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걷기여행

1-1. 수원 화성일주(창룡문-연무대-방화수류정-화홍문)

상원통사 2012. 9. 11. 22:56

'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걷기여행'이란 책에서 소개한 52곳 중 첫번째 여정이 바로 집에서 가장 가까운 수원 화성입니다.

 

" ~~수원 화성은 조선 22대 임금인 정조때 정약용의 <성화주략>을 지침서로 하여,

1794년 1월에 착공에 들어가 1796년 9월에 완공하였다.

 축성시에 거중기, 녹로 등 신기재를 특수하게 고안·사용하여 장대한 석재 등을 옮기며 쌓는데 이용하였다.

 성의 둘레는 5,744m, 면적은 130ha로 동쪽지형은 평지를 이루고 서쪽은 팔달산에 걸쳐 있는 평산성의 형태로

 성의 시설물은 문루 4, 수문 2, 공심돈 3, 장대 2, 노대 2, 포(鋪)루 5, 포(砲)루 5, 각루 4, 암문 5, 봉돈 1, 적대 4, 치성 9, 은구 2등

 총 48개의 시설물로 일곽을 이루고 있으나 이 중 수해와 전란으로

 7개 시설물(수문 1, 공심돈 1, 암문 1, 적대 2, 은구 2)이 소멸되고 41개 시설물이 현존하고 있다.

 

축성 후 1801년에 발간된 「화성성역의궤」에는 축성계획, 제도, 법식뿐 아니라

동원된 인력의 인적사항, 재료의 출처 및 용도, 예산 및 임금계산, 시공기계, 재료가공법, 공사일지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성곽축성 등 건축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기록으로서의 역사적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수원화성은 사적 제3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소장 문화재로 팔달문(보물 제402호), 화서문(보물 제403호), 장안문, 공심돈 등이 있다.

수원화성은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

 

버스에서 내려 맨처음 방문한 곳이 창룡문입니다

 

 

창룡문(蒼龍門)

창룡문은 화서의 4대문 중 동쪽 대문으로, 1795년(정조19) 5월 8일 터닦기 공사를 시작하여 10월 17일에 완공하였으나

한국전쟁으로 문루가 파괴되었던 것을 1976년 중건하였다.

창룡은 곧 청룡으로 풍수지리상 좌청룡 우백호를 통해 동쪽을 의미한다.

성문을 보호하기 위한 옹성을 반달모양으로 쌓았는데 장안문, 팔달문과 달리 한쪽을 열어놓았다.

옹성안 홍예문 좌측 석벽에는 성문 공사를 맡은 사람들과 책임자들을 기록한 공사실명판이 있다.

 

<성문 밖에서의 모습>

 

 

<성문 밖의 옹성>

 

 

<옹성 위에서 본 문루>

 

 

<성안에서 본 창룡문>

 

 

동북노대(東北弩臺)

노대는 성 가운데서 다연발 활인 쇠뇌를 쏘기 위하여 높이 지은 것으로서, 화성의 노대는 서노대와 동북노대의 2기가 있다.

동북노대는 창룡문과 동북공심돈의 중간에 동북향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반달 모습의 담장으로 보호하고 있다.

 

 

<오늘은 마침 전국 궁도대회가 이곳 수원 연무정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

 

 

 

 

<나도 처음보는 것인 데, 활시위를 당길 때 쓰는 '깍지'라는 것입니다.

 서양의 활에서는 시위를 네 손가락을 당기지만, 한국의 활에서는 엄지손 가락으로 걸어서 당깁니다.

 엄지손가락으로 시위를 걸고, 엄지손가락 위에 검지와 중지를 덮어서 힘을 보강합니다.

 이때 엄지에 쇠뿔로 만든 덮개를 씌우는데, 그것을 깍지라고 합니다.

 깍지란 알맹이를 싸는 껍질을 뜻하는 말이라 합니다.>

 

 

동북공심돈(東北空心墩)

<공심돈은 성곽 주위와 비상시에 적의 동향을 살피기 위한 망루와 같은 것으로 화성에서 처음 나타났다.

 화성에는 서북공심돈, 남공심돈, 동북공심돈 등 세 개를 만들었다.

 동북공심돈은 1796년(정조 20) 7월 19일 완성되었으며 그 형태가 커다란 둥근 원의 모습으로 화성 성곽 내에서 가장 특징이 있는 건물의 하나이다.

 동북공심돈 내부는 나선형의 벽돌 계단을 거쳐 꼭대기에 오르게 되어 있기에 소라처럼 생겼다고 하여 일명 '소라각'이라고도 불리기도 한다.>

 

 

 동장대(東將臺, 鍊武臺)

<장대란 성곽 일대를 한눈에 바라보며 화성에 주둔했던 장용외영 군사들을 지휘하던 지휘소를 말하며 서장대와 동장대 두 곳이 있다.

 동장대는 1795년(정조 19) 7월 15일 공사를 시작하여 8월 25일 완성하였으며, 무예를 수련하였기에 연무대라는 별칭이 붙었다.

 이곳은 지형이 높지는 않지만 사방이 트여 있고 등성이가 솟아 있어서 화성의 동쪽에서 성 안을 살펴보기에 좋은 군사요충지이다.>

 

 

 

 불랑기(佛狼機) 5호

<조선후기 대표적인 휴대용 화포. 몸체 길이 72Cm, 총구멍 9.5Cm.

 불랑은 프랑크(Frank)라는 유럽인을 뜻하는 말로, 서양에서 만든 화포를 '불랑기'라고 함.

 몸체가 큰 1호로 부터 작은 5호로 구분됨.

 발사 틀의 구실을 하는 모포(母砲)와 실탄을 장전하여 모포에 삽입해 발사하는 자포(子砲)로 이루어짐.

 여러 개의 자포를 이용해 연속 사격이 가능해 임진왜란 이후 육전은 물론 해전에서도 위력을 발휘함으로써 조선 제일의 화기로 평가받음.>

 

 

 투석(投石)

<성을 지키는 도구의 하나로 일명 '비석(飛石)'이라 함.

 [화성성역의궤]에 의하면, 성을 지킬 때 타마다 크고 작은 돌맹이 100개씩,

 10타마다 큰 돌 200근(120Kg) 또는 150근(90Kg)짜리 3개씩 두도록 규정함.

 투석은 준비가 쉽고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어 성을 방어하는 무기로 오랫동안 사용됨.>

 

 

<화성열차도 예쁘고~~>

 

 

<성벽도 예쁩니다.>

 

 

 

 동북포루(東北포樓)

<포루는 성곽을 돌출시켜 만든 치성 위에 지은 목조건물이며 초소나 군사대기소 같은 곳이다.

 동북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 중 하나로 1796년(정조 20) 5월 15일 완공되었다.

 이곳의 지세가 주변보다 높아서 동암문과 동장대, 북암문과 방화수류정까지 엄호할 수 있는 위치이다.

 은거한 선비들이쓰는 모자인 각건과 모양이 비슷하다하여 각건대(角巾臺)라고 하였다.>

 

 

 

 <방화수류정 밖의 연못>

 

 

<연못 가에선 한가롭게 쉬는 사람들도 있고~~>

 

 

<연못 안에서는 오리가 놀고, 멀리 방화수류정이 보이고~~>

 

 

<방화수류정을 스케치하는 멋진 분도 있습니다.>

 

 

 북암문(北暗門)

<암문은 성곽의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적이 알지 못하도록 출입구를 내어

 사람이나 가축이 통과하고 군수품을 조달하기 위하여 설치된 문으로 화성에는 5개의 암문이 설치되어 있다.

 북암문은 방화수류정과 각건대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화성에서 유일하게 벽돌로 좌우성벽을 쌓았다.

 1796년(정조 2) 3월 27일에 완공되었다.>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

<방화수류정이란 이름은 꽃을 찾고 버들을 쫓는 정자란 의미를 갖고 있으며 중국 송나라의 시인 정명도의 시귀절에서 따 온것으로

 방화수류정에서 바라보는 용연위에 비친 달빛과 어우러진 버들가지와 철쭉등의 경치가 좋아 수원팔경 가운데서도 으뜸으로 친다.
 방화수류정은 기존의 목조건축의 구조를 살리면서도 벽돌을 조화롭게 섞어서

 새로운 조형을 창출한 벽돌과 목조구조가 결합된 대표적인 건물로 평가 받고 있다.
 벽돌과 목재의 조화는 기단과 하층벽체에서 볼 수 있는데 이는 석재로 기단벽면의 테두리를 짜고

 그 테두리 내부를 벽돌로 채워 넣는 기단의 형식으로 화성성역의궤에서 벽체석연이라는 명칭으로 설명하고 있다. >

 

 

북수문(北水門, 華虹門)

<화성의 중간을 남북으로 흐르는 수원천 위에 북수문과 남수문 등 두개의 수문을 세웠다.

 1794년 2월 28일 공사를 시작하여 1795년(정조 19) 1월 13일 완성하였다.

 북수문은 편액을 화홍문이라 하였다.

 화(華)자는 화성을 의미하고, 홍(虹)자는 무지개를 뜻하는 글자로

 장쾌한 물보라가 수문으로 넘쳐나는 모습을 화홍관창(華虹觀漲)이라 하여 수원팔경의 하나로 꼽았다.

 북수문은 화강암으로 쌓았으며 물이 통과하는 수문에는 쇠창살을 설치하여 외부의 침입을 차단하도록 하였다.>

 

 

<성 밖에서 본 화홍문과 방화수류정>

 

 

 <커피집이 예뻐서 한 컷 담았습니다.>

 

 

북동포루(北東砲樓)

<북동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 중 북동쪽 장안문과 화홍문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1794년(정조 18) 9월 23일 완공되었다.

 포루는 적이 성벽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화포를 쏠 수 있도록 만든 시설물로 치성의 발전된 형태이다.

 화성의 포루는 모두 벽돌을 사용하여 만들었으며 공심돈과 같이 안을 비워 적을 위와 아래에서 동시에 공격할 수 있게 하였다.>

 

 

 홍이포(紅夷砲)

<길이 215Cm, 구경 10Cm, 중량 1800Kg

 홍이포는 명나라 말부터 청나라 때까지 사용된 유럽식 화포로

 포구쪽에서 화약과 포탄을 장전하여 발사하는 포구장전식 화포이며

 사정거리가 700m에 달하는 위력적인 화기로서 성곽 또는 포루 등에 배치하거나 성곽 공격용으로 사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