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강에서 계속)
불교의 가르침이 간단하고, 분명하고, 쉽다고 하는 데,
실제 불교를 알고 싶어서 와보면 복잡하고, 헷갈리고, 어렵습니다.
그냥 믿으면 천당간다 이러면 간단하고 쉽고 분명할 텐데,
불교는 뭔가 긴 것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니고, 아닌 것 아닌 것도 아니고...
이렇게 헷갈리는 가장 큰 이유는 진리와 문화를 착각하는 데에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달마(= 다르마 = 법 = 진리)라 합니다.
진리(다르마)는 문화 속에 담겨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데, 이 진리와 문화를 우리가 착각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물이라고 하면 그 물을 담는 그릇은 문화입니다. 문화란 언어일수도 있고 문자일수도 있습니다.
이 그릇(문화)에 물(진리)을 담아서 우리에게 가져오면,
우리는 물만 마시면 됩니다, 진리만 마시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먼저 그릇을 보기 때문에 어려운 겁니다.
나라마다 그릇은 다 다릅니다. 큰 그릇도 있고, 작은 그릇도 있고, 바가지도 있고, 양푼도 있고...
그런데 우리는 그 그릇(문화)을 부처님의 법(진리)이라고 지금 착각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가치관이라든지, 언어, 문자, 예식, 사찰, 불상, 승복 등은 다 문화이지, 다르마(진리)가 아닙니다.
인도 절과 한국 절은 모양이 다릅니다. 인도 절은 인도 집처럼 생겼고 한국 절은 한국 집처럼 생겼습니다.
그럼 절은 뭐가 절입니까?
수행자가 사는 곳, 수행자가 있는 곳을 절이라 합니다.
부처님이 나무 밑에 앉아있었던 곳이 기원정사이고, 부처님이 대나무 밑에 앉아있었던 곳이 죽림정사입니다.
근데 제가 천막집에 떡 앉아있으면 사람들이 와서, ‘아, 스님 왜 절에 안계시고 여기 계십니까?’ 이럽니다.
기와집을 절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데, 기와집은 우리 문화입니다.
불상도 나라마다 다르게 생겼습니다. 태국 불상은 머리도 뾰쪽하고 손끝도 뾰쪽하고...
스님들 복장도 다 다릅니다.
제가 이렇게 입고 스리랑카에 가 있으면 스님취급을 못받습니다. 왜? 노란 가사를 안입었기 때문에...
부처님 오신 날, 부처님 생일날도 다 다릅니다.
왜? 옛날에는 나라마다 달력이 다 달랐습니다.
우리는 우리 음력대로, 인도는 인도 달력으로, 스리랑카, 태국, 일본은 또 그들 달력으로 말했습니다.
이게 미국이나 서양에 들어가니까 서양 사람들이 헷갈립니다.
부처님 오신 날도 다르고, 절 모양도 다르고, 불상 모양도 다르고, 스님들의 옷 모양도 다르고,
심지어 경전 내용도 다 다릅니다.
그러니까 서양 사람들이 얼마나 헷갈리겠습니까?
문화는 나라마다 다르고, 같은 나라에도 시대마다 다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스님들 술 마시는 데에 좀 관대한 편이죠? 한 잔 정도야 곡차라고 마십니다.
그런데 남방불교에서는 스님들이 술 먹었다 하면 그걸로 끝입니다. 술 먹는 것은 오계를 어긴 것에 속하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스님이 술 마시는 것보다 담배 피우는 것을 더 싫어합니다.
남방불교인 버마 스님들은 밥먹고 나면 절 앞 계단에 앉아, 어른 애 할 것 없이 전부 뽀끔뽀끔 담배를 피웁니다.
10살짜리 꼬마 스님부터 60대 노인 스님까지 줄줄이 같이 앉아서 피우고 있습니다.
우리가 밥먹고 나면 껌을 씹듯이, 그 사람들에게는 그것하고 똑같은 겁니다.
우리는 이해하기가 힘들죠? 그러나 이건 그들의 문화입니다.
진리(달마)는 분명하고 간단하고 쉽습니다.
그리고 문화는 서로 다르므로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부처님의 실제의 가르침, 경전에 있는 말씀을 한 번 들어볼까요?
얼마나 쉽고 분명하고 간단한 지...
어떤 제자가 이렇게 부처님께 물었습니다.
'부처님,
브라만교에서는 아무리 죄를 많이 지어도, 갠지스강에 가서 목욕을 한 번 하고나면,
죽은 시체라도 그 물에 한 번 담그고 나면, 모든 업장이 소멸되어 천상에 간다고 하는 데,
왜 우리에는 맨날 이렇게 수행하라고 그럽니까? 물에 그냥 풍덩 들어갔다 나오죠.'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비구여,
그 말이 맞다면 갠지스 강에 사는 물고기가 가장 먼저 천상에 갈 것이다.
갠지스강에 가서 목욕한다고 천상으로 갈 것 같으면
갠지스강에 사는 물고기가 제일 먼저 천상에 갈 것이다.'
그러면 이런 질문에 대해서 그 해답이 풀렸지요?
그것은 옳으니 그르니 이런 얘기를 안하시고, 이렇게 아주 간단하게 얘기합니다.
분명하고 간단명료하고 쉽지요? 이게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을 들으면 모든 것이 분명해지게 되니까, 사람들이 부처님께 귀의한 겁니다.
장자(재벌)인 수닷타 같은 사람은 전 재산을 바쳐, 부처님과 제자들이 수행하고 대중들을 포교하도록 했습니다.
목갈리나 존자는 인도 제1의 신통력자로 온갖 대중의 지지를 받던 사람인 데,
'신통력을 쓰는 게 옳은 것이 아니다'는 부처님의 말씀에,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신통력을 쓰지않았습니다.
사람을 99명이나 죽인 앙굴리 말라는 부처님 가르침을 듣고 깨달아 제자가 되었는 데,
대중들은 살인자가 스님이 되었다해서 돌로 쳐 죽이려 하는 데,
힘으로야 천 명도 죽일 수 있는 그이지만, 담담히 죽음을 받아들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해가 달을 가리는 게 기적이 아니고, 물 위를 걷는 게 기적이 아니라, 기적이라면 이런 게 기적입니다.
왜 이렇게 사람이 바뀌어 버렸을까?
그건 너무도 분명하니 그런 겁니다.
분명하지 않으면 어떤 한계상황에 가면 이렇게 고민하게 됩니다,
'부처님 가르침 따르다가 병신 되는 것 아니냐, 재산 다 날리는 것 아니냐...'
그러나 부처님 가르침은 너무도 분명했기 때문에 많은 제자들은 고민하는 대신에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부처님을 찬탄하고 공경합니다.
부처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귀의합니다.
부처님 법 만난 것을 기뻐합니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옴을 알아 부지런히 정진하겠습니다.
부처님 제자 됨이 자랑스럽습니다.
이 땅에 고통 받는 모든 중생을 구원하는 보살이 되겠습니다.”
이 강의는 '정토회 > 정토TV > 법문 보기 > 실천적 불교사상'에서 동영상으로 볼수 있습니다.
*** 짧은 생각 ***
불교란 무엇인가?
불교란 ‘깨달으신 분이 깨닫지 못한 자를 깨닫게 해주는 가르침’ 입니다.
깨달으면 괴로움이 없어지고 속박에서 벗어나고 행복해 집니다.
이런 불교의 특징은 간단하고 분명하고 쉽다는 것입니다.
불교를 어렵다고 느끼는 것은 진리와 문화를 혼돈하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명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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