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성지순례

16-3. 배론 성지

상원통사 2013. 12. 20. 22:56

배론(舟論)

 -. 구학산과 백운산의 연봉이 둘러 싼 험준한 계곡 양쪽의 산골 마을

 -. 골짜기가 배 밑바닥처럼 생겼다고 하여 배론이라 불리어졌다.

 -. 한국 초대교회의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 들어와 화전과 옹기를 구워서 생계를 유지하며 신앙을 키워 나간 교우촌

 -. 병인박해 전에 배론은 6개 마을(아랫배론, 중땀배론, 웃배론, 점촌배론 등), 70여호가 있었다.     

 -. 본인 생각 ; 배론은 순수 우리말이며, 舟論(배 주, 의논할 론)은 억지로 붙인 한자인 듯 하다.  

 

오늘의 마지막 여정은 충북 제천시 봉양읍 구학2리에 있는 배론성지입니다.

 

배론성지

"1801년 신유박해 때 황사영 알렉시오 백서를 작성한 곳이며,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무덤이 있고,

 1855년 한국 최초의 신학교인 성요셉신학교가 설립된 곳이기도 하다."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에서

 

<여기서부터 3Km나 더 올라가야 성지가 나오는 데,

  큰길에서 갈라진 삼거리부터 이정표가 잘되어 있어 아주 찾기 쉽습니다.

  오른편 하얀 십자가는 고상탑.>

 

 

<성지가 크기도 크거니와, 시설물도 참 많아 어디서부터 소개해야 할 지??

  그냥 우리가 둘러본 순서대로 정리하였습니다.

  이곳은 사제관. 들어가면 안되겠죠!!>

 

 

<성모동굴>

 

 

<이 지역엔 다른 곳에 없는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용소막 성당에는 '평화통일 기념비'가 있더니,

  이곳에는 '평화통일을 위한 기도소'가 있습니다.

  북쪽에 위치한 만큼 통일에 대한 염원이 간절해서 일까요....>

 

 

<최 도마 양업 신부 상>

 

 

<십자가의 길>

 

 

 

 

황사영 백서

-. 가로 62cm 세로40cm 되는 명주천 위에 122행, 13,384자로 된 것

-. 황사영은 박해의 진행과정과 주문모 신부 외 30여명의 인물들에 대한 순교사적을 자세히 기록함

-. 북경교구장 구베아 주교에게 5가지 방안을 제시하였는 데

 1) 박해로 인해 피폐된 조선교회를 위한 재정적 도움을 요청

 2) 조선교우가 북경에 가서 중국 젊은이들에게 조선어를 가르치거나 책문(柵門) 안에 연락처(가게)를 설립하자.

 3) 교황이 청나라 황제에게 서한을 보내 조선으로 하여금 서양 선교사를 받아들이도록 하라는 것

 4) 청나라 황제에게 말하여 조선을 영고탑(寧古塔)에 소속 시킨 뒤 친왕으로 하여금 조선을 보호 감독하게 하고 조선 왕을 부마(駙馬)로 삼자는 것

 5) 서양의 선박과 군사, 무기를 얻어 와서 조선에 출정한 뒤 국왕에게 글을 보내 선교사를 받아들이도록 하자는 방안

-. 백서의 원본은 교황청 민속박물관에 보관

 

내가 당시 위정자라면 이 백서를 보고 어떻게 했을까? 안봐도 비디오입니다.

 

 <황사영 백서의 산실인 토굴

  안에 들어가 봤는 데, 겨우 서고 누울수 있는 정도의 크기입니다.>

 

 

<가운데는 신학당 터 기념비

  왼편은 푸르티에 신부상,

  오른편은 프티니콜라 신부상

  두 분 다 성 요셉 신학교 교수였고, 새남터에서 순교했습니다.>

 

 

<복원된 성 요셉 배론 신학교인데,

  새로 이은 지붕이 영 거슬립니다.>

 

 

<옛날 옛적 성 요셉 신학교 사진

  초가집은 이런 느낌이 나야 하는 데...>

 

 

<성 요셉 성당>

 

 

<무명 순교자의 묘>

 

 

<성인이 되신 분들도, 이름을 남기신 분들도 중요하지만,

  이름없이 사라져버린 수많은 분들이 더 안타깝습니다.

  그분들을 추모하는 작은 무덤이라도 마련되었기에

  조각공원 한구석 눈밭에 딱 한송이 피어있는

  민초들의 꽃을 여기 바칩니다.

  이승의 괴로움 다 버리고, 고이 잠드소서!>

 

 

<황사영 순교 현양탑>

 

 

<순교자들의 집>

 

 

<배론성당

  이곳 성지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 누각성당입니다>

 

 

 

<배론성당 내부>

 

 

 

<최양업 조각공원>

 

 

<조각공원 중앙제대>

 

 

<벽면에는 최양업 신부님의 일대기가 조각되어 있는 데,

  그 안쪽에는 돌아가신 분들의 유골을 모셨기에,

  조각공원 겸 납골당입니다.>

 

 

<반대편에서 본 조각공원 전경>

 

 

최양업신부 기념성당(대성당, 소성당)의 의미

첫째, 배론이라는 지명을 조형화한 것이다.
둘째, 노아의 방주가 그러했듯이 교부들은 초기부터 교회를 구원의 배로 이해하고 표현하였다.
셋째, 최양업신부가 입국하기 위해 몇 차례 승선했던 그 배를 상기하여 그분이 지니셨던 불굴의 선교의지를 본받고자 하였다.

성당의 명칭은 이 배를 인도해 주실 성모 마리아를 주보로 삼아 "최양업 토마스 신부를 기리는 바다의 별 대성당"으로 부르기로 하였다.


<최양업 토마스 신부를 기리는 바다의 별 대성당

  배처럼 보입니까?>

 

 

<'배'가 있으니 '노'도 있어야지요. 그렇게 생겼지요?>

 

 

<어줍잖은 건축가들이 시도 때도 없이,

  아무데나 노출콘크리트 마감을 사용합니다.

  왜 여기는 이러느냐고 발주처가 물어보면,

  Design Concept, Art, Architecture 운운하며 큰소리 빵빵 칩니다.

  그럴 때마다 난 혼자 속으로만 이야기합니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그건 분명히 일하다 만 것이다."

 

 노출콘크리트 마감이 이렇게 멋진 줄 여기서 처음 알았습니다.

 꼭 맞는 데 적용해야 빛이 나는 법입니다.

 도끼로 다듬은 듯, 대패로 슬쩍 민 듯,

 널판지의 감촉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조금 멀리서 바라본 모습>

 

 

<최양업 신부상>

 

 

<고개를 갸웃한 성모님

  누군가 얼짱 각도라고 했는 데...>

 

 

묵주의 기도(로사리오) 길

"순교자들을 따라 구세주의 어머니 성모님과 함께

 구원의 신비를 묵상하며 걸어보지 않으시렵니까?"

 

 

미로의 기도(Le Labyrinthe)

"당신은 순례자 빨리 목적지에 다다르고 싶어 마음이 급하지요.

 인생길은 순례의 길, 서두르지 마십시오.

 ~~ 인생여정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참고 견디면서 묵묵히 걸으면 반드시 약속은 이루어집니다."

 

<겨울이라 덮어놓아 미로를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쉽습니다.>

 

 

<미로의 기도 뒷편은 잔디광장.

  잔디는 파래야 예쁜 데...>

 

 

다 돌고나서, 아내는 책자에 도장받으러 사무실쪽으로 갑니다.

멀리서 보니 빵모자를 쓴 예술가같은 분과 한참 이야기하기에,

차를 몰고 가까이 갔습니다.

운전석에 앉아있는 내게 손을 내밀며 하시는 말씀,

"성지순례 다 끝내면 꼭 들리세요. 제가 점심 살께요."

그 분이 이곳 배론성지 주임 여진천 신부님인 줄 알았더다면,

차에서 내려 공손히 인사하고, 사진이라도 한 컷 찍는 건데...

"신부님, 다른 곳으로 가시더라도 꼭 찾아갈테니 점심 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