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4강에서 계속)
중기 대승경전 : 세친보살의 글에 새롭게 등장하는 경전
AD 4세기경에는 세친(世親 Vasubandhu), 무착(無着 Asańga) 같은 위대한 학자들이 나타나 글을 많이 썼는데,
용수보살의 글에는 없다가 세친보살의 글에 새롭게 등장하는 경전들이 있습니다.
이 경전을 중기 대승경전이라 하는데, 열반경, 승만경, 해심밀경, 능가경 등이 있으며,
공사상보다는 주로 인간의 심성에 관한 연구를 하여 유식학의 모델이 되는 그런 내용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경전을 중심으로 해서 무착과 세친 대에 이르게 되면 유식학이 아주 발달하게 됩니다.
세친 : 소승에서 대승으로 전환하여 소승과 대승을 아우르는 역할을 함
세친은 원래 소승불교(설일체유부)에 출가를 하셔서, 소승불교의 대표적인 논장 중의 하나인 구사론을 지었는데,
형인 무착의 영향을 받아 소승에서 대승으로 전환하여, 대승불교의 사상을 결집시키는 위대한 스승이 되었습니다.
이 분은 소승에 있다가 대승의 학자가 되었기 때문에, 소·대승을 아우르는 그런 역할을 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즉, 대승불교의 공사상을 중심으로 하되, 인간의 여러 가지 심리를 분석하고 해석함으로써,
소승불교의 여러 가지 장점들도 다 수용을 한 유식학(唯識學)을 완성시킨 분이 세친입니다.
후대에 내려가게 되면 용수의 중론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큰 학파를 중관파(中觀派)라 하고,
세친을 계승해서 형성된 학파를 유가파(瑜伽派)라고 합니다.
46페이지에 보면 대승의 2대 조류인 중관학파와 유가파의 간단한 비유가 있습니다.
실상론(實相論, 중관파) : 법의 실상이 공하다는 입장
실상론이라 하는 것은 ‘법의 실상이 뭐냐’ 하는 것을 중심으로 하고,
관찰하는 방법은 주로 ‘직관에 의해서 관찰’을 하고,
그 다음에 ‘법의 실상은 공하다’ 이런 입장이 되겠지요.
‘제법의 실상은 바로 공이다’, 이것을 원시경전과 비교한다면 ‘무하다’ 는 말입니다.
이것은 용수에 의해서 시작이 되었고 그 사상을 계승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연기론(緣起論, 유가파) : 시간에 따라 흘러가는 인연의 이치를 설명
다른 하나의 조류가 연기론인데 이것을 주장한 파를 유가파라고 합니다.
연기론은 주로 ‘객관세계를 분석적으로 연구’해서 만들어진 것이고,
시간에 따라서 흘러가는 인연의 이치를 주로 설명한 것이니까,
우리들의 심리상태를 아주 잘 분석해서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연기론은 세친에 의해서 시작이 되고 나중에 큰 학파로 형성이 되었는데,
연기론은 상좌부 사상의 장점을 계승하고 있고, 실상론은 대중부 사상을 계승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종합해서 살펴본다면 인도의 정통사상인 브라마니즘은 ‘어떤 실체가 있다’하는 유론에 중심을 두고 있습니다.
근데 부처님께서는 그것을 비판하시고 ‘제행무상 제법무아’를 제기를 했습니다.
근본불교는 ‘실체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다보니까 무적 입장이 정착되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부처님의 정법을 그대로 호지한 상좌부 계열은 유로 치우쳤는데,
대중부가 거기에 비판하고 다시 무를 강조했습니다.
그 무의 입장을 공이라는 새로운 언어로 강조한 게 대승불교인들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다시 유적 입장으로 돌아가서 현상계를 설명한 게 대승불교의 연기론자들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이 세계는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닙니다.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데, 유로 치우치면 무라는 이름으로 비판을 가하면서 무에 치우치게 되고
무에 치우치면 다시 현상론을 강조하게 되면 유로 치우치고, 이런 변증법적인 변화과정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진리라고 하더라도 그 진리를 절대화 시켜버리면 다시 진리가 아니지요.
그 절대화 된 껍데기를 깨기 위해서 새로운 주장을 하게 되고,
그 새로운 주장들이 진리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이 또 고정화되면 비진리로 흘러가게 된다,
그러니까 우리가 한 시대에 어떤 권위를 갖고 있다 해서 그것이 진리가 될 수가 없고,
또 어떤 새로운 주장이라 해서 그것이 비불설이 될 수도 없고,
거기에 관한 어떤 창조성이 있다면 그것이 진리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역사 속에서 계속 진리일수는 없다,
거기에 인간이 집착을 하게 되면 또 어긋나버리게 됩니다.
다른 종교에서 보면 새로운 문제를 제기한 세력은 기성의 종교를 배척하거나,
기성의 종교는 문제를 제기한 세력을 이단이라해서 쫒아내어 버립니다.
그러나 불교는 새로운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도 기성을 비판하는 것이지 배척하지는 않고,
그 다음단계는 기성의 그것마저도 다 수용해 내는데,
대승이 기성의 불교를 ‘불교는 불교인데 작은 불교, 소승이다’라고 수용해내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문제에 대해 논쟁이 있을 경우, 갈라지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관점에서 비판을 가하지만,
제3자가 나타나 양자의 장점을 추려 새로운 사상을 정립해가는 아름다운 모습을 불교의 역사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불교 내의 종파끼리 또는 다른 종교와 논쟁을 하고 비판은 가했지만 전쟁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왕의 지원을 받기는 했지만 교단 내의 어떤 논쟁에 세속세력을 끌어들여가지고,
전쟁을 일으키거나 국가편이 되거나 이런 것도 역사 속에서 거의 없었습니다.
세속적으로 전파하기 위해서 왕의 호위를 받고 힘을 빌리기는 했지만 그 하수인 역할을 한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종교가 세속권력과 결탁을 하거나, 세속권력의 아래에 들어가거나, 세속권력을 지배하면서,
세속적인 전쟁이 종교라는 명분을 걸고 물고 뜯고 차고 싸운 역사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대승불교는 관념화되고 대중들과 유리되었다
대승불교는 신도를 기반으로 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사회 실천을 중심으로 해서 일어난 운동이었는데,
점점 성장해가면서 중관학파니 실상론이니 해서 철학을 연구하고 분석하고 공부하고 논쟁하는 등,
오히려 소승불교보다 더 관념적으로 변해갔고, 이러다보니 일반의 생활과는 또 거리가 멀어집니다.
7세기를 넘어가면서 밀교(密敎)가 인도불교의 주류를 형성하였다
그러면서 불교가 민중에 뿌리를 내리는 작업이 다른 한 편으로 진행되는데,
일반 대중들의 주술적이고 기복적인 전통문화를 흡수한 밀교가 나타나게 됩니다.
이 밀교는 민중에 유착을 하고 대중의 지지를 확보하게 되면서 뿌리를 내리게 되어
7세기를 넘어가면서는 밀교가 인도불교의 주류를 형성하게 되는데, 이때 주문이 등장하게 됩니다.
즉 여러 가지 주문이 행해지고 세속적인 것들이 등장하고 힌두교의 많은 신들이 전부 불교 안으로 들어옵니다.
마치 우리나라 불교가 칠성과 산신을 수용하는 것처럼, 인도의 온갖 신들이 다 불교 안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이것은 불교가 민중과 결합하고 대중화하였다는 굉장한 장점을 갖는 반면,
브라마니즘이나 주술적이고 기복적인 민간신앙을 배척하였던 불교의 특징이 퇴색되었습니다.
그렇게 세속화되다가 밀교의 일부는 좌도밀교라고 하는 데까지 가게 됩니다.
인도의 전통사상에는 남자와 여자의 성기를 섬기는 이런 신앙이 있는데,
카주라호에 가면 힌두교 절에 온갖 남녀 교합상을 조각해 놓은 그런 것도 있습니다.
이것이 불교 안으로 유입되어, 남녀가 성관계를 가지면서 수행을 하는 좌도밀교로 발전하게 되지만,
나중에는 도덕적으로 비판을 받으며 이 좌도밀교는 사라지게 됩니다.
* 좌도밀교(左道密敎) : 미신적인 주술(呪術) 체계로서, 성력(性力:sakti)을 숭배하는 타락된 불교
* 정통밀교 : 개체와 전체의 신비적 합일을 목표로 하며, 그 통찰을 전신적으로 파악하는 실천과 의례의 체계를 갖는다.
또 불상 중에 팔이 여러 개 달리고 머리가 여러 개 달린 이런 것은 원래 힌두신입니다.
관세음보살도 여기에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눈이 천 개고 손이 천개라서 손에 온갖 것 다 쥔 이런 조각은 인도의 힌두신상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인도의 조각을 보면 초기의 간다라나 마투라 불상에서는 신상과 불상이 완전히 다르지만,
7세기 이후로 넘어가면서 보살상은 힌두교의 신상하고 구분이 안됩니다.
갖가지 신들이 불교사상 내로 유입되면서, 불교가 자기 아이덴티티를 상실합니다.
좋게 말하면 대중성을 가지고 전통문화와 하나가 되어갔다고 할 수 있고,
달리 말하면 불교가 자기 고유성을 상실해갔다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13세기 경 회교도의 인도 점령으로 인도 불교는 소멸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13세기경 서쪽으로부터 무슬림(회교도)이 인도를 점령해 들어오는데,
그들은 우상숭배를 거부한다는 명목으로 신상과 불상들을 파괴하고, 사찰들을 불태워버립니다.
이때 엄청난 양의 책을 보유하고 있던 날란다 대학은 6개월이나 탔다고 합니다.
이러면서 인도에서 불교는 사라지게 되고, 탄압에 못이긴 밀교도들은 네팔, 티벳 등으로 피난을 갑니다.
밀교는 네팔, 티벳으로 이동함
그래서 지금 티벳이 밀교(라마교)의 본거지가 되었고,
이 밀교가 유목민을 따라 몽골로 갔다가 원나라 때 우리나라(고려)에도 라마교가 들어왔습니다.
원각사 탑 같은 것은 라마불교식 탑입니다.
우리는 승려를 비구, 비구니라 부르지만, 밀교에서는 승려를 라마라 부르는데,
달라이 라마, 판첸 라마는 달라이 스님, 판첸 스님을 뜻합니다.
이렇게 이슬람이 침입하여 스님을 죽이고 사원을 파괴하고 경전을 불 지르면서 인도에서는 불교가 사라지게 됩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불교는 외세의 침략에 의해서 인도에서 사라지게 된 것이지만,
불교가 자기 근본 아이덴티티를 갖고 있었으면 이런 침략 속에서도 일부는 남아있었을 것입니다.
조선시대에 아무리 탄압을 심하게 했어도 불교가 살아남았잖습니까?
이슬람이 침략을 할 당시에 이미 불교(밀교)는 힌두교와 비슷한 형식을 갖고 있었기에,
두 종교가 이슬람의 탄압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밀교는 힌두교 속으로 흡수되어버린 것입니다.
마치 서양의 기독교적 입장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불교와 유교가 비슷해 보이는데,
불교가 자기 아이덴티티를 상실해버리면 유교나 전통신앙 속으로 흡수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부파불교(소승불교) : 스리랑카, 미안마,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대승불교 : 중국, 한국, 일본
밀교 : 네팔, 티벳, 몽골, 중국 서부
전체적으로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인도불교는 부처님으로부터 교파가 나뉘기 전까지를 근본불교, 이때 가장 순수성을 유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다음에 교세가 확장되면서 각종 부파가 형성된 시대를 부파불교, 이때 수많은 논장이 출현했는데,
그 수많은 논장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재해석 또는 요점정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완전히 새로운 불교운동이 일어났는 데 이것이 대승불교운동입니다.
새로운 불교운동은 부파불교를 소승라고 비판하고 자신들은 대승이라고 하면서,
갖가지 대승경전이 출현하게 되고, 위대한 선지식들이 출현하게 됩니다.
초기 대승불교는 공을 중심으로 법의 실체가 없다는 관점에서 기존의 잘못된 것을 비판하는 파사적 입장이었지만,
이후 대승이 자리를 잡게 되면서는 그동안 비판했던 다른 소승사상까지도 흡수를 해서,
현정 즉 바른 것을 세우면 삿된 것은 저절로 물러간다 이런 입장으로 변합니다.
초기대승은 ‘삿된 것을 파해버리면(破邪) 바른 것이 저절로 드러난다(顯正)’ 였는데,
나중에는 ‘바른 것을 일으키면(顯正) 삿된 것은 저절로 물러난다(破邪)’로 변했습니다.
초기는 파사적 입장이 강하고 후기로 가면 현정적 입장이 강합니다.
대승불교는 중관학파, 유가파(유식학) 등이 나타나면서 점점 더 관념화 되지만,
또 한편으로는 다시 대중과 결합하는 쪽으로 나아갑니다.
결국은 탄트라 불교, 즉 밀교라고 해서 힌두교와 거의 반반씩 결합한 불교가 나타납니다.
사상은 대승사상이지만 그 종교의식이나 양태는 거의 힌두교적인 양태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불교도 조선시대에 오면 전통 무속신앙과 겹쳐서 구분이 잘 안되는 것들이 많이 있고,
중국은 도교와 결합하여 절에 가면 관운장이 있고, 관세음보살도 성모상 비슷하게 되어있고,
일본에 가면 신도하고 결합을 했기에 불교인지 신도인지 구분이 안됩니다.
이처럼 불교는 그 나라의 전통문화와 결합하는 포용성을 가졌다고 볼 수도 있지만,
종교가 가져야 할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상실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인도에서 일어났지만 전통문화에 물들지 않은 근본불교나 부파불교는 반인도적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이런 근본사상은 인도라는 울타리에 갇히지 않으니 세계화가 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인도의 전통문화와 융합하지 않았으므로 인도 내에서는 뿌리를 내리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나라의 민족종교가 우리나라 안에서는 전파가 쉽지만 해외에 가면 어렵듯이,
일본 안에서는 일본불교가 전통사상과 결합해 있으니 외래종교가 일본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반면에,
일본불교가 세계에 나가서는 그 뿌리를 내리기가 어렵습니다.
인도에서는 불교가 사라졌지만 부파불교(소승불교)는 스리랑카 버어마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등에,
대승불교는 서역을 거쳐서 중국에 들어와서 한국 일본에 자리 잡고 있고,
밀교는 네팔 티벳으로 가서 몽골지역, 중국 서부의 산악지역에 분포되어 있습니다.
서양에는 남방의 부파불교, 동아시아의 대승불교, 티벳·몽골의 밀교가 모두 전래되었는데,
가장 먼저 전래된 게 소승불교, 그다음이 대승불교이지만,
최근에 달라이 라마에 의해 서양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 밀교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중국불교의 전래와 각 종파를 살펴보고, 우리나라 불교로 넘어가겠습니다.
이 강의는 '정토회 > 정토TV > 법문 보기 > 불교의 역사'에서 동영상으로 볼수 있습니다.
*** 짧은 생각 ***
부처님의 근본불교가 부파불교로, 대승불교로, 밀교로 변했다가 종국에는 인도에서 사라져 버렸다
-> 제행무상(諸行無常)
브라만교의 有, 부처님의 無, 상좌부의 有, 대중부의 無, 그리고 대승불교의 空, 연기론의 有
-> 중도를 찾기란 참 힘이 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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