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법문/2. 불교의 역사

[법륜스님의 '불교의 역사'] 제18-1강 선불교 - 첫 번째

상원통사 2014. 11. 16. 23:18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는 히말라야 산맥을 넘고 타클라마칸 사막을 지나서 중국에 도달하게 되고,
중국에 도달한 불교는 300년 가까이 한문으로 번역하는 작업이 이루어졌고,
승려들은 그 경전을 연구하고 분석하고 학습하는 일이 중요한 본분이 되는데,
거기에 소요되는 많은 재정은 주로 왕들이 제공하게 됩니다.
대승경전은 지식인들에게 새로운 학문으로 받아들여져 연구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거치지만,
일반 서민들은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만 부르면 극락세계에 다시 태어난다는 정토종이 뿌리를 내리게 되면서,
현세의 고통을 잊고 내세의 복을 구하는 새로운 전통이 생겨나게 됩니다.
또한 밀교의 전래로 갖가지 신비한 체험, 소위 신통력을 느끼는 경향도 나타나게 됩니다


교학 중심의 대승불교를 비판하면서 일어난 불교를 선(禪)불교라 함
그런데 이런 것을 비판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그룹이 나타나게 됩니다.
경전을 번역하고 학습하고 연구하고 서로 논쟁하는 것들은 붓다의 진실한 가르침이 아니고,
내생을 기약하면서 왕생극락을 비는 이런 가르침도 붓다의 진실한 가르침이 아니고,
또 어떤 신비한 체험을 느끼는 그런 것들도 붓다의 가르침에 어긋나며,
국왕의 후원으로 절을 찬란하게 짓고 경전을 저술하고 번역하는 것도 불교의 참모습이 아니다,
깨달음을 얻어 사물을 올바르게 보고 자기 마음을 안심입명의 경지가 되도록 하는 게 불교이다,
이렇게 소위 교학 중심의 대승불교에 대해 비판을 제기하면서 일어난 불교가 선불교입니다.


선불교는 6세기 초 보리 달마존자로부터 시작됨
선불교는 6세기 초엽에 인도의 보리 달마존자가 중국으로 건너오면서부터 시작됩니다.
중국 남북조시대에 남조에는 오 동진 송 제 양 진 등 여섯 나라가 있었는데,
양나라 무제는 영토를 넓히고 국가를 부흥시키는 동시에 불법도 굉장히 옹호했습니다.
수많은 절을 짓고 탑을 쌓고 경전을 번역하고 승려들을 양성하고 후원했기에,
사람들은 양무제를 ‘전륜성왕’, ‘인도의 아쇼카 왕과 같은 분이다’, 이렇게 칭송을 했습니다.


양무제 보통(普通) 원년(520) 9월, 인도에서 고승이 왔다는 사실을 안 왕은 달마를 궁궐로 초청하였고,
11월 1일 수도인 건강에서 많은 신하들이 보는 앞에서 세기의 문답이 펼쳐집니다.
무제 : 나는 지금까지 많은 절을 짓고 경문을 직접 옮기기도 했으며, 많은 승려와 비구니를 육성했소.
       그러니 앞으로 얼마나 많은 보답을 받겠는지, 가르쳐 주시오.
달마 : 그런 것은 공덕이 될 수 없습니다.
무데 : 무엇이라고?
달마 : 무공덕이라 말했습니다.
무제 : 어째서? 이 정도가 아무것도 아니라면, 내가 무슨 일을 해야 공덕이 된단 말이오?
달마 : 할 수 있는 사람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 않으면 쓰레기가 될 뿐입니다.
       (무제의 얼굴은 하얗게 변하고, 끓어오르는 분노를 감추지 못합니다.)
무제 : 그렇다면 진정한 공덕이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달마 : 마음과 지혜가 완전히 하나가 되어 아무런 걱정도 없는 것입니다.
무제 : 불법에서 말하는 깨달음의 첫 번째를 한마디로 말하면 무엇인가?
달마 :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무제 : 아무 것도 아닌 것이라고? 그렇다면 내 앞에 있는 너는 도대체 무엇이냐?
       (무제는 황제의 체면까지 버리고 버럭 화를 냈고, 달마는 최후의 한마디를 던집니다.)
달마 : 나도 모릅니다.


양무제가 이제까지 배워온 불교적 관점에서는 달마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대승경전에 보면 경전을 숭배하고, 불상과 탑을 숭배하는 사상도 있고,
어린아이가 모래사장에 부처님의 얼굴만 그려도 한량없는 공덕이 있다고 하는데,
달마대사는 ‘없다’고 하니 이것은 비불교적이고 건방지기 이를 데 없는 태도였습니다.
거기다가 ‘넌 누구냐’고 물으니 ‘나도 몰라’라고 대답하니, 몰상식하고 예의마저도 없습니다.

하지만 양무제에게 적잖은 기대를 가지고 온 달마도 실망하기는 마찬가지였기에,
달마는 양나라를 떠나 양자강을 건너서 북쪽의 소림사에 가서 정진에 몰두합니다.
소림사에 유명한 스님이 왔다고 하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뭔가 하나 얻고자 하지만,
달마대사는 그 모든 요청에 묵묵부답이니 기다리다 못해 사람들은 다 떠나버리지만,
달마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건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천하만물은 본래 누구의 것도 아닌 무소유이니, 줄래야 줄 수도 없고 얻을래야 얻을 수도 없습니다.
인생의 모든 고뇌라는 것은 다 얻으려고 하는데서 생기고, 얻으려는 생각을 놔야 니르바나의 경지로 가는 것입니다.
얻고자 하는 것은 얻고자 하는 그 자체가 망념이고 그 자체가 고의 씨앗입니다.
쥐가 쥐약을 먹겠다고 달려드는 것과 똑같은 것이니, 아무 말 하지않고 그냥 놔둔 것입니다.
그렇게 무수히 찾아왔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가버린 세월이 9년이나 계속됩니다.
면벽 9년이라는 것은, 밥도 안 먹고 벽만 쳐다보고 9년 동안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
물어도 대답하지 않고 앉아있었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한 승려가 가지도 않고 묻지도 않고 뭐 해 달라 소리도 안하고 계속 그러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대사가 물었습니다.
‘너 왜 왔니?’ 하고 물으니 ‘예, 안심입명의 도를 얻으러 왔습니다.’
이놈도 얻으러 오기는 왔지만, 다른 게 아니라 마음이 편안해 지는 그런 법을 얻으러 왔다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만난 사람하고는 성격이 좀 다르니, ‘너 이리 와서 앉아봐라’ 이랬습니다.
이렇게 대꾸를 해준 것, 응대를 한 것이 입실입니다.
선가에서는 비밀히 조실 방에 불러가지고 뭔가 비밀전수하는 것처럼 얘기가 되는데 그게 아니라 응대를 했다,
무슨 형식적으로 스승과 제자가 되었다는 게 아니라 그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는 얘기입니다.
달마 : 니 마음이 어떤데?
혜가 : 예, 제 마음이 불안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 마음을 편안하게 할 수 있습니까?
달마 : 불안한 마음을 이리 내놔 봐라. 그럼 내가 편안하게 해주겠다.


해주겠다 그랬으니 내놔야 되고, 내놓으려면 찾아야 되는데 아무리 살펴도 없습니다.
스승이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 ‘너는 이제까지 진리를 밖으로 구하고 다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어느 산 밑에, 어느 스승에게, 어느 책 속에, 어떤 행동 속에 진리가 있다고 그걸 찾아 헤매고 있었습니다.
근데 네 불안한 마음을 이리 내놔라 하니까, 마음이라는 것은 밖에 있을 리가 만무한 것이니, 
바깥을 보고 있던 눈을 안쪽으로 돌려 자기를 살펴본 것입니다.
잠시 후 혜가는 ‘찾을래야 찾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잠시 후’란 하루인지, 1년인지, 3년인지, 얼마인지 모르지만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서 찾을래야 찾을 수 없다는 말은, 있는데 못 찾았다는 얘기일까 없다는 얘기일까요?
그러니까 대사가 ‘내 이미 네 마음을 편안하게 했도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혜가는 자기가 갖고 있던 그 어려운 문제가 해결되어 버렸습니다.
양 어깨에 지고 있던 그 무거운 짐이 내려졌고, 어디로 가야될지 모르던 그 깜깜한 길이 환히 밝아졌습니다.
그러니 자리에서 일어나서 엎드려 절을 합니다.
진리라는 게 깨달음이라는 게 그렇게 힘들고 어려웠는데, 일순간에 마음이 가벼워지고 밝아지고 깨끗해지니 감탄할 노릇입니다.
그 후 혜가는 달마대사 주위에서 말없이 십 년 가까이 시봉을 했습니다.


오늘날 기록으로는 몇 가지밖에 안 남아있지만, 그는 아주 간단한 문답을 통해서 사람들을 깨우쳐나갔던 것입니다.
달마를 보면 경전에 해박한 것도 아니고 번역자도 아니고 제자를 많이 거느리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명성이 자자해지고 많은 사람들이 몰리니 주위에서 시기하고 비난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시 중국의 불교계에서는 무슨 경을 얼마나 읽었는지, 논장을 얼마나 봤는지가 중요한데,
이런 것들이 달마에게는 도무지 필요가 없으니, 기성불교에서 보기에는 사이비로 보였을 것이고,
또 달마의 새로운 선풍이 퍼지는 것을 시기하여, 율사인 광통과 삼장인 보리유지 일파가 그를 독살을 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그는 다섯 번까지는 먹지 않았지만, 이미 법도 전했으니 더 이상 있을 필요가 없다 말하고,
여섯 번째는 독을 먹고 단정히 앉아 입적했다 합니다.(후위 효명제 태화 19년 병진년 10월 5일)
어쨌든 달마대사는 이제까지 중국에 있었던 불교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달마의 제자인 혜가 또한 아주 간단하게 사람들을 깨우쳤습니다.
그는 한 곳에 머무르지도 않고 특정한 세력도 형성하지도 않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가볍게 살았는데,
어느 날 눈뜨고는 볼 수 없는 몰골을 한 마흔이 넘은 문둥병환자 한 사람이 찾아와,
그의 발아래 몸을 던지고 엎드려 울면서 말합니다.
‘대사님, 제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고통을 겪고 있는 것입니까?’
옛날에는 문둥병환자라는 것은 천벌을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눈썹이 빠지고 코가 허물어지고 귀가 허물어지고 손가락마디가 떨어지는데,
천벌을 안받고는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는지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랬더니 혜가가 ‘그 죄를 내게 가지고 오너라, 내 그 죄를 없애주겠노라.’
승찬은 늘 죄가 무겁다고만 생각했지 그 무거운 죄가 어디 있는 지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지금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그 무거운 죄를 없애주겠다는 사람이 앞에 나타났으니 내놓기만 하면 되는데,
내놓으려고 아무리 살펴도 무거운 죄를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승찬 : 죄를 찾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혜가 : 그렇다면 네 죄는 다 없어졌다. 찾을 수도 없는 죄에 묶여 고통 받는 헛된 일에 흔들리지 마라.
승찬도 역시 어두운 밤에 불이 켜지듯이 환하게 되고 무겁던 마음이 일순간에 가벼워졌습니다.


삼조 승찬대사는 깨달음을 얻은 뒤에도 사람들 앞에 잘 나타나지를 않았고,
법문도 많이 하지 않았고 제자도 많지 않았지만, 책을 한 권 남겼는데,
그 책이 오늘날 수행하는 사람에게 귀감이 되는 전체 146구 584자로 된 신심명(信心銘)입니다.

 

 

(제18-2강에 계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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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은 생각 ***

 

선승들의 이야기들만 읽어봐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