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기장

[응급실 48시간] 6. 우리 아이들

상원통사 2012. 10. 12. 23:08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아주대 병원 응급실에 있을 때의 일이다.

 

옆 침대에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가 들어왔다.

그 아이를 둘러싸고 어른들이 여럿 서있다. 모두 말 없이 아이만 보고 있다. 

어머니로 보이는 젊은 부인은 의자에 앉아 아이를 보고 있다.

아이는 말없이 누워있고, 어머니는 천정을 쳐다본다.

그리고 연신 눈물을 훔친다. 아무 말없이 눈물만 훔친다.

응급실에 실려온 것을 보니 아이가 많이 아픈 것 같다.

상처가 없는 것을 보니 속병이리라. 어머니의 눈물이 치료가 어려운 병이라 말하는 듯하다.

차마 물어보지는 못했다.

 

반대편 침대에는 여대생이 누워있다. 어머니가 옆에서 병간호를 한다.

어머니는 부산에 살고, 학생은 안성의 원룸에서 자취하며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어느 날인가 감기같아서 약을 지어 먹었지만, 낫지 않고 점점 더 악화되기만 했다.

평소에도 말을 잘 안하는 성격이기에 어머니한테도 연락 안하고 혼자서 앓고 있었다.

학교를 며칠 결석했기에 이상히 여긴 친구가 전화를 해보고서야 알았다.

그제서야 친구가 어머니한테 연락하고, 이 곳 병원으로 온 것이다.

예쁘게 생긴 학생이다. 그런데 눈동자에는 힘이 하나도 없다.

망치로 무릎을 때려도 별 반응이 없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정신도 약간 이상한 것 같다고 한다.

의사들은 무슨 병인지 진단도 못내리고 왔다갔다만 한다. 우리가 응급실을 떠날 때까지도 그들은 그 침대를 못벗어나고 있었다.

다 키운 딸이 객지에서 이름도 모르는 병에 걸려 누워있으니, 그 어머니의 심정은 어떠하랴?

 

우리 큰 애는 대학 2학년이다.

최근에는 조금 달라졌지만, 대학은 노는 곳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놀았다. 황금같은 시간들인데 아깝다.

둘째 애는 고 2인데, 태평세월이다.

대학교는 틀림없이 가겠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조금 어렵다. 안타깝다.

막내 애는 중 2인데, 열심히 게임만 한다.

최근에는 벼락치기 공부로 성적이 약간 오르기는 했지만, 여전히 Killing Time엔 일가견이 있다.

세상에 재미있는 게 그렇게도 없나??

 

다른 집 아이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화가 나기도 한다. 뭐가 어쩌고 저쩌고, 뭐를 잘하고 무슨 상 받았고....

우리 애들은 별반 자랑할 것이 없다.

 

생각을 바꿔본다.

병원에서 본 초등학생과 여대생은? 그래, 이만큼이라도 고맙다. 아프지 않고 건강히 자라는 것만도 절반 효도다.

정직하다. 가게에서 거스름돈 100원만 더 받아와도 기어이 가서 돌려준다. 

떼도 안쓴다. 노스페이스나 나이키는 이야기도 꺼내지 않는다. 인터넷 뒤지고 동네 가게 뒤져서, 싸고 튼실한 제품만 골라서 산다.

아까운 줄 안다. 밥그릇에 붙은 밥알 하나도 버리지 않는다. 환경운동가가 따로 없다.

어른들께 잘한다. 할아버지, 할머니께 하는 것을 보면 안다.

얼굴도 예쁘다. 이만하면 어디 내놔도 별로 빠지지 않는다.

착하다. 봉사가 취미고 헌혈이 특기인 것 같다. 나는 전혀 안닮았다.

성격도 좋다. 공부와 친구 사귀기는 별개인 것 같다.

 

애가 셋이면 하나쯤은 조금 엇나가기도 한데, 우리 애들은 셋 다 비슷하다. 이것도 행복이리라!!!

 

예전에 이런 광고가 있었다 - 개구쟁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맞다. 맞는 말이다.

 

그래도,

공부를 쪼끔만 더 열심히 하고, 시간을 쪼끔만 더 아껴쓰면 정말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