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빠씨바!", 시작부터 왜 욕지거리를 하냐구요? 그럴리가요, 나는 단지 "고맙습니다"라고 했을 뿐입니다.
'스키'와 '코프'와 '쵸프'가 난무하고 공손하게 웃으며 '씨바'를 퍼붓는 나라, 러시아 하고도 블라디보스톡에 왔습니다.
밤 11시 30분 인천공항 출발, 현지공항에 도착하니 새벽 2시 40분, 숙소에 들어가니 4시,
잠시 눈 좀 붙이고 세수하고 이빨 닦고 짐보따리 싸서 밖으로 나와 맨 처음 할 일은 출출한 배 채우기,
이름하야 조지아式 식사가 나오는 식당에 도착하니 기본으로 보드카 한 잔씩,
다함께 외칩니다, 우리 모두의 건강과 즐거운 여행을 "위하여!!!"
저녁먹다 얼렁뚱땅 의기투합하여 만든 고등학교 동창들의 부부모임 "원앙회",
모임의 회칙은 아주 간단합니다, 황혼 이혼 하는 사람은 무조건 강퇴!
학교 졸업한 지 40여 년, 초로의 개구쟁이들이 환갑줄에 들어섰다고 기념여행을 가기로 했지요,
말들이 많았지요, 홍도로 갈까요 북해도로 갈까요 차라리 대마도로 갑시다 ~~
모아놓은 회비가 너무 많아서(?) 이번 여행에서 펑펑 쓰기로 했는데,
신용등급이 우리보다 2단계나 낮은 일본에 보태주고자 대마도로 가서 펑펑 쓰기로 했는데,
글쎄 아베가 거부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힘들어도 강제징용자 후손들 돈은 절대로 받기 싫다나 어쩐다나,
원앙회가 가진건 돈밖에 없고, 다리에 힘 있을 때 그 돈 다 써야 하지 않겠나(요 대목은 거짓말 100%),
그래서 대안으로 고른 곳이 북해도 윗쪽에 위치한 블라디보스톡입니다, 여성 동무들도 미소 가득!
뭔 맛인지도 모르고 배를 채운 후 첫 번째 방문한 곳은 독수리 전망대,
독수리가 둥지를 틀었었는지 똥을 쌌었는지 모르지만 하여튼 '독수리'가 들어갑니다.
(가이드가 뭐라고 했겠지만 사진 찍느라 바빠서 못 들었고,
아마 독수리가 창공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블라디보스톡 전경을 잘 볼 수 있는 곳이라서 이런 이름을 붙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어라, 독수리만 사는 게 아니네, 원앙도 한쌍 보입니다.
정상까지 그리 멀지 않은 짧은 길인데 ~~
또 다른 원앙 한 쌍이 있어요, 근데 참 나,
두 사람 자세 좀 보세요, 우산을 하나만 갖고 온 이유가 다 따로 있다니까 ~~
가이드가 뭐라 뭐라 설명하며 가르키는 곳은 ~~
블라디보스톡에서 엄청 유명한 금각교,
풍경은 멋질 것 같은데, 아베의 눈물이 빗물이 되어 앞을 가리니 제대로 보일리가 만무합니다.
살짝 뽀샵처리하니 좀 낫지요?
비는 점점 더 세차게 내립니다.
서둘러 내려가다가 못내 아쉬워 뒤를 돌아보니 십자가 상이 보여 찰칵,
무슨 십자가인가 찾아봤더니 러시아 문자(키릴 문자)를 만든 키릴 형제의 동상이랍니다.
* 키릴 문자 : 러시아어를 비롯한 옛 소련의 언어들, 불가리아어·세르비아어를 표기하는 데 널리 사용된 문자
슬라브족에게 파견된 그리스의 두 형제(성 키릴로스 & 성 메토디오스)가 만든 것으로 여겨짐
다시 버스에 오른 우리는 남으로 남으로, 루스키섬에 들어가서도 남으로 남으로 내려갑니다.
가는 길 왼편에 위치한 극동 연방 대학교는 슬쩍 곁눈으로만 감상하고,
대학로(Universitetskiy Prospeckt) 끝까지 갔다가 빙 돌아 올라와 도착한 곳은 프리모르스키 아쿠아리움,
고기들이 뛰노는 곳은 아그들이나 가는 곳이라 알고 있었는데 내가 이곳에 오게 될 줄이야,
여행 일정에 들어있고 따로 돈 내지 않으니 오기는 왔는데 ~~
안에 들어가니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러시아 사람들 가득 ~~
그 중 하이라이트는 돌고래 쇼인데 ~~
시작하기 전, 원앙들이 잠시 짬을 내어 웃음 보따리를 풀어놓습니다.
이만하면 돌고래들도 긴장이 풀렸겠지요 ~~
아니지, 조련사들도 긴장을 풀어야지 ~~
이제 쇼를 시작합니다, 다 보여드릴 수는 없고 몇 컷만 보여드리는데, 정말로 엄청 잘해유 ~~,
웃음 보따리로 긴장을 푼 덕분이라 굳게 믿습니다.
하얀 녀석은 조련사를 머리에 이고 조심조심 헤엄치고 ~~
까만 녀석들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펄쩍 뛰어오르기도 하고 ~~
뭍으로 올라와 재롱을 피우다가 ~~
다시 들어가 지루박도 추고 탱고도 추고 왈츠도 춥니다.
요녀석은 이름을 뭐라고 했는데 까먹었네,
저 큰 몸집으로 뒤뚱뒤뚱하며 재롱을 피우는데 똥똥한 조련사와 똑 같습니다.
그렇게 입 벌리고 구경하며 박수치고 감탄하다 보니 30분이 후딱 지나갑니다.
동물학대하는 걸 즐긴다고 너무 욕하진 마세요, 실제로 보니 너무 잘해 미안한 마음이 들 겨를이 없어요.
Anyhow, 마지막 자막은 이렇게 나옵니다, 우리 글은 있지만 왜놈 글은 없어요.
"큰 박수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만나길 기대합니다!"
그냥 가나 했더니 30분쯤 더 둘러보아도 괜찮겠다는 가이드의 말,
옳지, 잘 됐다, 한 번 더 보러 가자.
지구가 만들어지고 10억년쯤 지나서(35억 년 전), 바다에 산소를 배출하는 생물이 나타났습니다.
시아노박테리아(Cyanobacteria), 이들이 만든 산소가 있었기에 수많은 생물이 살아갈 수 있었답니다.
그것들이 군집을 이루고 켜켜이 쌓여 만든 것이 스트로마톨라이트(Stromatolite),
호주 북서부 해안에 가면 지금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지난 겨울, 호주 여행 일정을 짤 적에 호주에 사는 동생에게 물었지요,
"서부의 샤크만(Shark Bay)까지 차 몰고 가자, 가서 스트로마톨라이트를 보자 ~~"
동생 왈, "오빠는 속이 하나도 없어, 비행기로 가도 6시간 이상 걸려, 호주가 경기도만 한 줄 아나 봐"
그것들을 맨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는데, 그 원을 여기와서 이루다니 ~~
삼엽충 연구의 대가 최덕근 교수는 대학졸업 40주년 기념으로 동기들과 함께 부부동반 여행을 떠납니다.
행선지는 강원도 영월, 목적은 삼엽충 탐사,
부러웠습니다, 나도 한 번 그런 곳에 가서 망치로 툭툭 두들겨 화석을 찾아내는 짜릿함을 느껴보고 싶은데,
뭘 알아야 보이고, 보여야 찾고, 찾아야 즐길 수 있는데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것이 나의 현실,
하다 못해 실물이라도 한 번 보았으면 했는데 여기 와서 그 화석들을 만납니다, 감격 + 감격!
흔히들 캄브리아기 대폭발이라고 하지요, 화산이 폭발한 게 아니라 동물이 종이 갑자기 늘어서 대폭발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5억 4,100만 년 전, 그 때까지 지구상의 동물은 2개 문(門, plylum) 밖에 없었는데, 5,600만 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39개 문으로 늘어났습니다.
왜 갑자기 동물의 종류가 늘었났느냐, 바로 눈이 생겼기 때문인데 그 시초가 삼엽충이랍니다.
어때요, 감탄이 절로 나오지요?
원래 동물들은 바닷속에서만 살았는데, 시간이 지나자 육지로 올라옵니다.
어떻게 올라올 수 있었을까, 바로 다리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다리가 있고 발이 있고 발가락이 달린 물고기,
이들이 있어 육상동물이 있고 포유류가 있고 우리 인류가 탄생할 수 있었다,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유리 안쪽에 있어 흐리지만 찬찬히 보세요, 다리 네 개가 보일겁니다.
생각지도 않고 왔는데 이런 행운을 만날 줄이야, 이것으로 난 이번 여행의 본전 절반은 건졌습니다.
공룡에 놀라고 ~~
돌고래에 물린 아내를 가까스로 구출하여 밖으로 나왔는데 ~~
아직도 비는 계속 내립니다, 아베는 계속 슬퍼하고 있습니다.
종종 걸음으로 버스로 향하는데 누군가 외칩니다, "여우다!"
백여우라 할까요, 불여우라 할까요, 차라리 구미호라 합시다 ~~
야생 여우를 만나는 흔치 않은 기회까지 챙기고, 우린 다시 블라디보스톡으로 향합니다.
생김새가 유럽 건물들과 약간 다르다는 느낌이 들지 않나요?
여기는 영화 <왕과 나>의 주연배우 율 브린너 생가 ~~
가이드가 열심히 설명했는데 난 하나도 안 듣고 ~~
대신 요 사진 하나 건졌습니다.
아내의 기록에 의하면 이것이 '율 브리너 동상'이라는데 별로 안 닮은 것 같습니다.
하여튼 가이드 시키는 대로 포즈를 잡고 단체 사진 한 장!
어부인들도 똑같이 폼 잡고 단체 사진 한 장!
이제 저녁 먹으러 갑니다.
킹크랩을 준다기에 푸짐하게 먹는 줄 알고 사흘이나 뱃속을 비웠는데 계산착오,
러시아 식당인 줄 알았는데 김치와 찌게가 나오는 한식당이고, 생물인 줄 알았는데 냉동한 것이라 살이 빼빼 말랐고,
양은 충분할 것이라는 가이드의 말 마저도 거짓으로 드러나 추가로 더 시켜서야 겨우 속을 달랠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총무님이 수퍼에 들러 이것저것 사서 양 손 가득 들고 숙소로 향했습니다.
그냥 잘 수 있나, 모두 다 한 방에 모였지요, 보드카에 맥주에 한국에서 가져온 소주까지 곁들여 '위하여!'를 외치고,
아베와 불매운동과 동북아 정세에 관한 토론회를 벌였습니다.
여기까지하고 그만 끝냈으면 좋았는데, 글쎄 질 나쁜 주당들이 꼬시는(?) 바람에 1층 바에 가서 데낄라를 마셨는데,
얼마나 많이 마셨는 지 기억마저도 안 납니다, 금년 들어 두 번째 절주 약속 위반,
두 번 다 같은 사람이 옆에 있었는데 이름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친구를 잘 사귀자!
또 한 가지 숨은 이야기,
술도 안 마시고 다른 사람 방에 가서 자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그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겠다,
술에 취해 방을 못 찾고 로비에서 잠들었던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그도 누구인지 밝히지 않겠다,
이 모든 것을 비밀로 묻어두고 블라디보스톡에서의 첫날 이야기는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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