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걷기여행

1-2. 수원 화성일주(장안문-화서문-서장대-서남암문-팔달문)

상원통사 2012. 9. 12. 23:16

'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걷기여행'이란 책에서 소개한 52곳 중 첫번째 여정이 바로 집에서 가장 가까운 수원 화성입니다.

 

 

" ~~수원 화성은 조선 22대 임금인 정조때 정약용의 <성화주략>을 지침서로 하여,1794년 1월에 착공에 들어가 1796년 9월에 완공하였다.

 축성시에 거중기, 녹로 등 신기재를 특수하게 고안·사용하여 장대한 석재 등을 옮기며 쌓는데 이용하였다.

성의 둘레는 5,744m, 면적은 130ha로 동쪽지형은 평지를 이루고 서쪽은 팔달산에 걸쳐 있는 평산성의 형태로 성의 시설물은

 문루 4, 수문 2, 공심돈 3, 장대 2, 노대 2, 포(鋪)루 5, 포(砲)루 5, 각루 4, 암문 5, 봉돈 1, 적대 4, 치성 9, 은구 2등

 총 48개의 시설물로 일곽을 이루고 있으나 이 중 수해와 전란으로 7개 시설물(수문 1, 공심돈 1, 암문 1, 적대 2, 은구 2)이 소멸되고 41개 시설물이 현존하고 있다.

 

 축성 후 1801년에 발간된 「화성성역의궤」에는 축성계획, 제도, 법식뿐 아니라

 동원된 인력의 인적사항, 재료의 출처 및 용도, 예산 및 임금계산, 시공기계, 재료가공법, 공사일지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성곽축성 등 건축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기록으로서의 역사적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수원화성은 사적 제3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소장 문화재로 팔달문(보물 제402호), 화서문(보물 제403호), 장안문, 공심돈 등이 있다.

 수원화성은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

 

 

화성을 일주하는 동안 찍은 사진이 너무 많아서, 둘로 나눴습니다.

이제는 장안문부터 시작합니다.

 

장안문(長安門)

장안문은 화성의 4대문 중 북쪽 대문으로 정문이라 할 수 있다.

1794년 2월 28일 공사를 시작하여 9월 5일 완성하였다.

장안이라는 말은 수도를 상징하는 말이자 백성들의 안녕을 상징하는 의미이다.

장안문 누각의 지붕은 우진각 지붕으로 웅장한 위엄을 주고 있으며,

서울의 국보 1호 숭례문보다도 큰 문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성문이다.

성문의 바깥에는 반원형의 옹성을 쌓았는 데 이것은 항아리를 반으로 쪼갠 것과 같다고 해서 붙인 이름으로 성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장안문 바깥의 옹성>

 

 

<성안에서 바라본 장안문>

 

 

<장안문에서 성밖으로 나와 걸었습니다. 성벽의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해보세요.>

 

 

 

 

 

 

<잔디밭에 앉아 한가로이 한 때를 지내고 계시는 분들... >

 

 

 

화서문(華西門)

화서문은 화성의 4대문 중 서쪽 대문으로 1795년(정조 19) 7월 21일 공사를 시작하여 1796년(정조 20) 1월 8일 완성하였다.

화성 서쪽의 남양만, 서해안 방면으로 연결되는 통로로서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보물 제403로 지정되어 있다.

편액은 초대 화성유수였던 채제공(蔡濟恭)이 썼으며

옹성 안 홍예문 좌측 석벽에서는 성문 공사를 맡은 사람들과 책임자들을 기록한 공사실명판이 있다.

 

 

 

 

서북각루(西北角樓)

각루는 성곽의 비교적 높은 위치에 세워져 주변을 감시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으며 비상시 각 방면의 군사지휘소 역할을 하는 곳이다.

서북각루는 화성의 4개 각루의 하나로 숙지산 자락이 마주보이는 자리에서 화서문 일대의 군사를 지휘하기 위해 만들었다.

1층은 온들을 설치하여 숙직하는 군사가 사용하도록 만들었다.

 

 

 

서일치(西一雉)

'치'란 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오도록 한 시설물로서

성벽 가까이에 접근하는 적군을 공격하기 위한 시설물로 화성에는 10개의 치가 있다.

치(雉)는 꿩을 말하는 것으로서, 능히 자기 몸을 숨기고 주변을 잘 살펴보기 때문에 그 뜻을 따서 치성이라고 하였다.

서일치는 서북각루와 서포루 사이에 있다.

 

 

서포루(西砲樓)

서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 중 서북각루와 서장대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1796년(정조 20) 5월 30일 완공되었다.

포루는 적이 성벽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화포를 쏠 수 있도록 만든 시설물로 치성의 발전된 형태이다.

화성의 전투지휘소인 서장대의 근거리에 위치하고 있기에 5개의 포루 중 가장 중무장한 포루이다.

 

 

 

서이치(西二雉)

서이치는 서포루와 서장대 사이에 있다. 서일치와 설명은 동일..

 

 

 

서장대(西將臺, 華城將臺)

장대란 성곽 일대를 한눈에 바라보며 화성에 주둔했던 장용외영 군사들을 지휘하던 지휘소를 말하며 서장대와 동장대 두 곳이 있다.

서장대는 팔달산 정상에 있으며 '화성장대'란 편액은 정조가 친히 쓴 것이다.

1794년(정조 18) 8월 11일 터 닦기 공사를 시작하여 9월 29일 완성하였다.

정조는 1795년 윤2월 12일 현륭원(융릉) 참배를 마치고 서장대에 올라 성을 수비하고 공격하는 주간훈련과 야간훈련을 직접 지휘하였다.

 

 

<서장대의 뒷 모습>

 

 

서노대(西弩臺)

노대는 성 가운데서 다연발 활인 쇠뇌를 쏘기 위하여 높이 지은 것으로서, 화성의 노대는 서노대와 동북노대의 2기가 있다.

서노대는 팔달산 정상에 위치하여 사방을 볼 수 있으며 정8각형 평면의 기와 벽돌로 쌓았다.

 

 

<서장대에서 내려다 본 화성행궁>

 

 

<먼 발치에서 본 서장대>

 

 

효원의 종(孝園의 鐘)

1992년 제작하였으며, 일반인도 타종할 수는 있는 데 돈을 내야 함

 

 

서삼치(西三雉)

서삼치는 서포루 서남암문 사이에 있다. 설명은 서일치와 동일..

 

 

<삼일독립기념탑도 있습니다.>

 

 

서남암문(西南暗門)과 서남포사(西南포舍)

암문은 성곽의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적이 알지 못하도록 출입구를 내어

사람이나 가축이 통과하고 군수품을 조달하기 위하여 설치된 문으로 화성에는 5개의 암문이 설치되어 있다.

이 문은 용도(甬道)의 출입문으로 만들어졌으며 문 위에는 안팎으로 낮은 성가퀴를 설치하였다.

5개의 암문 중에서 유일하게 포사가 설치되어 있다. 1796년(정조 20) 8월 6일 홍예가 완공되었다.

포사는 성 밖의 위험을 성 안으로 알리는 역할을 하는 시설물ㄹ로 깃발을 휘두르거나 대포를 쏘아 위급신호를 전달한다.

서남포사는 서남암문 위에 지은 것으로 건물은 넓이가 한 칸이고 군사가 항상 지키므로 온돌을 놓고 사면에 판문을 설치하였다.

 

 

<밖에서 본 서남포사 >

 

 

<화양루까지 가는 길>

 

 

서남각루(西南角樓)

각루는 성곽의 비교적 높은 위치에 세워져 주변을 감시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으며 비상시 각 방면의 군사지휘소 역할을 하는 곳이다.

서남각루는 화성의 4개 각루 중 팔달산 남쪽 능선에 설치한 용도의 남쪽 끝에 세워졌다.

1796년(정조 20) 4월 16일 공사를 시작하여 7월 20일 완성하였다.

편액은 화양루(華陽樓)라고 하였는 데 '화'자는 화성을 뜻하고 '양'자는 산의 남쪽을 뜻하는 것이다.

 

 

남포루(南砲樓)

남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 중 팔달문과 서남암문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1796년 7월 9일 완공되었다.

포루는 적이 성벽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화포를 쏠 수 있도록 만든 시설물로 치성의 발전된 형태이다.

팔달문 주위의 성벽과 화양루, 용도를 수비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남치(南雉)

남치는 팔달문과 남포루 사이에 있다. 설명은 서일치와 동일..

 

 

 

<팔달문은 지금 수리중...>

 

 

30분 정도만 더 걸으면 화성 일주를 끝낼 수 있었는 데, 아쉽지만  비가 와서 다음으로 연기했습니다.

팔달문 보수가 끝난 이후 한 번 더 와서 화성 일주를 마칠까 합니다.

사진을 올리면서 공부도 많이 했습니다. 다음에 한 바퀴 돌때는 그 의미들을 새겨보려 합니다.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