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 6세기 경에 시작된 불교는 200여년 동안은 그 원형을 유지했지만,
지역이 넓어지고 신도가 많아지고 시대가 바뀌자 율의 적용에 있어서 의견차이가 생기면서,
원형을 고수하자는 상좌부와 좀 더 융통성 있게 현실에 적용하자는 대중부로 갈라지기 시작했고,
계속하여 나라와 지역에 따라 나뉘고, 부처님 가르침의 해석에 따라 나눠지고,
위대한 스승이 나타나면 사람을 중심으로 나뉘고, 근본으로 삼는 소의 경전에 따라 나눠지기도 하면서,
불멸 후 200년부터 400년 사이에 20개 부파로 갈라지게 됩니다.
각 부파들은 가르침을 나름대로 해석하고 요점정리하고 다른 사상과 비교해서 설명하면서,
여러 가지 연구논문, 즉 논장이 출현하게 됩니다.
이러면서 출가한 승려는 법을 공부하고 연구하고 발표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정작 대중을 교화하고 전법하는 데는 소극적이었기에 일반신도들과 거리가 멀어지고,
신도들은 다만 승단에 보시하고 그 공덕을 받는 일종의 후원자로 전락하게 됩니다.
이렇게 각 부파마다 교리가 다르고, 신도들도 후원하는 부파에 따라 소속이 나눠지게 되자,
대중들은 혼란을 겪게 되면서, 한편으론 ‘부처님의 진짜 가르침은 뭘까’라는 의문을 제기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일부 신도들은 탑을 주위로 새로운 신앙공동체를 형성하기 시작하는 데,
자신들로부터 멀어진 스님들 대신 부처님 사리를 모신 탑에 공양을 올리고 탑을 숭상하면서,
남을 돕는 보시와 어려움을 참고 사는 인내 등을 새로운 수행법으로 중요하게 다루게 됩니다.
또한 출가한 스님들 중에서도 이러한 신앙운동에 참여하는 사람이 점차 늘어나게 됩니다.
그들은 기성교단으로부터는 축출당하지만 대승불교에 와서는 새로운 사상을 정립하게 되는데,
기존 경전에 대한 재해석보다는 숫제 새로운 경전을 제작해 내게 됩니다.
이 새로운 사상은 기존 교단(부파불교)으로부터 '비불설'이라는 비판을 받게 되지만,
대승불교도들은 ‘우리는 대승이고 당신들은 소승이다’ 라는 것으로 이 논쟁을 버텨나갑니다.
이러면서 대승불교는 인도에서 새로운 불교로 자리를 잡아나가게 되는데,
마명대사, 용수, 제파, 무착, 세친과 같은 위대한 논사들이 출현하게 되고
대승불교는 수준이 높은 철학, 또 잘 정리된 새로운 사상체계를 갖게 됩니다.
그래서 인도에는 근본불교라고 하는 유부를 중심으로 하는 테라밧다(상좌부)와
새로운 경전을 중심으로 새롭게 일어난 대승불교가 서로 경쟁하게 되고,
대중부(소승불교)는 대승의 사상과 상좌부의 사상을 다 같이 수용하기도 했습니다.
대승불교가 자리를 잡기는 했지만, 당시의 교세는 인도를 여행한 한 중국인의 기록으로 추측할 수 있는데,
소승부의 사찰이 6할, 대승부의 사찰이 2할5부, 대소승이 함께 있는 사찰이 1할5부 정도 되었다 합니다.
남방불교 :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남부 베트남 지역
BC 3세기경 마우리아 왕조의 아쇼카 왕 때 불교(테라밧다, 상좌부)는 스리랑카로 전래되고,
이후 버마,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남부 베트남 지역으로 전파되었는데 이를 남방불교라고 합니다.
부처님의 교법은 당초 팔리어로 결집이 되었는데, 남방불교에서는 지금도 팔리어를 그대로 사용하기에,
남방불교권에서는 어느나라든 스님이 출가하면 먼저 팔리어를 배우고 팔리어 경전으로 공부를 합니다.
한편 불교는 로마 그리스까지도 전래가 되지만 서양에는 정착하지 못합니다.
마치 기독교가 이란을 거쳐 인도, 중국에까지 들어오지만 빛을 발하지 못했던 것처럼,
서양으로 전래된 불교의 철학과 명상같은 수행법은 그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불교는 인도의 서북지방인 펀잡 캐시미르 지역을 지나 아프가니스탄 지역으로 돌아서,
중앙아시아 평원을 지나 타림분지 위쪽으로 천산산맥을 넘어서 중국으로 전래되게 됩니다
즉 실크로드를 통해 서역으로부터 중국으로 불교가 전래됩니다.
서역이란 우즈베키스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을 포함하는 지역인데 당시에는 대월지국이 있었습니다.
후한 명제 때(AD 67년) 축법란 등에 의해 중국에 최초로 불교가 전래됨
중국은 전설의 시대인 삼황오제(三皇五帝)부터 시작합니다.
어렵(漁獵)과 목축을 가르치고 팔괘(八卦)를 만들어 점성술을 가르쳐준 복희씨(伏羲氏),
불을 사용하여 화식(火食)하는 방법을 가르쳐준 수인씨(燧人氏),
농경과 교역을 가르쳐준 신농씨(神農氏)가 삼황의 시대이고,
오제 시대는 황제(黃帝)·전욱(顓頊)·제곡(帝嚳)·요(堯)·순(舜)의 5성군 시대입니다.
이 시대의 국가라는 것은 대제국이 아니라 황하강 유역의 조그마한 부족국가 형태로 보는 것이 합당하며,
시기적으로 요임금 시대는 우리나라 단군시대와 같이 볼 수 있습니다.
이후 은나라(상나라)를 거쳐, BC 1120년 경 주나라가 탄생합니다.
주나라는 황실이 가운데에 있고 나머지는 제후국으로 300여개가 독립되어 있는데,
토지를 받은 제후는 황실에 공물을 바치고 전쟁이 일어났을 때 돕는 봉건제 국가형태였습니다.
그러나 BC770년경에는 황실의 권능이 떨어져, 그 힘이 큰 제후국 수준밖에 못 미치게 되자,
힘이 센 제후국을 중심으로 주변 국가들과 동맹해서 패권을 다투게 되는데, 이를 춘추시대라고 하고,
BC403년을 경계로 춘추시대가 전국시대로 바뀝니다.
이 춘추전국시대에는 많은 사상가들이 나오는데, 공자와 맹자를 중심으로 하는 유가,
노자와 장자를 중심으로 하는 도가, 그리고 묵가, 겸양가, 법가 등 백가쟁명의 시대가 펼쳐집니다.
이후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자 법가를 국가통치이념으로 삼으면서,
사상적 통일을 위해 나머지 책은 모두 다 불살라버리는 분서갱유가 일어났고,
진나라가 망한 후엔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여 한나라를 세우고 국가통치이념으로 유가를 채택합니다.
당시의 인도와 중국은 전혀 교류가 없었지만 서로 비슷한 점이 많이 있습니다.
부처님이 출현하실 즈음 인도에도 많은 사상이 난립했는데, 이는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의 백가쟁명과 비슷하고,
아쇼카왕이 인도를 통일하여 불교를 통치이념으로 채택한 것도, 한나라가 통일 후 유가를 채택한 것과 비슷합니다.
또 부처님(BC563~BC483 추정)과 공자님(BC551 ~ BC479)이 출현한 시기도 비슷하고,
아쇼카 왕의 활약시기와 한나라가 생긴 것도 BC 3세기경으로 비슷합니다.
한나라는 200년 정도 지속되다가 외척 가운데 왕망이란 사람이 왕위를 찬탈하여 신나라를 세우지만,
광무제 유수가 왕망일파를 쫒아내고, 나라 이름을 후한이라 하여 한나라를 계승합니다.
이 후한 때 불교가 중국으로 전래되는데 이는 인도에서 불교가 일어나고 500년 정도 지난 시점입니다.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후한 명제 때(AD 67년) 축법란 등이 중국에 불교를 전래한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축법란 일행은 흰 말에 경전을 싣고 왔는데, 낙양에 도착하자마자 경전을 싣고 온 말이 죽게되어,
말이 죽은 자리에 ‘백마사’라는 절을 지었는데 이곳을 중국불교의 초전법륜지로 삼았습니다.
* 축법란(竺法蘭) : 후한 때 처음으로 중국에 불교를 전한 대월지국(大月氏國)의 승려이자 역경가(譯經家)
불교가 전래되고 백 년 정도 지나서 경전이 번역되기 시작함
불교는 인도로부터 서역으로 전래되고, 서역에서 중국으로 전래가 된 것인데,
이때에는 불교가 중국에 전해졌다는 것이지 중국인들이 불교를 믿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중국에서는 불교가 전래되고 100년 정도 지난 AD 2세기경부터 불경이 번역되기 시작하는데,
초기엔 인도나 서역사람이 중국에 와서 중국말을 배워서 번역을 했습니다.
초기 번역자로는 안세고(安世高), 지루가참(支婁迦讖) 등이 있습니다.
* 안세고 : 안식국의 황태자이며 승려. 후한 환제 때 '십이인연', '팔정도' 등 34부 40권의 경전을 번역
* 지루가참 : 월지국의 승려. 후한 환제 때 '도행반야경', '반주삼매경' 등 대승경전 21부 63권을 번역
위진시대에 각 나라에 전파되어 경전 번역이 계속됨
이후 후한이 망하고 중국천하는 위나라 촉나라 오나라로 삼등분이 되어 서로 싸우다가,
사마염이 위나라의 왕위를 찬탈해서 진나라를 세웠고, 진나라가 삼국을 통일합니다.
이때를 위나라 진나라 해서 위진시대라고 부르는데, 이 혼란기에도 경전의 번역은 계속됩니다.
진나라 때의 중국은 황하강과 양자강을 중심으로 한족이 지배하고, 북방에는 유목민족들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북방 유목민족이 쳐내려오자 진나라는 버티지 못하고 양자강 이남으로 도망을 가게 되는데,
중국천하를 통일한 진나라를 서진, 이때 동남쪽으로 쫒겨가서 세운 나라를 동진이라 합니다.
이렇게 하여 양자강 이남은 동진이, 그 북쪽 중국의 중심지역은 오호, 다섯 북방오랑캐가 점령을 했는데,
북쪽에서는 이후 400년 사이에 열여섯 나라가 엎치락뒤치락 했기에 이들을 오호십육국이라 합니다.
다섯 북방민족은, 흉노(匈奴), 선비(鮮卑), 갈(羯), 강(羌), 저(氐)이고,
이때 조선족은 중국 동북지방을 장악을 하고 있었는데 그나라가 고구려입니다.
그러니까 한나라가 천하를 통일할 때는 우리나라까지 와서 북방지역에 한사군을 세웠지만,
한나라가 멸망하고 중국천하가 분열할 때에는 고구려가 동북지방에 대제국을 건설했고,
중국 중심지역은 다섯 북방민족들이 내려와 서로 번갈아가면서 16개 나라를 세웠습니다.
또한 남방에는 400년 동안 오, 동진, 송, 제, 양, 진 이렇게 여섯 개 나라가 세워졌는데(육조시대),
이를 합하여 남북조 시대라고 하며, 북방은 북방민족이 남쪽은 한족끼리 서로 쟁패했던 시대입니다.
이렇게 혼란기에 접어들면서 유교적인 가치는 허물어지고,
유교와 사상적으로 대립했던 도교(노장사상)가 새로운 사상으로 중국민심을 잡아갔는데,
이때 불교도 중국내에서 퍼져가기 시작했습니다.
유교를 통치이념으로하는 한나라 때는 국가체제가 공고했기에 불교가 스며들기가 어려웠지만,
나라가 분열되고 민심이 혼란스러워 사람들이 회의하기 시작할 때 불교사상은 빠른 속도로 전파된 것입니다.
즉 중국에 불교가 퍼지게 된 요인은, 나라가 혼란스러워 유교적 가치가 허물어진 그런 상황과,
북방민족은 한족과 달리 뚜렷한 사상체계가 없었기에 큰 저항이 없이 불교를 받아들일 수가 있었던 점,
특히 서역의 불교국가들이 중국천하를 점령할 때는 자연스럽게 불교가 유입된 점들을 들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중국은 북방민족을 중심으로 해서 북쪽으로 불교가 들어오게 되고,
남쪽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가기도 하고, 배를 타고와서 불교가 전래되기도 합니다.
(제17-1강에 계속합니다~~)
이 강의는 '정토회 > 정토TV > 법문 보기 > 불교의 역사'에서 동영상으로 볼수 있습니다.
*** 짧은 생각 ***
불교공부가 아니고 중국 역사공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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