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만위 순교자 현양동산'에서의 여운이 채 가시지도 않은 채,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643'에 있는 강화성당에 도착했습니다.
"~~ 고려궁지 밖에는 조선시대 해상경비를 맡았던 군영이자,
교우들을 끌어내다 참수했던 처형지인 진무영(鎭撫營)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
또 일부 주민들이 그 위치를 증언하기도 하지만 아직 정확한 고증에 의해 확인되지는 않고 있다.
다만 연구 결과 강화 성당 근처로 추정되고 있다."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에서
<강화성당에 도착하여 사방을 둘러봐도 성지 비스무레한 것조차도 없습니다.
물어보니 성당 아랫쪽을 가르킵니다. 바로 이곳입니다.>
<이곳이 순교성지라고 알려주는 것은 달랑 이 안내문 하나뿐입니다>
<사실 그 때 당시엔 숨어서 믿는 종교였기에,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은 게 정상이겠지요.
안타까움에 성모님 마음도 까맣게 타서 이렇게 변하신 것 아닐까요??>
<지금이니깐 드러내어도 거리낌이 없지요>
<뒷마당에 아무렇게나 널린 돌들에서,
목잘리어 나뒹구는 시신이 연상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요>
<텅 빈 곳에서,
비어있음으로 가슴을 채우고,
우린 강화성당으로 향합니다>
<계단을 오르면...>
<성당이 보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보지 못한 나눔의 증거,
예수님께서 보시면 정말 좋아하실 겁니다.>
이제 우린 성당 윗편에 위치한 고려궁지로 향합니다.
"강화성당 윗쪽으로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고려가 몽골의 침략에 항전하던 39년간의 궁궐터가 있다.
~~ 관청리 형방은 왕족의 세례 및 순교사건과 관련하여 철종의 좁주인 은언군이 처형된 곳이며,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이곳 동헌과 형방에서 천주교인들에 대한 극심한 고문이 자행됐다고 한다."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에서
<천주교인에게는 순교의 슬픈 역사터이지만,
우리 민족에게도 누대에 걸쳐 아픈 역사가 남아있는 곳입니다.
고려궁지(高麗宮址)
지키는 사람은 없지만 모두가 입장권을 끊어서 들어갑니다.>
"고려시대에는 이곳에 고려궁궐이 있었다.
고려가 몽골군의 침략을 피해 1232년 강화도로 천도한 이후
최우(崔瑀)는 2,000명의 군사를 동원하여 이곳에 왕궁을 건립하였다.
규모는 작으나 궁궐과 관아의 명칭을 개경과 같게 하고 뒤산의 이름도 송악이라 하였다.
이후 대몽항쟁기 39년간 고려 왕궁으로 사용하다가 몽골과의 화친 후 고려왕이 개성으로 환도하게 되자(1270),
몽골의 요구에 따라 궁궐과 성곽을 모두 파괴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에 행궁, 유수부 건물과 함께 민가까지 들어서면서 고려시대 궁궐의 모습이 사라졌다.
현재의 고려궁지는 고려시대 궁궐의 영역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본래는 동서남북으로 뻗어나간 대규모 공간이었다."
강화동종
"조선시대 강화성문을 여는 시간과 닫히는 시간을 알리는 데 사용하였던 종으로
높이가 198cm, 밑지름이 138cm, 두께가 15cm이다.
1999년 10월 종에 균열이 생겨 더이상 타종하지 못하게 되자 강화동종을 복제하여 설치하고,
원래의 종은 강화역사박물관으로 옮겨 보관 전시하고 있다."
외규장각(外奎章閣)
"여러차례의 전란으로 강화도가 보장지처(保障之處)로 크게 주목받게 되고
국왕과 왕실 기록물의 중요성이 강조됨에 따라 1782년(정조6)에 건립하였다.
왕립 도서관 역할을 하였으며, 왕실과 국가 주요 행사의 내용을 정리한 의궤 등의 서적과 왕실물품을 보관하였다.
병인양요(1866) 때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습격하면서 외규장각과 여러 건물들을 파괴하여 서적을 약탈하였다.
1995년 부터 2001년에 걸친 발굴조사를 통해 2003년에 건물을 복원하였다."
의궤(儀軌)
"국가 의례 및 왕실행사 전반에 관한 사항을 준비단계부터 사후처리까지 자세하게 기록해 놓은 책.
병인양요(1866년) 때 프랑스군이 1,000여권의 서적 중 297권의 의궤서적을 약탈하고, 나머지는 불태워 없애버림.
2011년 6월 11일 145년 만에 의궤 귀환 완료(5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는 임대형식으로 대여함)"
<슬픈 역사 = 울화통 = 홧병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있음>
<외규장각 뒷편의 고려궁지 발굴터>
<발굴터에서 내려다 본 강화도 읍내 전경.
오른쪽이 복원된 외규장각.
여기서 '로동10호'를 쏴서 에펠탑으로 보낸다는 상상같은 것은 절대로 하지 마십시요!!!>
강화유수부동헌
"조선시대 관아의 건물로서 강화지방의 중심 업무를 보던 동헌으로 오늘날의 군청과 같다."
<서학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잡아다가,
뒈지게 패고, 지지고, 볶았던 곳으로 추정함>
<그러나 지금은 휴식터가 되었습니다.>
<그 때 고문의 현장도 지켜보았을 이 나무가
여러 갈래인 것은,
슬픔으로 갈기갈기 찟긴 마음의 표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곳은
순교의 잔영과
왕조를 이어 내려온 슬픈 역사가 울분을 자아내는
마음이 짠한 곳입니다.
다음 목적지인 갑곶으로 가기 전에 밥이나 먹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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