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기장

세월이 간다고 세월호를 잊을 수 있을까?

상원통사 2014. 4. 28. 23:13

‘여러분, 움직이면 위험하니 제자리에 앉아 계시기 바랍니다!’ 라는 안내방송이 나왔을 것이다.

‘너희들 움직이지 말고 제자리에 앉아 있어라!’ 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계셨을 것이다.

앉아있는 바닥이 점점 벽으로 변하기에 두렵기는 하지만, 그래도 시키는 대로 제자리를 꼭 지키고 있었을 것이다.

문틈 사이로 바닷물이 들어오고 그 물이 허리를 넘고 키를 넘자,

힘들어 두 손 꼭 쥐고, 두 눈 꼭 감고, 서서히 서서히 의식이 흐려졌을 것이다.

 

인천항을 출발할 때는 분명히 키를 잡았을 것이다.

넓은 바다에 나오자 ‘제주항에 도착하면 깨워라!’ 라는 말과 함께, 아래 것에게 키를 넘기고 선장실로 향했을 것이다.

‘항상 다니던 길인 데 무슨 일 있겠나, 오늘 하루 땜빵용 선장인 데 적당히 하고 일당이나 챙기자.’

라고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깊은 곳에 이런 생각이 있었으리라.

 

평상시와는 달리 배가 많이 기울었음을 느꼈을 것이다.

선장에게 이야기해 봐도 별다른 지침도 없고, 동료들과 이야기해 봐도 뾰쪽한 수도 없었을 것이다.

붙잡고 서있기조차 힘이 들 게 되자, 시험 치룰 때 외웠던 선원수칙 같은 것은 떠오르지도 않고,

우선 나부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앞섰을 것이다.

 

배가 뒤집혔지만 승객은 전원 구출했다는 소식을 슬쩍 흘려듣고서, 불행 중 다행이라 생각하고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다.

퇴근 무렵 들려온 소식은 정반대인지라, 내가 잘못들었거나 오보이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300여명이 사망 또는 실종이고, 그 대부분이 수학여행 가는 학생이라는 것은 사실이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가관이었다. 어이가 없고,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뉴스 보는 것 자체가 점점 나를 힘들게 했다.

애써 채널을 다른 곳에 돌렸다가도 궁금해서 다시 보고, 속 뒤집어져서 꺼버렸다가도 틀어서 다시 보고...

그리곤, 스스로 무기력증에 빠져버렸다.

퇴근하여 집에 오면, 아무 생각 없이 시간만 보냈다.

무엇을 해야 할 지,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 지, 누구를 원망해야 할 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아, 그냥 멍하니 TV 채널만 돌리다가 잠들곤 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많은 우리 국민들이 나처럼 힘들어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무기력해지고, 대한민국이 우울증에 빠져 버렸다.

 

아직도 113명은 생사조차 모르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매스컴은 오랜만에 대목 만났다.

실종자 가족은 한낱 취재원이고, 팍팍 튀는 제목 고르기에 바빴다.

대책본부가 세워졌지만, 누가 어떻게 지휘할 줄도 모르고, 누가 누구한테 보고할 줄도 모르고 허둥대기만 했다.

검찰은 선주 아들 딸까지 호출하고 있고, 대통령은 얼굴만 빼꼼히 내밀었다가 사라지면서 전부 네 탓이란다.

그 통에 빨갱이 타령을 하지 않나, 홍어 이야기를 하지 않나, 노란나비가 사탄이라고 하지를 않나...

 

앞으로는 어떻게 진행될까?

매스컴은 보험금 얼마씩 나간다고 돈타령 하며 마무리 할 것이고,

정치인들은 지방선거에 십분 이용해먹다가 당선되고 나면 눈감을 것이고,

우리들은 바쁜 일상생활에 치여 까마득한 옛날 일로 묻어버릴 것이지만,

가족들의 가슴에 남은 상처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도 전방위적으로 잘못된 근본적인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

선장은 배를 버리고 누구보다 먼저 배에서 내리고,

선원들은 승객구조보다 제 목숨 건지기에 바쁘고,

선주는 안전보다는 돈만 앞세웠다고 하나씩 증거가 나오기 시작하고,

세월호를 다시 추적해보니 그간 사고 안 나고 운행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고,

선박과 관련된 무슨무슨 협회들은 모두 다 이렇게 저렇게 엮여있어 제 구실을 안 하고,

대통령은 노발대발하여 본인을 제외한 관련자들을 문책하겠다고 하고,

총리는 이 시국에 사표나 제출하고,

정치가들은 슬금슬금 빨갱이 타령이나 하고,

해경은 해경대로, 해군은 해군대로, 관제센터는 관제센터대로....

 

어느 한 구석 온전한 곳이 없이 철저히 모두 다 이상해져버린 이 나라는 과연 무엇이 잘못되어서 그럴까?

도대체 왜 이런 참사가 반복되는 것일까?

근원적으로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터질 때마다 대책을 세워도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걸까?

 

지지리도 가난하게, 너무도 가난하게 살아왔었다.

그나마 남의 나라에 송두리째 바치고 고생하다가,

집안 싸움하느라 있는 것마저도 모두 불태웠었다.

먹고 산다는 것 자체가, 보리고개 넘기는 그 자체가 크나큰 문제였었다.

그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을 극복하는 동안 원칙이 아닌 것들도 통용되었다.

상식이 아닌 것들도 적당히 넘어갈 수 있었다.

단지 배곯는 것을 극복하기 위해 모든 것이 용서되었다.

그러나 그것들이 당연한 진리인양 우리를 감싸버렸다.

 

이젠 그 힘든 시기를 벗어났지만, 아직도 굶주림의 관성이 작용하고 있다.

내 새끼만 잘되면 그 뿐, 학교도 필요 없고 친구도 필요 없고,

내 회사만 잘되면 그 뿐, 중소기업 협력업체 쯤은 모두 짓밟아도 괜찮고,

내 월급 올라가면 그 뿐, 비정규직 외국인은 사람도 아니고,

내 주머니 두둑하면 그 뿐, 법도 원칙도 뇌물 앞에선 맥을 못추고 있고,

내 정당만 잘되면 그 뿐, 온갖 욕설 험담 다 하고 지역감정 부추기고 있고,

내 나라만 잘되면 그 뿐, 굶고 있는 같은 민족쯤은 거지도당으로 취급하고 있다.

지금 이 땅엔 돈 맛에 취한 상놈이 저지를 수 있는 모든 것이 다 저질러지고 있다.

 

각국의 중산층의 기준을 찾아보았다.

* 한국의 중산층 기준 (직장인 대상 설문 조사)

1. 부채없는 아파트 30평 이상 소유

2. 월 급여 500만원 이상

3. 자동차는 2,000 CC급 중형차 소유

4. 예금액 잔고 1억원이상 보유

5. 해외여행 1년에 한차례 이상 다닐 것.

 

* 미국의 중산층 기준 (공립학교에서 가르치는 중산층의 기준)

1. 자신의 주장에 떳떳하고

2. 사회적인 약자를 도와야하며

3. 부정과 불법에 저항하는 것

4. 테이블 위에 정기적으로 받아보는 비평지가 놓여있을 것

 

* 영국의 중산층 기준 (옥스포드대에서 제시한 중산층의 기준)

1. 페어플레이를 할 것

2. 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가질 것

3. 독선적으로 행동하지 말 것

4.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대응할 것

5. 불의, 불평, 불법에 의연히 대처할 것

 

* 프랑스의 중산층 기준 (퐁피두 대통령이 '삶의 질'에서 정한 중산층 기준)

1. 외국어를 하나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고

2. 직접 즐기는 스포츠가 있어야 하고

3.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어야 하며

4. 남들과는 다른 맛을 낼 수 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어야 하고

5. '공분'에 의연히 참여할 것

6. 약자를 도우며 봉사활동을 꾸준히 할 것

 

선진 각국들이라 해서 처음부터 그렇게 고상하지는 않았으리라,

그들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으며, 무수한 피를 흘리고서야 지금에 왔으리라.

 

우리나라?

그렇게 미개한 민족도 아니고, 염치도 없고 체면도 없는 그런 민족은 아니다.

잠시 배고파서 눈이 뒤집혔을 뿐, 지구상 누구보다 훌륭한 자질을 갖고 있는 민족이다.

이만큼이라도 버틸 수 있는 건, 우리 모두에게 남아있는 그 48% 때문이리라.

 

이제 좀 변했으면 좋겠다.

이만하면 배고픔에서도 벗어났으니, 돈타령은 그만하고 사람사는 세상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사회를 위해, 우리 모두가 3%씩만 변했으면 좋겠다.

 

너 하는 것은 다 틀렸고, 나 하는 것은 다 맞다고 하지 말고,

너는 법대로 해야 되고, 나는 조금씩 안 지켜도 된다고 하지 말고,

너는 꼭 양보해야 되고, 나는 챙겨도 괜찮다고 하지 말고,

 

어른은 어른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부자는 부자대로 가난한 자는 가난한 대로, 진보는 진보대로 보수는 보수대로,

우리 모두가 3%씩만 변하고, 변한 우리가 사회의 주류가 된다면,

무리한 구조변경도 없어질 것이고,

무리한 화물 선적도 하지 않을 것이고,

학생들 버리고 선장이 배에서 도망가지도 않을 것이고,

아래 것에게만 책임을 묻는 대통령도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

 

*********

 

세월호 참사라....

있을 수도 없는 너무나도 안타까운 사고입니다.

세상을 달리한 이들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다시 한 번 빌어봅니다.

얼굴이라도 알아볼 수 있을 때, 남은 113명 모두 다 수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운명을 달리한 분들 모두 다 좋은 세상에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우리들에겐,

이 슬픔이 슬픔으로만 끝나지 않고, 우리가 바뀌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자신도 이제는 무기력증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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