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날엔 꼼짝도 않고 틀어박혀 있다가, 오랫만에 나들이 했습니다.
금년 들어 첫 나들이는 성지순례입니다.
오늘은 서울에 있는 성지들 중 아직 방문하지 못한 세 군데를 돌아보는 것으로 정했습니다.
11시에 수지를 출발하여 절두산 순교성지 - 옛 용산신학교 성당 - 삼성산 성지를 둘러보는 게 오늘의 일정입니다.
합하여 아홉 번째 성지순례입니다.
한강북로를 따라 쭉 올라가다가, 한강 시민공원 망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올라갔습니다. 휴일이라 주차요금은 공짜!!
이 일대는 조선시대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던 양화나루터가 있는 곳입니다. 지금은 지하철 2호선 철교가 놓여있네요.
옛 이름 잠두봉은 양화나루 옆에 솟아있는 20m 높이의 암벽으로 지금은 절두산으로 불립니다.
"절두산(切頭山)은 예로부터 가을두(加乙頭), 잠두봉(蠶頭峰), 용두봉(龍頭峰) 등으로 불리어 왔다.
1886년 프랑스 함대가 양화진을 통과해 서울 근교까지 침범해오자
대원군은 서양 오랑캐들로 더렵혀진 한강을 천주교인들의 피로 씻겠다며
이곳에서 수많은 교인들의 목을 잘라 죽이게 되는 데(병인박해)
그 때부터 이곳의 지명을 절두산이라 부르게 됐다."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에서
<잠두봉 절벽 위에 세워진 성당>
<강변에서 올라가다 보면 맨 처음으로 보이는 곳이 순교자 기념탑입니다.>
<가운데 큰 탑>
<왼편의 탑.
무명인이 조각되어있는 것이 이채롭습니다.
사실, 그 당시 순교자들 중에 이름이 남겨진 사람들보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분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어느 역사에서나 마찬가지이듯이, 민초들은 이름을 남기지 않았지요. 그냥 사라질 뿐입니다.
그래도, 이분들은 하느님의 품에 돌아간다는 생각을 갖고 죽음에 임하였으니,
정권이나 전쟁의 희생자들 보다는 조금 더 낫다고 하면 억지일까요???
신심을 갖는다는 것은 좋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른편의 탑.
잘린 머리에, 튀어나온 눈알로 보입니다. 무섭습니다.>
<그 옆에는 제단이 있습니다.
뒷편 철망에 걸린 열 두 십자가들이 뭔가 의미하기는 하는 데...>
<팔마를 든 예수상
죽음으로써 믿음을 증언한 순교자들이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갔음을 상징하는 팔마를 손에 들고있는 예수 그리스도상>
<한국인 첫 번째 주교 노기남 대주교 기념관
원래는 예약을 해야 들어가는 곳인 데, 우린 다른 순례자들 틈에 끼어 슬쩍 들어갔습니다>
<노기남 대주교님 상
유리 안에 있어 화질이 좋지 않아요. 이해바랍니다.>
<생전에 사용하시던 포니1 자동차.
현존하는 포니 중에 상태가 양호한 차 중의 한 대랍니다.>
<기념관 반대편에 위치한 형구형틀 체험관
사람을 묶어놓고 곤장을 치는 십자형틀이 놓여져 있습니다>
<이런 감옥 안에서 목에 칼을 차고 지냈겠지요.
그 당시에 하느님을 믿은 게 죄인가? 아니지요.
지금 부처님을 믿는 게 죄인가? 단군님을 믿는 게 죄인가?
죄라는 사람들도 있으니, 우매하기는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불에 달궈진 인두
이 인두로 생살을 지지면, 냄새와 연기와 소리와 비명과....
생각만해도 끔찍합니다.>
<이 의자에 앉혀놓고 주리를 틀었을 것이고요>
<왼편의 구멍 두개짜리가 손에 채우는 '추(나무수갑)',
가운데 네모 구멍이 많이 난 것이 발목에 채우는 '차꼬',
오른쪽이 엉덩이 때리는 '곤'>
<이곳 절두산 성지는 단체 순례객들이 참 많이 오더군요. 조금 늦었으면 사진찍기도 힘들었을 겁니다.>
<기념관 앞에 있는 형구돌(形具石)
병인박해 때 흥선대원군의 지시로 천주교 신자들에게 교수형을 집행하기 위하여 고안된 잔혹한 형구.
어떻게 사용하는 것인지? 밧줄을 목에 걸고 뒤에서 당긴다?? 잘 상상이 안갑니다.>
<한국의 첫 번째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상>
<성모 동굴>
<성모 동굴 앞에는 초를 봉헌하는 곳이 있습니다.
아내가 그냥 지나칠리가 없죠>
<한강을 등지고 앉아계신 성 김대건 신부 좌상>
<척화비(斥和碑)
1871년(고종8) 흥선대원군이 서양인을 배척하기 위하여 세운 비석.
이 비에는
"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 데 싸우지 않으면 화해할 수밖에 없고,
화해를 주장하면 나라를 파는 것이 된다.
우리의 만대자손에게 경고하노라.
병인년에 짓고 신미년에 세우다"라는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오성바위(五聖石)
다섯 성인들이 잠시 쉬어 갔다는 일화가 전해지는 바위.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의 다블뤼 주교와 위앵 신부, 오메르트 신부, 황석두, 장주기 등은
처형지인 갈매못으로 끌려가는 도중에 그 길목인 내포 땅, 아산군 음봉면 길가의 이 넓적한 바위에 앉아서 신앙을 다짐했다고 한다.
'복자 바위'라고 부르다가 1984년 다섯 분 모두 성인품에 오른 후 '오성바위'라고 고쳐 부르고 있다.>
<문지방돌(門地枋石)
조선교구 제5대 교구장 다블뤼 주교는 1845년 김대건 신부와 함께 입국한 이후 충청도 합덕의 신리에 있는 교우촌에 머물렀는 데,
이 문지방돌은 당시 마련된 임시거처에 있던 것이다.>
<복자 교황 요한바오로 2세의 흉상. 한국방문 기념>
<영광의 돌기둥
높이 2.25m, 둘레 1.8m의 검은 돌기둥 앞면에는 '영광'이란 글자를,
뒷면에는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와 '주는 찬미 받으소서'라는 기도문을 십자 모양으로 새겨 넣었다.
상단에 새겨진 가시관과 왕관은 고통과 죽음을 통해 이룬 순교자들의 영광을 상징한다.>
기왕 새길 것이면 좀 선명하게 하실 것이지, 눈여겨 보지 않으면 글자도 잘 안보입니다.
<절두산 성지에서 처형된 첫 순교자 가족상>
<성모상>
<뒤로 돌아가는 길을 따라 가면 기념비들이 나옵니다.
남요한의 큰아버지 남상교의 청덕비와,
송마리아와 은언군 묘비,
천진암 주어사 터에서 발견된 해운당대사의 징지비,
그리고 아래에 소개하는 비와 흉상이 있습니다.
잘못하면 놓칩니다.>
<한국천주교회의 증언자 박순집 베드로의 묘와 일가족 16위 순교자 현양비>
<남종상 세례자요한의 흉상>
<이제 성당으로 올라가야죠.
앞에 보이는 건물은 박물관입니다.>
<성당 올라가는 길>
<성당 입구의 문도 멋집니다.>
<오른쪽의 절두산 기념석과 계단과 소나무와 박물관 건물이 어울어져 멋져 보이기에 한 컷 담았습니다.
다시 보니 생각만큼 멋져보이지는 않는군요.>
<박물관앞 예수님 상>
<병인박해 100주년 기념성당 내부>
<성인 유해실
제대 오른편에는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기해박해 순교자 9위, 병오박해 순교자 1위, 병인박해 순교자 17위 등,
총 27위의 순교성인들과 1위의 무명 순교자의 유해가 모셔져 있습니다.>
생각보다 기념물도 많고, 순례자들도 많아서 시간을 많이 지체했습니다.
이젠 다음 순례지인 옛 용산 신학교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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