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기장

임진(壬辰)년을 보내며

상원통사 2013. 2. 6. 23:53

2013년도 벌써 2월입니다. 그러나 음력으로는 아직도 임진년입니다.

우리네 삶이 양력기준인지라, 2012년 12월에 썼어야 할 마무리 글이지만, 이번에는 음력 기준으로 마무리합니다.

왜냐구요?  슬픈일이 있어서 근신하느라 조금 미룬 것입니다. 이럴 땐 음력이 있어서 참 좋습니다.

 

큰 아이가 물어봅니다. 아빤 작년에 뭐했어?

글쎄, 뭐했더라...

생각해보니 내겐 참 변화가 많은 해였습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으니 불만에 가득차고, 나만 뒷쳐진 것 같은 느낌으로 지내온 세상에서,

술과 잠에 찌들어 지내는 나날들에서 조금씩 깨어나기 시작한 해였습니다.

 

헤아려보니 11가지를 시도했더군요. 무엇을 했나 하나씩 이야기해 볼까요?

 

그 첫 번째가 천주교 성지순례입니다.

비록 목적은 다르지만(아내는 기도하러, 나는 사진 찍으러) 아내와 함께 8차에 걸쳐 25군데를 다녀왔습니다.

한 번 나가면 세 군데씩 들러야 하기에, 일정짜는 것도 만만치는 않았지만 이젠 제법 익숙해졌습니다.

5년 계획으로 시작했는 데 이젠 86군데 남았습니다.

 

두 번째는 블로그의 개설입니다.

성지순례 다니며 찍은 사진을 올릴 수 있는 블로그를 만들어 보라는 아내의 권유에,

투덜투덜하면서 겨우 만들었는 데, 이제는 스스로가 푹 빠졌습니다.

방문객도 1만명을 넘었습니다.

나를 이야기하는 또하나의 공간. 이젠 사진만이 아니라, 글도 제법 올리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페이스북의 시작입니다.

이 역시 아내의 권유로 시작했는 데, 나를 알리는 또다른 장이 되었습니다.

일기장과 잡기장을 구분할 줄 알기에, 사생활의 노출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단지, 내가 아는 사람들의 연령대가 높아서 그런지 무반응이라는 점이 조금 서운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 불만은 없습니다.

 

네 번째는 걷기여행의 시작입니다.

요즈음 걷는게 유행이라, 나도 따라하고 싶어 <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걷기여행>이란 책을 한 권 샀습니다.

모두 52군데가 소개되었는 데, 5년 목표로 시작했습니다.

작년 한 해동안에는 4군데를 돌았습니다. 걷다보니 사진 찍을 거리가 많아 재미있습니다.

 

다섯 번째는 법륜스님을 만나고 정토회를 발견한 것입니다.

안성 시민회관에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듣고, 회사동료가 준 법륜스님의 강의 테이프를 듣다가,

'정토회' 사이트에 들어가서 법륜스님의 법문을 들으며 새로운 눈이 떠지고 있습니다. 내가 바뀌기 시작한 것입니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에 감사드리고, 그 진리의 말씀에 귀기울이며, 

자상하게 설명해 주시는 법륜스님의 법문에서 또 한 번 기쁨을 느낍니다.

그러나 아직은 불교도가 아닌 불학도(佛學徒)입니다.

 

여섯 번째는 108배의 시작입니다.

천성이 게을러 운동하기 싫어하지만, 108배하면 운동이 잘된다기에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108배만 했는 데 이제는 그 두배인 216배를 합니다.

30여분 정도 운동을 하면 땀이 쫙 나고, 샤워하고 나면 기분이 너무너무 좋아집니다.

아울러 몸도 더 건강해지는 것 같고요.

 

일곱 번째는 골프의 고질병이던 뒤땅과 슬라이스가 없어졌습니다.

골프를 끊고 있다가 작년 여름에 다시 연습을 시작했는 데, 어느날 갑자기 터득했습니다.

흔히들 머리를 고정하라고 하는 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백스윙할 때 꼬리뼈를 고정하고, 꼬리뼈를 축으로 회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하면 머리도 자연히 고정이 될 뿐이 아니라, 책에서 이야기하는 모든 느낌이 다 들어옵니다.

다운스윙은 왼발로 체중이동만 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드라이버의 슬라이스도 없어지고, 3번 아이언을 휘두르는 데도 전혀 문제 없습니다. 

연습을 더하여 3번우드를 성공하면 나만의 비법은 완성됩니다.

 

여덟 번째는 당구의 기본을 알았습니다.

갑자기 궁금해져서 <당구의 기술 - 사구의 기초 이론과 연습>이란 책을 한 권 사서 읽어 보았는 데,

나도 참 한심한 것이, 남들은 쉽게 체득한 것을 아직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큐대는 양미간 사이에 두고, 머리는 최대한 낮추며, 볼은 위아래가 아니라 좌우로 치우칠수록 회전이 많이 걸린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이젠 연습만 남았습니다.

 

아홉 번째는 통기타의 스트록법을 알았습니다.

학교 다닐때, 남들은 소리가 잘 나는 데, 난 그게 잘 안되서 치다가도 그만 두곤 했는 데,

아내가 아들을 위해 사준 기타에 딸려온 통기타 연습법의 CD에 어떻게 하는 지 자세히 나와있더군요.

다운스윙은 네 손가락으로, 업스윙은 엄지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도 오랫만에 기타를 잡아보기에 왼손가락이 아파서 연습을 많이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이것도 연습만 남았습니다.

 

열 번째는 뜸뜨는 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나이 먹으면 봉사활동을 하는 게 보람있을 것 같고,

그중 뜸을 배워두면 흰 가운 입고 폼나게 봉사활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공부하기 시작했는 데, 도중에 그만 두었습니다.

남에게 시술하는 행위 자체가 불법이라하니, 죄짓고 싶지 않아서 그만 두었습니다.

그러나 "배워서 남주자!"는 구당 김남수옹을 알았고, 무극보양뜸이란 만병통치의 뜸자리가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아쉽지는 않습니다.

시간이 되면 다시 연습을 시작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열 한 번째는 내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변화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예뻐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법륜스님의 법문을 듣고 되새기다가, 내가 바뀌기 시작한 것입니다.

대학을 노는 곳으로 생각하는 것 같고 말끝마다 대꾸나 하고 방문이나 쾅쾅닫던 큰 딸이었는 데,

나보다는 더 다양하게 공부하고 자기주장을 확실히 펴는 것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공부 안한다고 맨날 구박만 했는 데, 따뜻한 마음씨가 넘쳐흐르는 둘째 딸은 

크면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는 행복의 전도사가 되리라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조금 어리버리하기에 띨띠리우스라고 별명을 지어준 막내 아들은

하는 것 마다 너무도 부족하기에 정말로 못마땅하고 꾸지람도 많이 했는 데,

변해가는 속도를 보니 성인이 되었을 때는 나보다 훨씬 더 나은 사람이 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이 예뻐보이기 시작하니, 아이들도 내게 더 잘하는 것 같습니다.

 

생각을 바꾸니 세상이 즐겁습니다.

이 모든 것을 바뀌게 계기를 만들어준 아내가 너무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슬픔도 가득한 한 해였지만, 그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크게 잘못한 일도 있지만, 그것은 일기장에 적고 이 잡기장에는 적지 않겠습니다.

 

그저 임진년 한 해는 즐거움으로 가득한 해였습니다.

 

자랑이 너무 심했군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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