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법문/2. 불교의 역사

[법륜스님의 '불교의 역사'] 제18-2강 선불교 - 두 번째

상원통사 2014. 11. 18. 21:36

(~~ 제18-1강에서 계속)

 

제4조 도신은 일곱 살에 출가하여 열네 살 되던 해 당시 여든 두 살이던 제3조 승찬을 만납니다.
도신 : 무엇이 불심입니까?
승찬 : 지금 네 마음은 어떠냐?
도신 : 저는 지금 마음이 없습니다.
승찬 : 네가 마음이 없는데, 어찌 부처님에게 마음이 있겠느냐?
도신 : (잠시 후) 제가 해탈할 수 있는 법문을 일러주소서.
승찬 : 해탈이라니, 누가 너를 묶었더냐?
도신 : (……) 아무도 묶지 않았습니다.
승찬 : 묶은 이가 아무도 없다면 너는 이미 해탈인이다. 어찌하여 다시 해탈을 구하는가?
승찬의 이 법문은 후대에 해탈법문으로 일컬어집니다.
이 해탈법문은 자신의 마음을 '묶은 자'는 다름 아닌 자신, 자기의 마음임을 정곡으로 파고들었다는 점에서,
달마의 '불편한 마음', 혜가의 '죄의식에 사로잡힌 마음'의 예와 일맥상통합니다.


승찬의 법을 이은 도신 때부터 제자들을 모아놓고 공부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도신은 오백대중을 거느리고 살았는데, 초기에는 능가경을 나중에는 금강경을 소의경전으로 했습니다.
도신의 법을 이은 홍인대사에게는 칠백 대중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상수제자가 신수대사였습니다.
신수는 상류층 가문에서 태어나 유학과 노장의 전적들을 공부하다가 13살에 출가한 후,
교학공부에 매진하여 삼장의 경론과 사분율의(四分律儀)에 통달했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수행방법을 찾아, 선지식을 찾아다니다 46세에 비로소 홍인을 만나 수행한지 6년만에,
'동산의 법이 모두 신수에게 있다'라는 칭찬을 들을 정도로 불도의 깊은 경지를 이루었습니다.


한편 중국의 변방인 남쪽 영남지방에, 나무해서 어머니를 봉양하며 살고있는 노총각이 있었는데,
길가는 스님을 만나 불교를 공부하게 되면서 발심을 해가지고 홍인대사의 처소로 찾아옵니다.
홍인 : 어디서 왔느냐?
혜능 : 영남에서 왔습니다.
홍인 : 뭐 하러 왔느냐?
혜능 : 부처가 되려고 왔습니다
홍인 : 영남의 무지렁이(오랑캐)에게는 불성이 없거늘 어떻게 부처가 되려고 하는가?
혜능 : 사람에게는 남쪽과 북쪽의 차이가 있겠지만 불성에 어찌 남북이 있겠습니까?
홍인 : (적잖이 놀랐지만) 쓸 데 없는 소리 하고 있네. 야 임마, 저리 가서 방아나 찍어라!
홍인대사는 혜가의 안목이 열린 줄은 알았지만, 사람들이 해칠까 해서 출가를 허락하지 않고 부목으로 일을 시켰습니다.
이렇게 그는 8개월간 묵묵부답으로 방아만 찍고 장작을 쪼개는 일만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홍인대사는 불법의 큰 뜻을 깨달은 게송을 가장 알맞게 지어 보인 이에게 가사와 법을 전하겠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신수대사가 계시는 데 우리가 뭘..’ 하고 다 포기했고, 신수대사만 게송을 지어 복도 벽에 붙였습니다.

 "身是菩提樹   몸은 깨달음의 나무요
  心如明鏡臺   마음은 밝은 거울과 같나니
  時時勤拂拭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勿使惹塵埃   티끌과 먼지가 묻지 않게 하라"


방아를 찧던 혜능이 그것을 보고는 ‘저것은 아직도 문턱에 얼쩡거리는 얘기지 문턱을 넘지 못했다.’
혜능은 읽고 쓸 줄 몰랐기에 한 동자에게 부탁하여 자신의 게송을 적어 반대편 벽에 붙였습니다.

 "菩提本無樹   깨달음은 본래 나무가 없고
  明鏡亦非臺   밝은 거울 또한 받침대 없네
  本來無一物   본래 한 물건도 없거니
  何處惹塵埃   어느 곳에 티끌과 먼지 있으리오"

 

이렇게하여 혜능은 홍인대사에게 인정을 받아 신수를 누르고 6조의 지위를 결정지었지만,
홍인의 제자들인 칠백 대중으로부터는 인정을 받지 못하였기에 야반도주를 하게 되었고,
혜능이 없어진 후부터 홍인대사는 법상에 오르지 않아서 제자들이 몰려가 물었더니,
홍인대사는 ‘내 도는 이미 가버렸다, 어째 이를 묻는가?’ 라고 말합니다.
제자들은 그가 혜능임을 알고 법의 징표(부처님의 가사와 발우)를 뺏으러 몰려갑니다.
혜능은 가장 앞장서서 쫒아오던 혜명을 만나자 가사를 반석위에 얹어놓고 말합니다.
혜능 : 어서 그 가사를 들어보이게나!
       (가사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고, 혜명을 고개를 흔들며 말합니다.)
혜명 : 저는 가사가 아니라 가르침을 구하러 여기까지 왔나이다.
혜능 : 선도 악도 아닌 중간 마음은 그 무엇이던고? 빨리 대답하라!
혜명은 가사가 아니라 5조 홍인이 혜능을 떠나보낼 때 전수한 가르침을 알고 싶어 왔다가,

혜능의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의 문이 열렸기에, 혜능을 향해 합장 예배했습니다.

혜명은 혜능에게 급히 남방으로 가도록 했고, 그 뒤 많은 제자들이 뒤쫓아왔지만 그를 잡지는 못했습니다.
이렇게 그는 난을 피해서 십 몇 년을 숨어 지내다가 스승이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 법을 펴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한 비구니가 혜능에게 묻습니다.
비구니 : 글을 모르면서 어찌 그대가 진리를 안단 말이오?
혜능   : 진리는 하늘의 달과 같고, 문자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다.

          달을 보는데 손가락을 거칠 필요는 없다.
이것이 선종의 유명한 '불립문자(不立文字)'입니다.


한편 신수대사는 당나라 측천무후의 환대를 받고 국사라는 최고의 지위에 오르지만,
혜능 일파는 선불교 안에서도 사실은 인정을 제대로 못받았습니다.
신수의 북종선은 그 제자까지는 훨씬 더 성했지만 그 이후에 법이 계승되지 못하고 쇠락합니다.
반면 혜능의 제자 가운데서는 뛰어난 사람들이 많이 출현하면서 오늘날 선불교의 주류를 형성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제4의 불교, 소위 선불교라고 하는 새로운 불교의 일어나던 초창기 상황입니다.

 

화엄종이나 천태종 같이 경을 중심으로 하는 전통불교의 입장에서 볼 때 선불교는 이단이었습니다.
중국의 전통에서는 경전이나 논에 근거하지도 않고 부처님 법을 얘기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얘기입니다.
대승경전에도 다생겁래로 한량없는 보살행을 해야 깨달음에 이른다고 되어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것들이 간단하게 깨닫는다고 하니, 이것은 말도 안되고 불법을 망치는 것이라는 겁니다.
또한 공부를 할려면 어느 경전을 읽고 어떤 스승 밑에서 어떻게 배웠다는 근거가 있어야 되는데
그냥 몇 마디 문답에 의해서 깨닫는다, 이건 말도 안되는 얘기이고, 그렇게 깨닫는다는 경전적 근거도 없습니다.
그러니 이단으로, 부처님 법을 계승한 사람이 아닌 것으로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분위기였으니 3조 승찬대사까지는 한 곳에 머무르면서 제자를 가르치지도 못하고 돌아다니다가,
4조 도신대사에 와서야 겨우 절 하나 차지해서 가르쳤습니다.
중국에 수천수만 개의 절이 있었는데 백년이 흘러서야 겨우 절 하나 만든 그런 수준이었습니다.
그렇게 세력이 미약하고 사이비 취급을 받으니, 자신들이 부처님의 정법을 계승했다는 증거가 필요했는데,
그 역사적 증거가 바로 삼처전심(三處傳心)입니다.
부처님은 많은 법문을 했는데 그것은 다 중생의 병에 따라 설한 방편설에 불과한 것이다,
부처님의 진정한 정법안장(正法眼藏)은 대중 있는 자리에서 그렇게 말로 표현하지 않았다,
그것은 정말 비밀히 눈뜬 사람과 눈뜬 사람 사이에 전해진 것이다,
부처님의 정법안장은 세 번, 말씀을 통하지 않고 말씀 밖으로 전해졌다
이렇게 ‘부처님이 가르침 밖에 별도의 전한 것이 있다’는 교외별전(敎外別傳)을 주장하는데,
그 교외별전의 핵심이 삼처전심(三處傳心), ‘말씀 밖으로 세 번 전해졌다’는 것입니다.


다자탑전 분반좌(多子塔前 分半座)
중인도 비사리성(毘舍離城) 북서쪽에 있는 다자탑 앞에서 부처님이 설법을 하고 계실 때,
가섭이 누더기를 입고 뒤늦게 오자 여러 제자들은 그를 얕보고 자리도 안비켜주었는데,
부처님은 자기가 앉아 있던 자리 절반을 가섭에게 양보하여 거기 함께 앉도록 하였다,
이것이 마하가섭 존자에게 마음을 전한 첫 번째 증거입니다.


영산회상 거염화(靈山會上 擧拈花)
하루는 영취산(靈鷲山)에서 대중들에게 설법을 하고 있을 때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는데,
부처님이 그 꽃송이 하나를 들어 보이자, 제자들은 무슨 뜻인지를 몰라 어리둥절 하는데 가섭만은 빙그레 웃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바른 법, 열반의 묘한 마음을 가섭에게 전한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염화시중의 미소, 줄여서 염화미소(拈花微笑)라고 말합니다.


사라쌍수하 곽시쌍부(沙羅雙樹下 槨示雙趺)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 많은 제자들이 장례를 치를 때, 화장을 하려고 불을 붙여도 불이 안 붙는데,
멀리에 있던 가섭존자가 일주일 만에야 도착해서 부처님을 세 바퀴 돌고 그 발 아래 엎드리니,
그때야 부처님께서 두 발을 관 밖으로 드러내 보이셨다는 것이 세 번째 증거입니다.


이렇게 교외별전이라는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면서,
가섭존자로부터 지금에 이르도록 정법을 계승한 법맥이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게 서천28조(西天28祖)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법은 삼처전심에서 보듯 제1세 마하가섭 존자에게로 전수되었고,
그 다음에 아난다, 상나화수, 우바국다, 제다가, 미차가, 바수밀다, 불타난제, 복타밀다,
제10세 협존자, 제11세 부나야사 존자에게로 전해졌는데 여기까지가 소승불교입니다.
그다음 이 정법은 소승불교에서는 법맥이 끊기고 대승불교로 옮겨왔는데,
부나샤야 존자에서  제12세 마명존자에게로, 그 다음에 가비마라, 용수, 가나제바, 라후라다,

승가난제, 가야사다, 구마라다, 사야다, 바수반두, 마나라, 학륵나, 사자, 바사사다, 불여밀다,
그리고 제27세 반야다라 존자, 제28세 보리달마 대사에게 전승되었습니다.


그런데 보리달마대사가 보기에 인도에는 이미 불법이 한물갔기에, 중국으로 와서 혜가대사에게로 법을 전했고,
혜가대사로부터 승찬대사, 도신대사, 홍인대사에게로 법이 전해왔다는 소위 조사원류라는 것을 내놓으며,
이게 정법이라하면서 선불교의 정당성을 주장합니다.

 

 

(제19-1강에 계속합니다~~)

 

이 강의는 '정토회 > 정토TV > 법문 보기 > 불교의 역사'에서  동영상으로 볼수 있습니다.

 

 

*** 짧은 생각 ***

 

초기 선불교에 비하면 지금의 정토회는 엄청난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