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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노무현' vs '바보 강금원'

상원통사 2012. 8. 22. 17:24

'바보 노무현 vs '바보' 강금원

입력시간 :2012.08.04 06:00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노무현은 ’바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바보 노무현‘으로 불린 것은 2000년 4월 13일 16대 총선에서 부산에 출마했다가 낙선했기 때문이다.

98년 서울 종로 보궐선거에서 당선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굳이 ’사지‘를 선택할 이유는 없었다.

주변에서도 모두 부산 출마를 말렸다.

부산이 한나라당의 텃밭이라는 점에서 당선 가능성 또한 희박했다. 그러나 노무현의 뜻은 확고했다.

지역주의 타파를 내세우며 부산 북·강서을에 출마했던 노무현은 선거 초반 대이변을 예고했다.

언론의 관심도 뜨거웠고 여론조사에서도 앞서나갔다.

강고했던 지역주의가 과연 무너질까. 투표함 뚜껑을 열어보니 이변은 없었다.

노무현은 아깝게 패하며 낙선했다. 부산 민심을 탓할 수도 있었다.

노무현은 달랐다. 그 유명한 낙선의 변을 남겼다.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

보통의 경우 총선 낙선자는 소리 소문 없이 잊혀진다.

노무현은 ’바보 노무현‘으로 불리며 당선자보다 더 유명한 화제의 낙선자가 됐다.

특히 그가 남긴 낙선의 변은 끊임없이 인구에 회자됐다.

전국적으로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열풍이 불었다.

3당 합당을 거부한 뒤 끊임없이 ’부산의 문‘을 두드려왔던 노무현의 진정성은 유권자들을 각성시켰다.

낙선 이후 노무현의 공식 홈페이지(www.knowhow.or.kr)에는 울분에 찬 격려의 글들이 쇄도했다.

’바보 노무현‘을 사랑했던 사람들이 2000년 6월 6일 대전에 모였다.

이들은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창립대회를 열었다.

노사모는 우리나라 최초의 자발적인 정치인 팬클럽이다.

2002년 대선에서 노풍의 진원지였던 노사모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이라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강금원은 ’바보 노무현‘을 사랑했던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이다.

고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은 전북 부안 출신으로 전주공고, 한양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했다.

1975년 서울에서 설립한 창신섬유를 1980년 부산으로 옮겨 자수성가했다.

호남 출신으로 부산에서 사업을 하며 각종 편견에 시달려왔던 강금원은

이른바 DJ당에서 부산에 도전하는 노무현과 의기투합했다.

이후 아무런 조건없이 적극 후원했다.

노무현이 98년 종로 보궐선거에 출마했을 때는 적잖은 후원금을 보탰고 2000년 16대 총선 당시에도 지지를 표명했다.

노무현과의 인연은 강금원을 고난의 길로 이끌었다.

2003년 불법대선자금 사건으로 구속기소됐고 2006년에도 불법대선자금 보관과 법인세 포탈 혐의로 구속됐다.

노무현 퇴임 이후 주변에 대한 검찰조사가 시작됐을 때도 당당하게 봉하마을을 방문하며 의리를 과시했다.

2009년 4월에는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됐다.

지병으로 병보석을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09년 5월 26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석방됐다.

뒤늦게 봉하마을을 찾은 강금원은 서럽게 오열했다.

노무현은 생전에 강금원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2008년 9월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과 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사돈을 맺는 결혼식에서 주례를 맡기도 했다.

노무현은 강금원 구속 이후 2009년 4월 17일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강 회장은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을 맞은 것이다.

 미안한 마음 이루 말할 수가 없다”며 면목없는 사람이라고 본인을 낮췄다.

특히 “강회장의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대통령이 아니라 파산자가 되었을 것”이라며

“강 회장은 아직도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지만 나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단 한 건의 이권도 청탁한 일이 없다”고 회고했다.

강금원은 참여정부 임기 막바지에

“두고 봐라! 퇴임 후 대통령 옆에 누가 남아있는지 봐요.

 아마 나 말고 아무도 남아있지 않을 겁니다.

 지금은 모두가 다 인간적 의리를 지킬 것처럼 말하지만 그런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라고 독백처럼 말했다고 한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의리의 사나이‘ 강금원을 위한 추모 글에서

“아무런 이득도 없이 지역주의 극복, 원칙과 상식의 세상을 향한 신념이

 현실에서는 늘 낙선과 시련이라는 대가로 돌아왔기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을 ’바보 노무현‘이라 불렀다”며

“같은 논리로 ’바보 강금원‘이라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노무현이 ’바보‘라면 강금원도 정말 ’바보‘ 다.

노 전 대통령의 오랜 후원자였던 고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은 지난 2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발인은 4일 오전이다.

오늘 밤이면 서로를 그리워했던 ’바보‘ 노무현과 ’바보‘ 강금원이

하늘나라에서 만나 소줏잔이라도 기울이고 있지 않을까?X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