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 원머리 성지
지금까지 다녀온 성지들 중에는, 크고 화려한 곳도 있고, 작고 아담한 곳도 있습니다.
어느 곳은 메똥(묘등, 무덤) 하나 달랑 있어, 한참을 헤매고서야 겨우 찾은 곳도 있습니다.
오늘 원머리 성지는 또다른 모습...
책자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에 나온 주소대로
'충남 당진군 신평면 금천리 907'을 찍고서 도착해보니 신평성당.
이곳이 원머리 성지로 보이는 데....
마침 성당에서 결혼식이 열리고 있는 터라 온 사방이 차들로 가득하여, 이중주차하고서야 겨우 내렸습니다.
<신평성당 전경
차 안나오게 겨우겨우 찍었는 데도 어쩔 수 없이...>
<아무리 둘러봐도 성지 비스무레한 것조차 찾을 수 없습니다.
어찌어찌하다가 겨우 주차 중인 차 뒷편에서 이 기념비를 찾았습니다.>
순교자 박선진 마르코 박태진 마지아 기념비
"~~ 순교 후 그 시신을 찾아 원머리 박씨 집안의 땅에 안장했다가 1989년 신평성당 내로 이장했으며,
2009년 원머리 성지개발과 순교자 현양을 위하여 20여년동안 잠들었던 이곳을 떠나
본래의 자리인 원머리로 다시 옮기고
두 분의 큰 믿음과 순교의 얼을 기리고자 여기 기념비를 세운다."
<이곳 분들 참 친절합니다.
이장한 곳 주소 물어보려 식당에 갔더니, 굳이 국수라도 먹고 가라고 권하시고,
성지순례왔다니깐, 결혼식 하객들을 위해 튀기고 있던 순 진짜 인삼 튀김도 주시고,
일하다 멈추고 굳이 사무실까지 와서 도장 찍어주고 이장한 곳 주소 아르켜 주시고...
신앙공동체, 형제, 자매...
그냥 갈 수 없어 사진 몇 컷 추가요!>
원머리 성지
순교로 신앙을 증거하고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낸 원머리(신평) 출신
열아홉 분 순교자들의 기록을 [치명일기]와 [치명사적]은 이렇게 적고 있다.
"양 도미니코 회장, 박 회장, 유 서방, 김 동 4인은 정묘년(1867년) 홍성(홍주) 감옥에서 순교하였으며,
최 베드로, 김 루치아, 김 마리아, 원 아나스타시아 4인은 무진년에 홍주에서 같이 순교하였다.
또 같은 해 박 요한과 문 마리아가 해미에서 순교하였고,
원씨, 김 마리아 2인이 홍주에서 정묘년에 순교하였으며,
최 아우구스티노, 홍 베드로닐라, 양정수, 양 아우구스티노, 홍 베드로, 한 마티아 6인이 병인년(1866년)에 홍주에서 순교, 치명하였다.
같은 해 김백선이 해미에서 순교하였으니, 이곳 원머리에 얼마나 큰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었던가를 알 수 있으며,
순교자들의 신심이 얼마나 깊었던 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사(이장)한 곳 주소 : 충남 당진군 신평면 한정리 233번지
이곳도 찾으려면 꽤나 신경써야 합니다.
도로변에 조그만 안내판 하나 달랑 있는 데, 왼쪽 화살표와 더불어 '원머리 성지100m'라고만 씌여있습니다.
여기 안내판 근처에 차를 세우고, 길 왼편의 민가를 지나 천천히 걸어서 올라가세요.
우린 한참을 헤매다가 돌고돌아서 겨우 찾았습니다.>
<그나마 소나무 한 그루가 있기에 망정이지 아직은 삭막합니다.
맨 왼쪽과 뒷편의 묘는 아직까지도 연고를 모르는 분들의 묘입니다.>
<순교자 박선진(말구), 박마지아 현양비>
<참고용 지도>
비도 한방울씩 떨어집니다.
우린 서둘러 공세리 성당으로 향합니다.