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날 아침입니다.
어제 밤 소주를 한 팩 했건만 아침이 되니 눈이 저절로 떠집니다.
강변산책
오늘 아침은 '아치'님의 추천대로 씨엠립 강변을 산책하기로 했습니다.
아이구, 근데 이걸 어쩐담! 배터리를 끼우고 똑딱이 카메라를 켜보았건만 화면이 깜깜합니다.
자세히보니 액정화면이 깨져 있습니다.
어제 '따 프롬'에서 둘째 딸 가방에 넣었던 것이 잘못이었던 것 같습니다. 뭔가 딱딱한 것과 부딪혀 액정이 깨졌습니다.
돈 벌었습니다.
그래도 한 대가 더 있어서 다행입니다. 아차 했으면 사진 한 장 없는 일정이 될 뻔 했는 데...
DSLR 카메라만 챙겨서 아내와 함께 밖으로 나갑니다.
7시가 아직 안되었는 데도 사람들이 부지런히 움직입니다.
더운 나라라서 아침 일찍부터 바삐 움직인다는 말이 맞다고나 할까요...
동네 휴대폰 가게도 다 열었고, 초등학생들도 등교를 하고 있으니 우리나라보다 두어 시간은 먼저 움직입니다.
부지런하면 잘 산다고 했는 데, 꼭 맞는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가 분명한 데, 우리나라보다 휴대폰 가게는 더 많이 보입니다.
그러니 우리나라 휴대폰 메이커들이 돈을 벌 수밖에 없습니다.
<아침 일찍 등교하는 초등학생들. 우리와 눈이 마주치자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립니다. 어딜 가도 아이들은 귀엽습니다.>
강변길(Pokambor Avenue)로 들어섭니다.
말이 강이지 우리나라 개천 정도의 크기입니다. 물은 오리지날 황토색이고요.
거리엔 온통 자전거와 오토바이 행렬입니다.
간간이 차가 보이기는 하지만 이곳의 주된 교통수단은 자전거와 오토바이입니다.
책가방을 앞에 싣고, 뒤에는 동생을 태우고가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은 주로 출근하는 직장인들로 보입니다.
아침 일찍부터 바삐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을 보니 삶의 활력이 느껴집니다.
하기야, 한국에서라면 나도 이 시간에는 버스에 몸을 싣고 졸고 있겠지요.
가게 앞마당을 콘크리트로 포장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눈치챘습니까? 콘크리트는 철근과 함께 타설한다고 알고 있었는 데, 이곳에서는 나의 상식을 비웃습니다. 대나무를 쪼개서 철근 대용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궁하면 통하는 걸까, 이 대신 잇몸일까??
초등학교 앞입니다. 입구의 간판을 보니 외국에서 원조하여 지은 학교입니다. 시계를 보니 7시 30분인데 꼬맹이 학생들이 등교 중입니다. 나 어렸을 때는, '주번'이 무서운 눈초리로 교문을 지키고 있고, 우린 죄 지은 듯 슬금슬금 눈치보며 들어갔습니다. 이곳에서는 선생님들이 교문 밖까지 나와서 학생들을 맞이합니다. 엄마의 오토바이가 학교 앞에 도착하자, 선생님은 아이를 안아서 내리고, 경찰(?)아저씨는 책가방을 내려줍니다. 내겐 낯선(?) 풍경입니다.
교문 안에도 선생님들이 한 줄로 서 있습니다. 등교하는 학생들에게마다 인사합니다.
이곳에서는 선생님하기도 참 힘들 것 같군요. 그래도 다들 즐거운 표정에 웃음이 가득합니다.
반띠아이 츠마(Banteay Chhmar) 가는 길
숙소로 돌아와 아침식사를 합니다. 메뉴는 어제 아침과 비슷한 데, 오늘은 쌀국수가 있습니다.
도착하던 날 밤에 외출하여 국수 먹을 때와 마찬가지로, 꼬마고추를 곁들이니 매콤한 게 내 입맛에는 잘 맞습니다.
9시에 호텔을 출발하여 오늘 밤 민박을 할 반띠아이 츠마로 향합니다.
한국에서 준비해 온 학용품도 챙기고, 세면도구도 챙기고, 소주도 한 팩 담았습니다.
씨엠립에서 태국으로 가는 캄보디아판 고속도로를 타고 쉬지않고 달립니다.
말이 고속도로이지 실은 2차선 포장도로입니다.
이 길은 태국까지 이어지는 중요한 도로인 데, 비포장길이었다가 4~5년 전에야 포장을 했다고 합니다.
가는 길에는 한글간판도 보입니다. 우리나라 어느 교회단체에서 기부하여 지은 건물이랍니다.
'아치'님의 설명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교회단체(매스컴도 많이 타는 '밥퍼'하는 교회라 함)에서
이곳에 와서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것까지는 좋은 데,
선교활동이 지나쳐 현지인과 마찰을 일으켰다 합니다.
국민 95%가 불교신자인 이곳에까지 와서 부처님 대신 예수님 믿으라고 밥 퍼주면서 꼬셔대다니,
예수님께서 보셨으면 밥 싸들고 다니며 말리셨을 것입니다.
아니라고요? 그렇구나, 빵 사들고 다니셨겠구나!
차로 한참을 달려도 보이는 것은 지평선뿐입니다. 그 모두가 농사 짓는 농토이며, 멀리 보이는 것은 숲들입니다.
좁은 땅덩어리 반으로 갈라지고 그나마도 70%가 산지인데,
사람은 오지게도 많이 살고 있어 답답하기 그지없는 우리나라의 풍경만 보다가,
사방을 둘러보아도 거칠 것 하나 없는 툭 트인 지평선을 보니, 가슴이 열리기에 앞서 부러운 생각이 먼저 듭니다.
하기야 유럽도 그렇고, 이라크도 그렇고, 리비아도 그렇고, 미국도 그렇고, 내가 가본 외국의 나라들은 온통 평야들 뿐입니다.
'머레이'의 말에 의하면 이곳에서는 삼모작, 이론적으로는 4모작도 가능하답니다.
그러나 도시 가까운 곳에서는 이모작을 하지만, 먼 곳에서는 1모작만 한다 합니다.
1년에 한 번만 농사지어도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어서이겠지요.
그래서 식당마다 밥은 무한 리필인가??
대부분의 논에는 추수가 끝났습니다.
벼 밑둥까지 잘라서 타작하고 남은 볏짚은 새끼 꼬고, 가마니 만들고, 지붕이고, 짚신 만들던 우리나라와는 달리,
이곳에서는 벼이삭만 자르고 그 밑의 벼줄기는 논에 그대로 둡니다.
그런 논에 소를 방목하여 기르고 있습니다.
<하아! 이것 참, 사진이라곤 딱 이것 한 장 뿐입니다.
나머진 그냥 상상만 하십시요. Sorry!>
이곳의 소들은 흰색을 띄고 있는 데 별로 안 예쁩니다. 우리나라 누렁이 소가 훨씬 더 예쁩니다.
아내가 소들을 보고는 너무 말랐다고 합니다. 자세히 보니 정말로 많이 말랐습니다.
종자도 다르겠지만, 오로지 살찌우는 목적으로 좁은 우리 안에서 사료 먹고 자라는 우리나라 비육우와 비교해보면 많이 말랐습니다.
그래도 넓은 곳에서 마음대로 풀을 뜯어먹고 마음대로 움직이는 이 곳 소가, 우리나라 소들보다 행복지수가 높으리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머레이'의 설명에 의하면 캄보디아 시장에서 파는 고기들은 대부분 태국에서 수입한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키우는 가축들은 시장 경쟁력이 없어서 자급자족용으로 밖에 사용되지 않는다는 군요.
어렸을 적 우리나라의 까만 토종돼지와 수입돼지들과의 차이가 생각납니다.
많이 먹어도 살은 잘 안찌고 새끼도 많이 낳지 않는 토종돼지가, 두록저지니 뉴햄프셔니 하는 수입돼지와 경쟁이 되지않아
도태되었던 쌍팔년도 한국 실정과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요즘이야 달라졌지요, 우리나라도 먹고 살만하니까 흑돼지, 똥돼지가 다시 인기를 얻고 있으니까요.
이 나라도 잘 살게되면 또 달라지겠지요.
도로 양 옆에는 물이 흐르는 수로가 죽 이어져 있습니다.
허리쯤 차는 황토빛 물속에서 사람들이 무엇인가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수로에서 고기를 잡고있다 합니다. 그러고 보니 손에 그물을 들고 있습니다.
내 눈엔 고기는 보이질 않고 사람들만 보입니다. 고기 씨가 마를 것 같습니다
치과의원의 배려
출발한 지 1시간 반쯤 지나 차는 고속도로에서 벗어나 오른쪽으로 꺾어들어 작은 마을에 도착합니다.
시골 읍내쯤으로 보입니다. 이곳에서 잠시 쉬기로 했습니다.
'머레이'가 한 가게로 가더니 뭐라고 한참 이야기하더니 우리에게 화장실을 이용해도 괜찮다고 합니다.
무슨 가게일까? 자세히 보니 치과의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보는 그런 의원과는 거리가 멉니다.
시골 구멍가게정도로 생각하면 됩니다.
이곳 원장님과 잘 아는 사이인지 몰라도, 모르는 외국 손님들을 위해 이렇게 배려 해주는 원장님이 너무 고맙습니다.
앞에 가던 몇몇 사람들이 신발을 신은 채로 의원 안으로 들어갑니다. 실수입니다.
이곳에서는 가게 안에 들어갈 때 신발을 벗고 가야합니다.
방안에 들어갈 때만 신발을 벗는 우리와는 다릅니다. 그래도 원장님은 이해해 주십니다.
앞쪽은 치과의원이지만 그 안에는 살림집입니다.
점심준비를 하고있었는 데, 우리를 위해서 말없이 자리를 비켜줍니다.
말이 안통해서 눈빛만 나누었지만, 무척이나 수줍어하는 것이 영락없는 옛 우리 시골사람들 같습니다.
허름하지만 화장실에는 수세식 양변기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머레이'가 이곳으로 안내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재래시장
다시 차를 타고 조금 더 가니 재래시장이 보입니다.
약간의 시간 여유가 있어서 차를 세우고 30분동안 재래시장 구경에 나섭니다.
마을의 중심부에 위치한 시장의 앞쪽은 너른 공터이고, 뒷쪽은 단층건물입니다.
시장 입구 쪽은 과일을 파는 노점상들이 조금 있고, 그 뒤에는 먹거리를 파는 식당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역시 재래시장은 먹거리가 최고입니다.
그 안쪽부터는 귀금속, 포목, 공산품들을 파는 가게들이 마치 광주 양동시장을 보는 것 같습니다.
맨 안쪽에는 채소도 팔고 생선도 팔고 고기도 팔고 있습니다.
육고기는 냉장시설이 없이 대야에 담거나 고리에 걸어서 진열하고 있었는 데,
위생상태를 별로 생각하지 않았던 70년대 우리나라의 풍경 그대로입니다.
냄새 또한 매우 고약하여 인상이 절로 찌푸려집니다.
그래도, 그냥 지나치기에 서운해서 고기꼬치를 사서 아이들과 같이 하나씩 물었습니다.
시장은 지저분해도 고기꼬치 맛은 우리나라와 똑같습니다.
반띠아이 츠마에 도착
차는 다시 출발합니다. 마을을 벗어나니 이제부터는 비포장길입니다. 실로 오랫만에 비포장길을 달려봅니다.
어렸을 때 외갓집 갔을 때의 기억이 납니다.
길 양편에 늘어선 가로수들은 흙먼지를 뒤집어 써서 푸른 색이라고는 보이지 않습니다.
길가에 서있으면 털털거리며 오는 직행버스는 일부러 그러는 듯 흙먼지를 날리며 휙 지나갑니다.
버스에 타고서도 뒤를 돌아보면 흙먼지 때문에 아무 것도 안보입니다.
그 땐 왜 그리도 버스가 덜컹거렸던 지...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차에서 날리는 흙먼지가 도로 주변의 나무들에 앉아 나뭇잎 색깔이 온통 회색빛입니다.
차라도 한 대 마주치면 한동안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기사님은 멈추지 않고 잘도 갑니다.
가끔식 자전거 타고 가는 아이들에게 흙먼지를 뒤집어 씌울 때는 미안한 마음이 앞섭니다.
덜컹거리는 비포장 길을 달리니 엉덩이도 아픕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군소리가 없습니다.
사진이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
길 양쪽에는 간간이 집들이 보이기는 하지만 온통 논밭이며 나무들 뿐입니다.
조금씩 지쳐갈 무렵, 드디어 반띠아이 츠마에 도착했습니다. 비포장길만 2시간여를 달려왔습니다.
시골이긴 하지만 제법 큰 마을로 보입니다. 마을 한 가운데에는 시장이 보이고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 드디어 멈춰섰습니다.
입구에 'Community Based Tourism Office'라고 씌여있는 건물 앞에서 내립니다. 마을회관입니다.
안으로 들어가니 마을 청년회원들이 반깁니다.
목을 축이라고 코코넛 열매 한 개씩을 줍니다. 두 번째 먹어보는 것이라 그런지 저번보다 더 맛있습니다.
다 먹고 난 코코넛 열매를 가져가더니 반으로 쪼개서 다시 가져옵니다.
코코넛 안쪽의 하얀 살도 먹는 것이라기에, 수저로 파서 맛보니 오드득오드득하며 고소한 맛이 납니다.
이게 진짜인 데, 전에는 모르고 물만 마셨습니다.
<벽에는 도마뱀이 기어갑니다.
예전에 쿠알라룸푸르에서 근무할 때의 기억이 납니다.
자려고 숙소에 누우면, 벽으로 천정으로 도마뱀들이 기어다녔던 기억....>
막간을 이용하여 마을회원들의 소개가 있습니다.
한사람은 쏘팔(Sophal), 또 한사람은 쏘펭(Sopheng)입니다.
큰 딸 소민도 '쏘'자 돌림이기에 ‘쏘팔, 쏘펭, 쏘민!“이라고 소개했더니 모두들 웃음을 터트립니다.
민박집 청년의 이름은 '쏘놈'이니 '쏘'자에 좋은 의미가 있는 듯 합니다.
조금있으니 점심이 나옵니다. 여기 마을 회원들이 직접 만든 음식인데 맛있습니다.
이만한 음식이라면 몇 달 먹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식사 후 벽을 둘러보니 Community Based Tourism에 대해 소개하는 기사가 벽에 붙어있습니다.
원래 프랑스 사람들이 농촌돕기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 곳을 개발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지원해서 외부 관광객들이 민박할 수 있는 있는 시설을 만들고,
그들이 관광객을 모집하여 이곳에 와서 머물다 가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벽에는 가격표도 붙어있습니다.
우리가 이곳에서 먹고 자는데 드는 비용을 적어놓았습니다.
우리가 이곳에서 쓰는 비용이 직접 마을 주민들에게 돌아갑니다.
공정여행입니다. Fair Travel입니다.
'아치'님이 설명을 합니다.
"이곳에는 모두 8가구가 Home Stay 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관광객들이 큰 불편을 겪지 않을 정도로 집안시설을 개조하였고요.
각자의 수입 일부는 마을 공동기금으로 적립하고 있습니다.
트래블러스 맵(아치님 회사)에서는 공식비용 이외에 마을발전기금으로 1인당 2만원씩을 기부하고 있습니다.
이곳을 주로 이용하는 사람들은 유럽인들이고, 미국인들도 있습니다.
우리 한국인이 이 마을에 온 것은 지난 해 9월에 이어 두 번째입니다."
드디어 공정여행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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