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블라디보스톡

원앙들의 나들이 - 블라디보스톡 3(終)

상원통사 2019. 9. 28. 00:17

한 친구가 이런 얘기를 했지요, '우리 여기저기 다니니 블라디보스톡이 큰 것 같지만 기껏해야 반경 2km도 안 될거다.'

구글 지도를 보니 정말로 그렇습니다, 서울로 치면 사대문 안 정도나 되겠지요. 

자유여행으로 온다면 하루는 좀 빠듯할까, 길어야 이틀이면 빼먹지 않고 너끈히 즐길 것 같습니다.


신한촌에서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을 마치고 이동한 곳은 <지상요새 박물관>,

19세기 말 육지 및 해상 방어를 위해 이 언덕에 군사기지를 만들었고, 러일 전쟁 이후 재건축되었는데,

진짜 이름은 베지미안나야(Bezymyannaya) 요새, 1996년에 복원하여 박물관으로 개장하였답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대포들도 있고 ~~




동글동글한 폭탄들도 있는데, 진짜로 궁금합니다, 폭탄이 이렇게 생긴게 맞나?



그리고 쭉 늘어선 콘크리트 벙커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답니다.



그 벙커 안으로 들어갑니다, 또 폭탄들이 있고 ~~



옛날 옛적 사용했던 화승총들이 있고 ~~



만화에서 보았던 따발총도 있습니다.

왜 이렇게 대충대충 이야기하느냐, 내가 뭘 아는 게 있어야 시부렁거리지요,

제대로 군대 다녀온 사람들이야 잘 알겠지만, 월남 스키부대에서는 이런 것 배우지도 않고 보여주지도 않았습니다.



군사시설답지 않은 전시물 하나, 성모님과 아기 예수,

전쟁이 나면 성모님은 누구 기도를 들어주어야 할까,

임진왜란 때 왜군 무찌르는 승병들에게 부처님은 잘한다고 박수치셨을까, 궁금합니다.



사진이 한 장 전시되어 있습니다.

사진 아래엔 "20세기 초반 한국의 이민자들(The Korean Settlement in the beginning of 20 century)"이라 적혀있는데,

집도 허름하고 입성도 초라하지만 찬찬히 보면 모두들 밝은 표정으로 웃음기마저 머금고 있습니다.

고국에선 못 먹고 못 살다 여기 와선 그래도 먹고 살 만하여 저절로 웃음이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 '김치~'를 외치라 했는지 모르겠지만....



P'O-HAI Kingdom(발해왕국), 서기 698~920년,

발해의 영역을 표시한 지도가 보이고 그 옆에는 고구려 무용총에 나오는 말탄 기마병이 있습니다.

러시아 반의 반의 반만큼만 욕심이 있었다면 지금 이 땅이 우리 땅일 것인데 ~~



슬쩍슬쩍 구경을 마치고 밖으로 나온 우리, 잠시 자유시간을 가져봅니다.



지상요새 아래는 일명 <해양공원>, 블라디보스톡 사람들의 휴식공간이지요.




저 멀리 대관람차도 보이고 ~~



가까이엔 외뿔 달린 유니콘(?)도 있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들면 바다, 검푸른 바다,

구름 사이 헤집고 내려온 가느란 햇살은 바다를 향하다가 이내 어둠에 묻히고 맙니다.

김민기님의 노래 <친구>가 생각납니다.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이요 ~~"



그 바닷가에서 이 소녀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잠시 자유시간을 가진 후 우리는 다시 모여 이동,

케이블카 푸니쿨라를 타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케이블카'라기에 허공을 날으며 블라디보스톡 시내를 구경하나 했더니 그게 아닙니다.

로프에 매달린 전차 타고 잠시 올라 간 것이 전부, 전체 길이도 200m가 채 안됩니다.

* 푸니쿨라(Funicular) : 산악 기차. 밧줄의 힘으로 궤도를 오르내리는 산악 교통수단



올라온 김에 사진이나 몇 장 찍으려 했더니 빨리 가야한다고 가이드가 어찌나 성화를 해 대는지 겨우 요것 한 장 건지고 하산 ~~



막상 식당에 와보니 급할 것도 없는 데 왜 그렇게 설쳐댔는지 ~~

가이드 입엔 "빨리빨리~~"가 붙어서 떨어지질 않습니다.

단 한 군데 예외는 쇼핑센터, 이곳에서는 "시간 충분히 드릴테니 천천히 구경하세요"

여행 팟캐스트에서 유럽 전문 가이드가 그러더군요.

'해외여행이 얼만큼 재미있느냐 하는 것은 어떤 가이드를 만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야기가 잠시 옆길로 샜네, 다시 식당 이야기로 돌아가서,

저녁밥은 쌍팔년도 중동 노가다 시절, 바그다드에서 먹었던 쇠꼬챙이에 끼워 구운 양고기(돼지고기?), 일명 샤슬릭,

보기에는 그럴싸해보이지만 맛은 별로입니다. 차라리 길거리에서 흔히 먹는 케밥이 더 낫습니다. 



저녁을 먹고 나서 들른 곳은 이름하야 블라디보스톡 젊음의 거리 <아르바트 거리>,



그 중 한 건물 앞에 섰습니다.



생전 처음 들어본 이름,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라 이름 붙인 <최재형 선생>,

이 집은 1919년까지 님이 거주하셨던 집인데, 우린 잘 모르지만 약력을 찾아 보니 정말 대단했던 분입니다.

-. 함경북도 경원에서 노비의 아들로 태어나 연해주에서 거부가 된 후, 학교를 짓고 신문을 발행해 독립운동을 지원

-. 항일단체를 조직하고 비밀리에 무기를 공급

-. 1908년 연해주에서 구국운동단체 동의회를 결성, 최재형이 총장을 맡았으며, 안중근도 참여

-. 안중근은 이듬해 동지 11명과 함께 왼손 넷째 손가락을 끊어 태극기에 혈서를 쓰며 '단지동맹'을 함

-. 이들은 최재형 지원으로 훈련을 받았으며, 안중근이 사격 연습을 한 곳도 최재형 집이었음.

-. 거사 후, 최재형은 변호사를 선임해 안중근을 살리려 했으나 재판이 러시아에서 일본 법정으로 넘어가 뜻을 이루지 못했음

-. 일본군은 1920년 4월 4일 밤 연해주 일대 고려인 밀집 지역을 습격함(4월참변)

-. 최재형은 집에서 멀지 않은 왕바실재 언덕에서 체포되어 이튿날 처형당함



한 번 더 묵념하고,

아르바트 거리를 걸어서 쭉 내려가면 분수대가 나오고 ~~



그 옆에선 젊음의 공연이 한창입니다.

아마도 아마추어 경연대회 같은데, 내 귀에는 오로지 소음으로만 들리고 귀마저 따갑습니다.

아빠 품에 안기고 무등을 탄 요녀석들은 뭘 알고 보는걸까, 예술감각이 뛰어난 걸까???



블라디보스톡 시민들의 한가로운 저녁,

어떤 이들은 바닷가를 걷고 ~~



어떤 이들은 바닷가에 앉아있고 ~~



어떤 이들은 그 바다에서 뱃놀이를 하고 ~~



어떤 이는 그 바다 앞에서 멋진 포즈로 추억을 남깁니다.



그렇게 사람구경을 하다가 해양공원쪽으로 걸어 가는데 ~~



갑자기 삘리리 깨갱깽 풍악소리가 들립니다,

이게 뭔 소린가, 뒤를 돌아보니 연주하고 춤추는 이들이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아내에게 손을 내밉니다.

주저할 줄 알았는데 아내는 선뜻 그 손을 잡고 그들과 함께 합니다.

장단에 맞춰 밀었다 당겼다, 손 잡았다 팔짱 끼었다, 혼자 돌다가 둘이 같이 돌다가,

마치 뱃속에서부터 러시아 무용을 배우고 나온 듯, 애초부터 그들과 한 패거리였던 듯,

전혀 어색하지 않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한 손에 들고 있는 빈 생수병마저도 소품으로 둔갑시켰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아내에게 이런 면이 숨어있을 줄이야,

30여 년을 같이 살았는데 이런 재능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번 여행이 아니면 평생 모르고 지낼 뻔 했던 새로운 발견,

이것으로 이번 여행의 나머니 본전 절반을 건졌습니다.



분위기에 취했는 지 기분이 한껏 오른 아내는 타이타닉호에 올라 '케이트 윈슬렛'이 되고  ~~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블라디보스톡의 밤에 녹아드는 동안 ~~



시간은 자꾸 흘러 다시 모여야 할 때가 되어갑니다.

처음 헤어졌던 곳으로 가던 도중 예쁜 성당이 있어 한 컷, <이고르 체르니코프스키 성당>입니다.

러시아 정교회 성인 중 한 명인 이고르 체르니고프스키와 데살로니카의 거룩한 순교자 드미트리우스에게 바쳐진 성당이며,

그 앞에는 양 팔을 벌린 어머니 상이 있는데, 정의를 지키다 죽음을 맞이한 용감한 군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다 합니다.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상품의 공식 일정은 저녁식사를 마치는 것까지,

그리고 나서 공항에 데려다 주는 것으로 마감하는데, 비행기는 새벽 4시 반에야 뜹니다.

그럼 공항에 앉아 빈둥거리며 8시간 정도를 보내야 하는데 어찌해야 좋을까,

갑론을박 끝에 택한 것이 야간투어입니다.

물론 공짜는 아니지요, 1인당 50$ 곱하기 16명 하면 800불,

우리 돈으로 100여 만원을 더 내고 옵션 투어를 신청했더니 그 때부터 가이드가 많이 상냥해졌습니다.

이제부터는 야간 투어 시작,




맨 처음 우릴 안내한 곳은 <아르세니예프 국립연해주 박물관>,

창문 너머로 보이는 이것들이 발해의 유물들이랍니다.

가이드 왈, 입장료가 2만원, 우와 엄청 비싸구나 ~~


근데 자료를 찾아보니 그게 아니네요, 아래 사항들을 참고하세요.

-. 입장료는 400루불(8천원, 그래도 비싸다), 매표소에서 한국어 설명서를 무료로 제공함

-.100년이 훨씬 넘는, 극동 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박물관

-. 극동 지역의 자연과 동식물, 민속학, 고고학 관련 사료 40만 점 이상을 소장하고 있음

-. 선사 시대부터 근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연해주 지역의 다양한 역사를 살펴볼 수 있음

-. 아르세니예프 : 러시아 극동 출신의 여행 탐험가인 블라디미르 아르세니예프(Vladimir Arsenyev)의 이름



여기는 <연해변경주청>, 우리 말로 하면 도청쯤 되겠지요,

멋있어 보여 찍었는데 사진이 실물보다 못합니다.



그리고 낮에 보았던 것들을 다시 슬렁슬렁 둘러보다가 ~~





좀 멋져보이는 곳을 지나는데 설명해 주지 않으니 알 수가 있나,

인터넷을 찾아보니 여긴 굼백화점 뒷골목이랍니다.

관광객들에게 사진도 찍으라고 특별 포토존도 마련해 놓았는데, 우린 그냥 지나칩니다.


그렇게 하염없이 빨리빨리 걷기만 하다가 도착한 곳은 ~~



빨간 젖소가 문 앞을 지키고 있는 건물 ~~



그 지하로 내려가니 입구에서 우릴 반겨주는 이가 하는 말, "맛있게 많이 묵고 가세요 ~~"



미리 예약해 놓았는 지 구석에 우리만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어 ~~



마지막으로 한 번 포즈도 잡아보고 ~~



마지막으로 한 번 위하여도 외치고 ~~



부어라 마셔라 한참을 하다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기타 연주를 뒤로 하고 우린 밖으로 나왔습니다.



이제 밤이 깊어갑니다.

블라디보스톡과 헤어질 시간이 다 되어 갑니다.



버스에 올랐는데, 공항으로 가려다가 가이드가 마지막으로 인심 한 번 씁니다.

금각교 야경이 잘 나오는 마린스키 극장 앞마당에 올라 ~~



단체로 사진 한 방 찍고 ~~



공항으로 향하면서 2박 4일의 여행이 끝났습니다.



아베 쨔샤 때문에 대마도에서 블라디보스톡으로 바꾸어 돈이 몇 곱절이나 더 많이 드는 여행이었습니다.

2박 4일, 말이 4일이지 실제론 이틀도 다 안되는 짧은 일정인데, 그 중 하루 하고도 반나절은 비가 오는 궂은 날씨였습니다.

이틀 밤을 자는데, 하루는 싸구려호텔에서 또 하루는 중급 호텔에서 자야 하는 희한한 잠자리,

별 것이나 되는 양 엄청 선전했던 러시아 대게 마저도  빼빼 마르고 양도 부족한 냉동식품으로 차려진 맛도 없는 식사들,

어른이 물어도 대꾸도 안하고, 엄청 많이 아는 양 자기 자랑이나 하고, 맨날 빨리빨리만 외치는 경력 일천한 가이드,

모든 것이 조금씩 부족한 여행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부족한 것을 한 방에 덮어버리고 머릿속에 즐거움만 가득 채워준 커다란 보자기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친구라는 이름, 원앙회라는 모임, 부부가 함께 한 시간들,

부족함은 사라지고 좋은 기억만 남아 다음을 또 기대해 봅니다, 7순 여행은 어디로 갈까?


하마트면 빼먹을 뻔 했네, 회장님 총무님 고생 많았습니다.

그리고 원앙 친구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