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법문/2. 불교의 역사

[법륜스님의 '불교의 역사'] 제17-1강 대승불교의 전래 - 두 번째

상원통사 2014. 10. 29. 22:55

(~~ 제16강에서 계속)

 

중국은 2~4세기경 많은 승려들이 서역에서 들어오고, 그들에 의해 경전의 번역작업이 이루어집니다.
또한 이 시기동안 불교는 국가이념을 두고 도교와 서로 경쟁을 하는데,
왕이 도교를 믿으면 불교를 탄압하고, 반대로 개종을 하면 도사들을 다 죽여버립니다.
이런 과정에서 경전이 불태워지고 사찰이 부서지고 승려들이 죽는 법난이 계속 발생했기에,
불법을 남기고자 석굴을 만들고 불경을 돌이나 바위에다 새기는 등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기도 합니다.


북방에는 서역에서 오신 스님들이 왕의 스승이 되거나 국가의 지원을 받아서 번역사업을 하게 되는데,
생존시부터 돈황보살이란 존칭을 들었던 축법호(竺法護)는 진(晉)나라 때 돈황(燉煌)의 승려로,
정법화경(正法華經) 등 총 145종의 불경을 번역했고, 중국에 관음(觀音)을 알리기도 했습니다.
이후 4세기부터 중국불교는 서역사람이 아니라 중국 사람에 의해서 중국화됩니다.
동진(東晉) 시대에는 초기 중국 불교의 기초를 닦은 학승(學僧)으로 도안(道安)스님이 있는데,
전진왕(前秦王) 부견(苻堅)은 호북성 양양(襄陽)을 정벌하고 도안을 얻은 뒤 기뻐하며 말하기를,

“내가 10만 군사로 양양을 취하여 한 사람 반을 얻었으니, 안공이 한 사람이요, 습착치()가 반 사람이다.”라고 했답니다.

또 도안스님의 제자인 혜원(慧遠)스님은 염불을 중심으로 하면서 결사운동을 전개하게 됩니다
그 당시에는 불교가 탄압을 받고 언제 법난이 일어날지 모르는 그런 시대였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염불결사를 구성을 해가지고 불교를 널리 전하게 됩니다.


이 당시 불교에는 신비주의적인 요소도 많이 들어있습니다.
당시엔 왕이 불교가 더 센지 도교가 더 센지 실험을 하기도 했는데,
도교책과 불교책을 불에 집어넣어 도교책이 먼저 타면 그날로부터 도교는 다 죽습니다.
이 당시 서역에서 오신 고승들 중에는 신통이 자재한 분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은데,
불교를 엄청나게 탄압하던 왕일지라도, 신통한 스님이 나와 이런 도술경쟁에서 이기게 되면
하루아침에 불교로 개종해서 모든 도교사원은 전부 불교사원으로 바뀌고 도사들은 다 죽고,
뒤집어지면 이번에는 절이 전부 도교사원이 되고 승려들은 다 쫒겨나고 경전은 불태워지는 등 혼란스러웠는데,
이런 혼란 속에서도 불교는 북방지역에서 자리잡아가게 되고 많은 경전이 번역되게 됩니다.


격의(格義)불교 : 중국의 어떤 사상과 비교하여 이해를 함
남방
에도 불교가 도입되는데, 북방과 달리 남쪽은 비교적 안정되어 있었지만,
현실적이고 이해타산적이고 실용적인 중국인들이기에, 전혀 다른 인도사상인 불교를 이해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중국의 어떤 사상과 비교해서 불교를 이해하려 했는데, 이때 비교되었던 사상이 주로 도교입니다.
즉 불교에서의 ‘공(空)’을 도교(노장사상)의 ‘무(無)’로써 설명하고 해석하는 방법을 썼는데,
불교 자체로는 이해하기가 어려우니까 중국의 어떤 사상과 견주어 이해하기 시작한 것을 격의 불교라고 말합니다.


구마라집(鳩摩羅什 Kumar jiva, 344~413)
이 시기에 유명한 사람이 구마라집인데, 이분은 당시 대부분의 경전을 다 번역했습니다.
그는 대품반야경, 법화경, 아미타경, 중론, 비바사론 등 경률 74부 380여권을 펴냈는데,
중론 십이문론 백론은 법성종의 경전으로, 성실론은 성실종의 경전으로,
법화경은 천태종의 경전으로, 아미타경은 정토종의 경전이 되었습니다.
그는 신강의 구자 출신으로 7살 때 출가하여 먼저 소승을 배우고 대승 불교에 귀의했는데,
전진왕 부견이 구자국을 칠 때(384) 중국으로 잡혀왔다가, 양주에서 불법을 설파했고,
후진 홍시 3년(401) 장안(長安)에 들어가 국사(國師)가 되어 불경을 번역하고 강론했습니다.


이렇게 혼란기 속에서 불교가 중국에 정착하는 과정에 중국문화가 결합된 위경도 함께 나타납니다.
위경이란 효를 강조하거나 복을 비는 부모은중경, 천지팔양경 같은 주술적인 내용이 있는 것으로서,

부처님이 직접 교설한 것처럼 ‘불설()’이라는 이름을 빌려 중국에서 새로 제작된 경전을 말합니다.


중국불교는 AD1세기에 전래되어 2~4세기에 경전이 번역되고,

5~6세기 연구가 깊어지고 7세기에 꽃을 피움
선진문화가 후진문화로 전파될 때는 번역되는 게 아니라 언어채 통째로 가기도 하는데,
스리랑카, 버마, 타이 등에서는 경전을 번역하여 쓰는 게 아니라 팔리어 그대로 사용합니다.
그러나 문화가 대등하거나 낮은데서 높은 데로 갈 때는 번역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불교가 미국으로 가려면 영어로 번역해주어야 그들이 한국 불교공부를 하지만,
우리가 미국의 과학기술이나 음악을 배우려면 미국말을 먼저 배워서 그걸 가져옵니다.
미국이 우리나라에 뭘 배워가려할 때 우리말을 배워서 가져가는 것은 소수이고,
우리나라 사람이 영어를 배워서 우리 것을 영어로 번역해 갖다 줘야 그들은 공부를 합니다.
문화의 흐름과 성질이란 그런 것입니다.


중국에 불교가 전래된 초기에는 번역된 경전도 없어 대중화되기 어려운 실정이었기에,

당시 중국에 간 인도스님들은 그냥 살고 활동했을 뿐이지 포교는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게 생활하면서 인도나 서역 스님들이 중국말을 배워서 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했는데,

거의 3백년 동안 경전의 번역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전하고 싶은 사람이 그 나라 말을 배워서 전달하는 그런 과정을 거친 것입니다.


그러나 불교가 중국에 널리 퍼져 국교가 되다시피 되자 상황이 역전됩니다.
불교를 숭상하니까 불교의 발생지인 인도를 위대하게 보게 되고,
또 중국 내에도 중국승려들이 많이 있으니 인도 스님들이 중국에 올 필요도 점차 줄어들었습니다.
거꾸로 중국스님들이 인도로 가서 인도 말을 배워서 경전을 번역하게 되는데,
중국사람이 자국어로 번역한 것이니, 외국인이 번역한 것보다 공부하기는 훨씬 더 좋아졌습니다.
당나라 때 현장법사는 인도에서 경전을 가지고 와 새로 번역을 했는데 이것을 신역이라 합니다.
구역 중에는 구마라집의 번역본이 대표적이고, 신역 중에는 현장의 번역본이 대표적입니다.


중국에 불교는 AD 1세기에 전래되고 2~4세기에 번역작업이 이루어졌고,
5~6세기에 연구가 점점 깊어지면서 7세기에 꽃을 피우게 되는데, 이때가 수당시대입니다.
중국은 남북조가 서로 다투다가 북방을 통일한 수나라 양제가 남쪽까지 점령해 중국 천하를 통일한 후,
동쪽의 고구려까지 점령하려 하지만,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패하고 수나라는 망하고 맙니다.
수나라를 계승한 게 당나라인데, 고구려는 결국 당나라에게 정복당하게 됩니다.
이렇게 수나라와 당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면서 중국에는 새로운 문화가 꽃피게 되는데,
한나라 때는 황하강 중심의 작은 문화가 중국대륙의 여러 문화를 종합하여 새로운 문화를 꽃피웠다고 본다면,
당나라는 중국적인 문화에 서역·인도·북방민족의 문화까지도 융합하였기에 국제문화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때 불교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중국불교의 특징 : 사상적인 연구가 깊어짐(종파불교 형성)
중국불교의 특징은 사상적인 연구가 굉장히 깊어졌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중국사람들은 불교를 종교가 아닌 학문(철학)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불교가 민간인에게 먼저 전달되었다면 민간의 신앙과 결합했을 것인데,
왕궁과 사대부 가문을 통해서 전달되었기에 학문적으로 연구를 한 후에 종교화 되었는데,
이렇게 하다보니까 종파불교가 형성되었습니다.
인도에서는 아함경이 중심이면서 계율의 차이 등에 의해서 부파불교가 형성되었는데,
중국은 대승경전 중에 어떤 경전을 소의경전으로 했느냐에 따라 종파가 형성됩니다.
화엄종(화엄경), 천태종(법화경), 열반종(열반경), 정토종(정토삼부경), 삼론종(삼론) 등,
수나라를 거쳐 당나라 초기에 오면서 여러 종파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러면서 각 종파 사이에 경쟁을 하게 되고, 자기 종파의 우수성을 철학적으로 설명하려 했기에,
중국불교는 경전이 한 권이면 주석서가 열 권도 백 권도 넘는 이런 현상이 나타납니다.
* 소의경전(所依經典) :  불교의 각 종파에서 신앙과 수행의 근본으로 의지하는 경전


교상판석(敎相判釋) : 가르침의 모양을 판단하고 분석함
또한 가르침의 모양을 판단하고 분석하는 교상판석이 일어나는데,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한 형식과 순서, 내용의 우열 등에 따라 경전들을 분류하여 체계를 세운 것’을 말합니다.

천태 지의선사는 부처님의 설법 중에 법화경을 가장 높은 위치에 두고, 경전 전체를 조직적으로 체계화시켰습니다.
부처님께서 도를 이루시고 삼칠일동안에 무궁무진한 얘기를 다 설했는데 대중이 아무도 못 알아들었다(화엄경),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중생의 근기에 맞게 유치원생 가르치듯이 녹야원에서 하나하나 12년간 가르쳤다(아함경),
그 뒤 8년 동안 유마경, 금광명경, 능가경, 승만경, 무량수경 등을 가르쳤다(방등부), 
그리고 21년동안 반야부 계통의 여러 경전을 설하고(반야부),
생의 마지막 8년 동안 법화경을 설하고, 돌아가실 때 열반경을 설했다, 이렇게 가르침의 모양을 만들었습니다.
* 방등부 : 소승의 아함경과 대승의 법화경·화엄경·반야부를 제외한 대승의 모든 경전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앞의 것은 다 연습이고 뒤의 것이 진수만 설한 것이 되기에, 
팔만대장경의 모든 경이 다 중요하지만 그중에도 알짜배기는 법화경이다 이런 것입니다.
이런 논리를 통해 천태 지의대사는 법화경을 소의경전으로 삼고 천태종을 창종했는데,
중국에서 천태종은 아주 번창했으며, 우리나라도 고려시대에는 천태종의 세력이 컸습니다.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오교를 합하면서 사라졌다가, 최근에 천태종이 다시 일어나고 있습을 니다.


그런 분석에 따르더라도 맨 마지막에 설한 요게 알짜배기다(열반종),
못 알아들으니까 구질구질하게 다시 이야기한 것이고 처음에 설한 게 진짜배기다(화엄종), 
불법을 공부하는데는 어려운 문과 쉬운 문 두 개로 분류하는데,
화엄경이다 법화경이다 반야부다 하는 것은 내용은 좋지만 알기가 굉장히 어려운 반면,
정토의 문은 나무아미타불 열 번만 부르면 죽어서 극락가니 이게 쉽다(정토종),


진각종 등 밀교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두 가지로 나누는데,
말씀을 통해서 바깥으로 드러난 게 있고(현교), 비밀히 숨겨진 게 있다(밀교),
화엄종 천태종 법화종 등 이것은 다 현교에 속하고, 오직 밀교만 숨겨진 가르침이다,
다른 것은 다 죽고 난 뒤에 극락을 가든지 다음 생에 부처가 되든지 이러지만,
밀교는 부처님께서 비밀히 전수한 것이기 때문에 공부하면 이 육신 그대로 가지고 부처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밀교가 제일 낫게 보이기도 합니다.


인도의 부파불교에서는 경전의 해석을 잘했다는 것으로 자신들의 우월성을 나타냈던 반면,
중국의 대승불교에서는 소의경전에 따라 가르침의 모양을 분석·판별해 볼 때(교상판석),
자기들이 가장 우위에 있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해서 여러 가지 종파가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이럴 때 선종도 나타납니다.
지금까지 있는 모든 종파를 다 한통으로 뭉뚱거려서 교종이라 하고, 우리는 선종이다,
교종은 부처님의 말씀이고 선종은 부처님의 마음인데, 말씀보다 마음이 더 알짜배기이다.

이렇게 주장합니다.

 

 

(제17-2강에 계속합니다~~)

 

이 강의는 '정토회 > 정토TV > 법문 보기 > 불교의 역사'에서  동영상으로 볼수 있습니다.

 

 

*** 짧은 생각 ***

 

대승불교는 인도에서, 종파불교와 선불교는 중국에서 생겨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