많고,
심리학자, 정신분석학자들은 유식학 공부를 많이 하는 편이고,
의사, 변호사, 교수 등 머리를 많이 쓰는 전문 직종 종사자들은 명상을 많이 하는 데,
이런 사람들 중에는 하던 일을 그만 두고 1년씩 비파사나 선이나 젠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이들에게는 꼭 종교라기보다는 자기의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이렇게 하는 겁니다.
대학에서는 대승의 공사상이나 연기사상 등이 철학으로 사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아직 일반 서민 대중들은 불교에 관심이 없지만, 상류계층에 퍼지면 빠른 속도로 확산될 가능성을 갖고 있습니다.
서양사람들이 갖는 문제의식과 불교가 결합해서 나타난 것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명상으로, 요즈음 유행병처럼 퍼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밥깨나 먹고 살 정도 되면 주말에 골프치러 가는 데, 이것은 수준낮은 사람들이 하는 것이고,
‘주말에 명상하러 가자’ 이게 미국 상류사회에서는 새로운 풍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또 환경운동 하는 사람들에게는 불살생계율이 영향을 미치고 있고,
채식주의가 늘고 있고 동물보호운동이 굉장히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비폭력운동도 불교의 영향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아시아적인 가치가 서양사회에 끼친 영향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서양사람들이 아시아에 와서 수행을 배우지만, 좀 있으면 서양의 수행법이 역수입되어,
미국 사람이 가르치는 수행을 배운다고 난리법석을 피우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즉 동양의 수행법이 서양의 상업주의와 결합해서, 새로운 지식산업으로 다가올 수 있는 것입니다.
물질주의가 만연하면 할수록 정신적인 불안감은 높아져만 갈 것인데,
술 안 먹고 아편 안 하고도 우리를 편안하게 해준다고 하면 돈이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그러니까 화약, 나침반, 인쇄술처럼 동양에서 서양으로 건너간 것을 서양에서 개발하고 상업화하고,
우리는 그것이 굉장한 것인 줄 알고 따라가는 그런 시대가 올 가능성도 있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오늘의 세계 불교 현황을 간단히 둘러봤습니다.
불교의 영향으로 서양사회에서 관심을 갖거나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정신적인 편안함, 심리적인 안정에 영향을 주는 것에는 참선과 비파사나 선이 있고,
대승불교의 유식학 등은 심리학이나 상담심리학 같은데 영향을 주고 있고,
화엄철학 등은 서양철학에 큰 영향을 주고 있고,
일부는 불교사상과 과학(천문학, 물리학)을 결합해서 신과학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고,
환경문제나 소비주의 극복 등 인류가 당면한 여러 과제를 해결하려는 참여불교의 형태로도 나타나는 게 있고,
인권, 소수민족, 난민문제 등 아시아권의 자기 고뇌가 오히려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바라보게 하는 데 영향을 주는 등,
현재의 불교는 세계적 문제에 있어서 작은 싹들을 틔우는 수준이다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제21-2강에 계속합니다~~)
이 강의는 '정토회 > 정토TV > 법문 보기 > 불교의 역사'에서 동영상으로 볼수 있습니다.
*** 짧은 생각 ***
문맥으로 볼 때, 이 강의들은 1998년 또는 1999년에 행해졌던 것 같습니다.
조금 수정하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원강의에 충실하게 적었습니다.
각국의 불교의 역사는 별도의 책으로 공부하는 게 가장 확실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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