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돈 들여 먼 곳까지 왔는데 시내에서만 머물기는 좀 그렇지, 근처에 좋은 곳이 더 없을까,
아들녀석이 뒤적뒤적 찾더니 일일 버스투어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 그것도 좋겠다, 우리 태국 갔을 때도 방콕 근교 일일 버스투어를 했었지 ~~
오늘 우리가 모여야 할 장소는 타이베이역(台北車站),
밖에서 보기에도 엄청 큰 건물인데 안에 들어와 보니 정말로 큽니다.
천정까지 툭 트인 공간, 올려보면 푸른 하늘이 훤히 보이고 유리를 지나온 햇살은 바닥까지 내려왔습니다.
삼삼오오 짝을 지은 젊은이들, 맨바닥에 철퍼덕 앉아 재잘거리며 열차를 기다리는 여유, 부럽습니다.
역사 뒷문으로 나가니 칙칙폭폭 기차가 있어 한참 구경하고 있는데 아들녀석이 부릅니다, 여기로 와요 ~~
가이드가 깃발을 들고 사람들을 모으고 있습니다,
키는 자그마하지만 우렁찬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는 완전 순 진짜 원조 한국인 가이드,
그러니까 오늘 버스투어는 순전히 한국사람만을 위한 상품인데 값도 저렴할뿐 아니라 손님도 엄청 많습니다,
버스에 올라 가이드의 입담과 함께 한 시간쯤 달려 도착한 곳은 예류 지질공원(野柳 地質公園)
우선 사진부터 한 장 찍고 ~~
내려다보니 정말 기막히게 요상한 외계인 나라입니다.
'바람과 태양과 바다가 함께 만든 해안 조각 미술관'이라는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네요.
수많은 바위들 중 나름의 이름을 가진 바위들만도 30여개나 되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여왕머리 바위(女王頭, Queen's Head), 다음백과에는 이렇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 고대 이집트의 네페르티티 여왕을 닮았다고 해서 ‘여왕머리’라는 이름이 붙음
-. 지각이 융기하는 과정에서 해수의 침식 작용으로 점차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었음
-. 지각의 평균 융기 속도가 연간 2~4mm이므로, 여왕머리 바위의 연령은 4,000년 정도로 추정함
-. 오랜 세월동안 침식되어 목부분이 점점 가늘어져 현재 목둘레는 158cm(직경 50cm)에 불과함
그 여왕님과 뽀뽀 한 번 하고 ~~
촛대바위 앞에서 기념사진 한 장 남기고 ~~
그냥 누워 하늘향해 포즈도 잡아보고 ~~
토끼머리 뿔날 때까지 우리 가족 모두 서로 챙기고 사랑하며 지내자고 ~~
손가락 하트도 날려봅니다.
시계를 보니 모일 시간이 다 되어 가네요, 더 보고 싶은데, 아쉽지만 이내 버스로 돌아갑니다.
다음 방문지는 스펀(十分), 천등 날리기로 유명한 마을입니다.
원래는 석탄 운송을 위해 건설한 역이었으나 탄광업이 몰락하면서 마을도 함께 쇠락하였는데,
천등을 날리는 지극히 단순한 아이디어 하나가 이곳을 다시 사람 북적이는 마을로 부활시켰답니다.
철길과 상가가 거의 맞닿아 있는 좁디 좁은 거리, 북적거리는 여행객들, 여기저기서 들리는 우리말들 ~~
거기 한편에서 우리 가족 모두의 소원을 적고 ~~
철길에 올라 기념사진 한 장 찍고, 천등에 불을 붙이고 잠시 기다리자 ~~
풍등은 우리 소원을 이뤄주려 하늘 높이 올라갑니다, 그냥 순식간에 ~~
그리고 나서 잠시동안의 자유시간, 철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 보는데,
워낙 작은 마을에 관광객들이 북적대니 어디 엉덩이 붙일만한 자리도 없습니다.
햄버거를 대신하는 이 마을만의 특산품 '닭날개 볶음밥',
한 걸음 떼며 한 입 먹고 사진 한 장 찍고 또 한입 먹고 ~~
그렇게 다리를 건너니 저만큼 앞에서 누군가 앉아 일을 하고 있습니다,
뭘 하고 있을까, 그렇구나, 가이드 말이 맞구나,
하늘로 올라간 천등은 이내 어딘가에 떨어지게 되고, 놔두면 쓰레기지만 주워와 손질하면 돈이 됩니다.
한 개에 20원(우리돈 800원)씩이나 준다는데, 환경보호해서 좋고 노인들 일자리 생겨서 좋고 ~~
삑삑 호각소리가 들리더니 잠시 후 열차가 들어옵니다,
좁디좁아 설마 기차가 지나가랴 했는데 진짜로 살아있는 철길, 우리만이 아니라 모두들 사진찍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그렇게 열차가 지나간 후 우리가 이동한 곳은 스펀폭포(十分瀑布),
차에서 내려 아래로 20여분쯤 걸어가는데 ~~
아까 스펀역을 지나갔던 그 열차가 우리 앞을 또 지나갑니다,
우리 관광객들을 위한 열차 퍼포먼스일까? 아니지요, 이들에겐 일상이겠지요.
타이완의 나이아가라 폭포라 불리는 스펀폭포(十分瀑布),
넋을 잃을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장관입니다.
여기까지 폭포구경을 끝내고 다시 또 이동한 곳은 ~~
진꽈스(金瓜石)
-. 일제강점기에 금광촌으로 급부상한 마을로 1970년까지도 금 채굴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음
-. 그 후 금이 고갈되자 폐광촌으로 변했으나 1990년 정부가 관광지로 개발하면서 다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짐
마을 여기저기 일제 때 건물들이 많이 남아있는데, 아마 복원해 놓은 것이겠지요,
여긴 당시 왜놈 높은 쨔사가 기거했던 건물이라 하고 ~~
여긴 당시에 사용했던 왜식 기숙사라 합니다.
그리고 저만큼 떨어진 기슭엔 살아있는 사람들 거주하는 공간이 있고 ~~
그 반대편 기슭엔 죽은 사람들 쉬고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곳 식당에 들러 ~~
옛날 광부들이 먹었다는 광부도시락으로 저녁을 대신합니다.
밥 + 돼지고기 + 녹두나물 + 배추나물 + 미역국, 거기에 추가로 콜라 한 잔,
맛으로 먹기 보다는 여기 왔다는 기념으로 먹는 한 끼 식사,
그 옛날 광부에겐 허기를 달래는 귀하디 귀한 한끼였겠지요.
이제 탐방을 시작합니다,
쭉 걸어 올라가니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지만 자그마한 역사가 있고 ~~
금을 채굴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박물관도 있고 ~~
부상자를 구하는 광부들의 근육까지 생생하게 표현된 동상도 있고 ~~
금광안에 공기를 불어넣어주는 송풍시설도 있는데 ~~
이들이 엄청 자랑하는 한 가지는 순도 99.9%, 무게 220Kg에 달하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금괴,
우리가 방문한 날 당일 시세가 3억4천만 元이니 우리 돈으로 140억원 정도,
로또 1등 당첨금보다 많으니 탐 나기는 하는데 너무 무거워 훔쳐오기가 ~~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지우펀(九份), 아홉 등분이라, 무슨 뜻이 숨어 있을까,
청나라 시절, 이곳은 아홉 집밖에 살지 않는 외진 산골이었기에 마을에 내려가는 것이 큰 일중 하나였겠지요,
그래서 누군가 내려오면 항상 아홉 집 것을 한꺼번에 사가지고 가서 나눴다 하여 9분(九份)이라 이름했답니다.
진꽈스(金瓜石)와 마찬가지로 금광으로 번성했다가 금광과 함께 쇠락하여 잊혀진 마을이 되고 말았는데,
1990년 이곳을 배경으로 한 <비정성시(悲情城市)>가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면서 다시 인기를 얻었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모티브가 된 곳으로 알려지면서 아시아권 여행자들의 필수 방문코스가 되었답니다.
여기는 지산제(基山街), 지우펀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거리로 라오찌에(老街, 오래된 거리)라고도 부른답니다.
가이드가 부탁합니다, "친구여, 우리를 위하여 연주 한 곡만 ~~"
망설이지 않고 오카리나를 연주하는 자연인 친구, 내친김에 다른 오카리나로 한 곡 더 ~~
우린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내려와 이곳 마을의 배경 설명을 들은 후 자유시간을 갖습니다.
누가 뭐래도 지우펀 하면 홍등, 날이 아직 훤하지만 불들은 벌써부터 밝혀져 있습니다.
여기 이렇게 비좁고 경사가 심한 골목길이 수치루(竪崎路)인데,
사람이 하도 많아 앞사람 엉덩이만 보고 걸어야 합니다.
아메이차러우(阿妹茶樓, 아매차루)
-. 영화 <비정성시>의 배경지로 등장한 유명찻집
-. 홍등으로 장식된 멋스러운 외관으로 지우펀을 대표하는 사진 속에 가장 많이 등장함
들어가 차 한 잔 마시면 좋겠지만, 사람은 많고 시간은 없어 사진 한 장 남기는 것으로 대신하고 ~~
내려와 홍등의 멋진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보려 애를 썼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홍등만 예쁜 게 아니라 주변의 풍경도 좋아요, 한 번 감상해 보세요.
밤, 홍등, 어둠, 그리고 적막 ~~
우린 홍등의 화려함을 뒤로 하고 버스를 향해 발길을 돌립니다.
타이완에서의 또 하루가 지나갑니다.
여행이 추억이 되고, 기억은 아름다움으로 바뀌어 가슴속에 자리잡고,
우리 가족은 새로운 얘깃거리를 하나 만들고 잠자리에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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