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성지순례

10. 매괴 성모 순례지

상원통사 2013. 4. 3. 21:49

오늘은 토요일, 날씨도 그런대로 풀리고 해서 어머니 모시고 아내와 함께 밖에 나왔습니다.

먼저 이천 호국원에 들러 아버님께 참배하고,

충북 음성군 감곡면 왕장리에 있는 매괴 성모 순례지로 향했습니다.

10차 성지순례는 이곳 한 군데만 들를 예정입니다.

 

시골의 조그마한 성당 쯤으로 생각하고 40분이면 족하겠다 싶었는 데,

여느 성당 못지않게 그 자태를 뽐내고,

어느 곳에도 없는 '묵주기도 20현의'도 있고,

산꼭대기까지 휘돌아 십자가의 길도 있어서, 돌아보는 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감곡성당이 처음부터 성모님께 봉헌되고 매괴성모순례성당이 된 사연

"감곡본당은 1896년 설립되어 115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초대 본당 신부였던 임 가밀로 신부는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으로 1893년 서품받은 후 바로 입국하여

 그 다음해인 1894년 첫 본당으로 유서 깊은 교우촌이자 신학당이 있었던 여주 부엉골에 부임하게 된다.

 하지만 본당 사목지가 북쪽 끝에 위치해 있을 뿐 아니라 산지 부락이어서 본당 이전을 생각하던 중

 장호원에 이르러 산 밑에 대궐 같은 집을 보고 이곳이 본당 사목지로서 가장 적합하다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그 즉시 임  가밀로 신부는

 "성모님, 만일 저 대궐같은 집과 산을 저의 소유로 주신다면 저는 당신의 비천한 종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 주보가 매괴 성모님이 되실 것입니다."라고 기도하였으며,

 부엉골로 돌아가서 매괴 성모님께 끊임없이 청하였다.

 당시 대궐같은 집은 명성황후의 육촌 오빠인 민응식의 집이었고

 1882년 임오군란 때 명성황후가 피신왔던 곳이기도 하다.

 성모님께 기도한 후부터 1년 4개월 만에 그리고 우연하게도 1896년 5월 성모 성월에

 그 모든 집터와 산을 매입, 묵주기도 성월인 10월 7일 본당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결국 임 가밀로 신부가 처음에 기도한대로 감곡본당을 성모님께 봉헌하여

 이곳이 감곡매괴성모순례성당이 된 것이다."                         - 감곡성당 안내문에서 -

 

<성당 전경.

  빙 돌면서 찍었습니다.>

 

 

 

 

 

 

 

<이곳엔 독특한 것이 여럿있습니다.

  성당을 미니어쳐한 작품도 그 중 하나입니다.>

 

 

<성당 내부 모습.

  사진이라곤 달랑 한 컷 밖에 없습니다.

  나 같으면 아무도 없으니 성당내부를 모두 찍었을 것인데,

  한 컷 찍고 나서야 촬영금지표지를 발견한 아내는 이내 사진찍기를 멈췄습니다.

  아내같은 사람들만 있다면 하느님도 무척 편하실 것입니다.

  멋진 성당같은 데, 난 들어가보지도 못했습니다.

  밖에서 십자가의 길을 돌고나니 시간이 부족하여, 서둘러 다음 목적지인 안성 남사당 기념관으로 향했으니까요.

 

  전면 한 가운데 성모님이 보이시죠? 사연이 있더군요.>

 

수난받은 매괴 성모님

"매괴 성모님은 루르드에서 제작하여 1930년 대성전 건립 당시 제대 중앙에 안치되었다.

 한국전쟁 때 성당은 인민군 사령부로 사용됐는데 인민군이 성당 안에서 여러가지 이상한 일을 겪자

 그 원인이 성모상이라 생각하고 총을 쏘았다.

 그러나 7발을 맞고도 성모상이 부서지지 않자 기관단총으로 사격을 했으나 총알이 피해갔다.

 그래서 성모님을 끌어내리려고 올라갔을 때 성모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려

 인민군들은 성모상을 건드릴 수 없었고 그때부터 성당에서 철수하였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부터는 이 성모상은 '칠고의 어머니' 또는 '매괴의 어머니'로 불렸으며

 성모님상 앞에서 또는 이콘 앞에서 기도하고 많은 이들이 외적 내적 치유를 받고 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신통력있는 성모님, 신통력있는 성당이란 이야기입니다.>

 

 

<성당밖에 있는 성모자상>

 

 

<그리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

 

 

<탁덕 임가밀로(Camille Bouillon 任加彌)신부상

  이곳 감곡성당에서 51년동안 사목하셨음> 

 

 

<이곳은 묵주기도 20현의, 성모광장, 산상 십자가의 길, 산상 십자가 등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 돌아보는 데도 꽤나 시간이 걸립니다. 길도 조금 가파르고요.>

 

 

<매괴 박물관

  어머니와 아내가 안에 들어가 구경하긴 했으나 촬영금지여서 사진이 없습니다.

  그냥 외관만 올립니다.

  난 역시나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곳은 커피파는 집도 멋지게 생겼습니다.>

 

 

<십자가의 길에서 내려오는 길에 임가밀로신부님의 묘가 있습니다.

  이곳은 매산 중턱으로 평소 신부님께서 눈여겨 보아두었던 자리로 사후 36년간 유해가 안장되어 있었으나

 1983년 유해를 현 성당 예수 성심상 제대 밑으로 이장하였기에 이곳에는 가묘만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생전에 임가밀로 신부님이 자주하시던 말씀이랍니다.>

 

 

'매괴'의 뜻

처음보는 단어이기에 인터넷을 찾아보았더니 이렇게 적혀있더군요. 덕분에 또한번 유식해졌습니다.

 

"가톨릭의 '묵주'라는 것을 보신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묵주기도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구슬을 꿰어 세면서 기도횟수를 센 전통,

 그리고 수도원에서 주님의 기도나 시편 성구들을 구슬을 꿰어 센 전통에서 발전하였고

 전승에 따르면 성모 마리아께서 선교에 어려움을 겪는 성 도미니코를 위해 묵주를 내려준 것에서 유래했다고 하는,

 가톨릭교회의 상징과도 같은 기도입니다.

 묵주기도를 할 때에는 주님의 기도와 함께 가장 보편적인 가톨릭교회의 기도문인

 성모송(聖母頌: Ave Maria)을 바치면서 묵주알을 돌리면서 횟수를 세게되는데,

 가톨릭 신자들은 묵주기도를 할 때에는 성모송 한 번을 바칠 때마다

 성모 마리아님을 위해 장미꽃 한 송이를 바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묵주기도 한 단을 바치면 성모송을 10번 바치게 되므로

 상징적으로 10송이로 된 장미 한 다발이 만들어지는 셈이 되지요.

 (이것이 결코 하느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긴다든가 하는 행위는 아닙니다.

 묵주기도는 하느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따님이자 예수님의 어머니,

 성령의 선택된 짝인 성모마리아와 "함께" 하느님께 기도드리는 것이 그 본질입니다.)

 그래서 묵주기도의 원어는 "로사리오(Rosario) 기도"라고 하는데 로사리오란 장미꽃다발이라는 뜻입니다.

 이 로사리오를 중국에서 번역한 중국식 한자어가 '매괴'입니다.

 매괴란 원래 해당화를 가리키는 말이고요.

 조선시대에 천주교를 들여올 때에 매괴라는 용어도 그대로 들여왔고,

 그래서 묵주를 '매괴', 묵주기도를 '매괴경'이라고 불렀습니다.

 지금은 물론 거의 쓰지 않는 말이지요.

 

 하지만 '매괴'라는 말이 천주교의 상징적인 단어처럼 남아있으므로

 가톨릭 재단에서 건립한 학교 이름 중에 '매괴초등학교' 같은 것도 있습니다.

 

 '로사리오의 여왕' 또는 '묵주기도의 모후'라는 말로 번역되는 칭호는 성모마리아의 여러 가지 호칭 중 하나인데,

 1884년 이탈리아 나폴리의 포르투나 아그렐리라는 소녀가 부른 이 호칭을 성모님이 맘에 들어하셔서

 그 소녀에게 발현하여 '묵주의 9일기도'를 가르쳐주신 것으로 전해집니다.

 

 특히 20세기 최고의 기적이라고 일컬어지는 "파티마 성모발현"에 대해 한 번 쯤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1917년부터 여러차례 포르투갈의 파티마에 성모님이 나타나셔서

 3만 명의 군중이 목격하고 3명의 어린이들이 예언을 전해 들은 사건입니다.

 성모님은 세계대전과 공산주의의 등장, 교회의 위기를 경고하며 묵주기도를 바치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때 성모님께서 스스로를 칭한 말씀이 역시 '나는 묵주기도의 모후(로사리오의 여왕)이다.'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